과제는 학습자를 괴롭히는 도구가 되어선 안된다
우리는 학교 졸업과 동시에 과제에서 해방되리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2주 이상의 사내 교육을 진행하는 기업에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현업에서도 과제는 우리 뒤를 쫓아다닌다. 그나마 상사 또는 강사는 과제에서 일부 해방된다고 볼 수 있겠다. 과제를 받는 입장이기보다는 과제를 제출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 제일 하기 싫은 것 1위인 '과제', 학습 효과 향상이라는 관점에서 필요하기에 제출할 수밖에 없는 '과제'. 그러나 과제 누락, 성의 없는 결과, 부정적으로 변한 학습 태도, 학습자들의 반발 등은 과제를 제출한 강사가 해결해야 하는 또 다른 '과제'이다.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왜 과제를 제출할 수밖에 없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2가지로 줄이면 아래와 같다.
1) 학습자들이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2) 학습 내용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러나 실상은 어떨까?
1) 학습자들이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자발적이라는 단어는 스스로 행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미 강사가 과제를 정해서 제시했다는 점을 미루어 자발적이라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다. 물론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서로 돕고 협력하며 새로운 것을 깨우치면 좋겠지만, 그건 강사의 머릿속 환상일 뿐이다. 학습자들은 과제를 받았다는 자체만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과제의 질과 내용보다 일을 받았다고 느껴지는 학습자들이 과연 얼마나 자발적으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의욕을 불태울 수 있을까? 더욱이 단순 노동을 반복하는 과제일 경우, 학습 능률을 향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강사가 나를 철저하게 괴롭히고 있다'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내세운 작은 포상은 소용이 없어 보인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다.
2) 학습 내용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강사들이 원하는 것은 장기기억이다. 에빙 하우스의 망각 곡선에 따르면 정보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없을 때 하루가 지난 후에는 거의 절반 이상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다음 날 다시 반복하게 되면 정보의 손실이 감소하고, 이것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었을 경우 장기 기억으로 보존된다.
이런 이론에 의거해서 과제를 활용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정보의 손실 시기만 맞추려고 하다 보니 과제의 방법(How)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몇 페이지부터 어디까지 공부를 해오게 하거나, 소리 내어 읽거나, 손으로 베껴 쓰거나, 요약정리를 하는 수준에서 그친다. 그러나 좀 더 학습한 내용을 오래 기억하게 하려면 실제로 응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좋다. 현장에 적용해 볼 수 있도록 하거나, 스스로 자료를 찾아보고, 고민하고, 편집하는 것이 학습 기억에 훨씬 도움이 된다.
과제는 위에서 언급된 2가지 목적만 잘 충족되어도 충분히 학습자에게 좋은 경험과 학습 효과도 상승시켜 줄 수 있는 뛰어난 도구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목적을 잘 달성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과제를 위한 5가지 가이드를 참고해 보자. 교육 과정을 처음 설계할 때 함께 고려해도 좋고 때에 따라 발생되는 스팟성 과제에도 접목시켜도 좋다.
1. 목적과 목표(Purpose) : 과제를 어떤 목적/목표로 제출하고 있는가?
제출하는 과제의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선행학습, 복습, 심화(응용 단계) 학습을 위한 것인지 고려한 후 그에 맞는 목표를 정한다. 추상적인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학습자들이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 것인지 함께 고려한다.
<예시>
과정명 : 자사 상품 심화
목적 : 세일즈 실전 응용
목표 : 자사 상품의 장점 3가지 이상을 고객에게 혜택적으로 말할 수 있다.
과제명 : 자사 상품 홈쇼핑 동영상 찍어보기
결과 : 1) 자연스러운 설명 (음성, 자신감)
2) 자사 상품 3개 이상
3) 세일즈 스킬을 활용한 혜택적인 설명
2. 양(Amount)과 기한(Time) : 학습자들이 숙제(과제) 제공된 시간에 수행할 수 있는가?
학습자들이 과제 첫 관문에서 좌절하는 이유가 바로 과제의 양과 기한이다. '이걸 어떻게 그때까지 다 하지?'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고 해서 학습자를 탓하지 말라. 학습자는 분명 이와 같은 기분일 것이다.
과제 또한 학습의 일종이다. 즐겁게 학습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이미 연구 결과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그렇다면 학습자가 좌절하지 않고 충분히 과제를 수행할 수 있게 해 주고, 잘 수행했다면 그것이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된다. 따라서 제출된 과제가 학습자의 개인 시간을 지나치게 할애해야 한다면 과제의 양과 기한을 고민해 보길 바란다. 밤을 새워서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면 다음날 학습에 분명 지장이 온다. 다음날 학습자가 강의 시간에 졸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학습자의 이해도 수준에 따라서 그 양과 기한을 적절히 조율해야 할 필요가 있다.
3. 소통(Communication) : 숙제(과제)를 통해 교육생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충분히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는가?
학습자들이 과제 이야기를 듣자마자 "헐~" "아~~~"라고 하고 있는가? 강사는 분명 속이 활활 타오를 것이다. 모두의 학습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밤새 고민했는데 부정적인 반응은 보면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미소를 한 번 짓자. 그리고 기존처럼 과제의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왜 이 과제를 해야 하는가?" 또는 "왜 이 과제가 중요한가?"에 대한 설명과 "과제를 잘 수행했을 때 어떤 이점이 발생하는가?" "응용했을 때 어떤 긍정적인 일들이 생기는가?"를 학습자의 입장에서 납득시켜 줘야 한다.
이미 불만으로 가득 찬 학습자들이 마음과 귀를 닫았다면 굳이 강사가 발을 동동 구르며 설명할 필요는 없다. 서로 이 내용에 대해서 토론할 수 있도록 하고 강사는 이를 통해 학습자들의 솔직한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진다. 또한 "내가 강사라면 어떤 이유에서 어떤 과제를 제출할 것인가?"에 대해 사전에 토론한 후 이를 토대로 과제를 제출해도 된다. 이런 과정들이 잘 수행된다면 과제를 내주는 사람과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되는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과제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충분히 소통한다면 일부 투덜거리는 학습자들도 납득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4. 사고력(Thought) : 단순 반복이 아닌 사고를 증진시키는 활동인가?
사고력과 창의성은 기계가 인간 노동 일부를 대체하면서 기업에서 더욱더 필요로 하는 인재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과제를 잘 활용하면 사고력과 창의성을 키우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제출하고 있는 과제가 학습에서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강사가 면밀히 관찰해 보자. 관찰 결과, 학습 효과나 태도가 오히려 저하된다면 당장 그 과제를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안 하느니만 못한 과제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그렇다면 어떤 과제가 학습자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워줄 수 있을까? 과제가 학습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든다. 대표적인 예로 일상(실무)에서 응용할 수 있는 과제로 만들어보자. 테스트를 위한 암기보다 훨씬 더 체득화 될 것이다. 제각각의 방식대로 만들어가기 때문에 일원화되어 있지 않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양한 방법들이 나올 수 있다. 덧붙이자면 응용 당시의 상황과 느낌, 본인의 생각 등을 서술하게 하는 것은 학습내용을 다시 되돌아보고 더 나은 방법으로 만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이후 과제의 느낌 등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보는 것도 좋다.
활용 예)
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내용을 접목해 보았나요?
② 학습 내용을 직접 활용해 보니 어땠나요?
③ 활동을 통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④ 향후에는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5. 검증(Feedback) : 과제 결과물을 꼼꼼하게 검수하고 그에 맞는 코칭도 진행하고 있는가?
5가지 중에서 제일 중요하다. 과제는 반드시 검수와 피드백 과정이 있어야 한다. 과제 검수에 강사가 성의를 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자들은 쉽게 알아챈다. 결국 성의 있는 과제물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은 학습자와 강사의 1:1 피드백이다. 그러나 아무런 기준 없이 피드백을 진행할 경우 체계적이지 않은 코칭이 이루어질 수 있다. 올바른 과제 검수를 위해서는 과제물 평가 가이드가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어야 한다. 점수로 과제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어떤 기준에서 코칭을 할 것인지 틀을 만들어 두면 면대면 코칭이 아니더라도 서면으로 코칭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 면대면 피드백의 경우, 강사가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질문을 많이 던지고 학습자가 대답을 하며 다시 회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서면 피드백의 경우 메일이나 문서로 주고받는 과제 피드백이다. 강사의 시간 소요는 대면 피드백에 비해서 적은 편이고, 코칭의 질 또한 중간 정도로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학습자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서면의 경우 일방적인 소통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에 학습자가 강사의 코칭을 금방 잊어버리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도 빈번하다. 따라서 서면 피드백의 경우 학습자와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면 도움이 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학습자들 간의 상호 피드백이 있다. 학습자들이 서로 과제를 검수해 주고 상호 피드백을 진행한 후 최종적으로 강사의 피드백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 방법을 사용할 경우에는 학습자 스스로가 과제물 평가 가이드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추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학습자가 과제 검수 가이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학습 내용이 심화단계일 경우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과제와 학습자들의 수준에 따라서 판단하는 것이 좋다.
과제의 원래 뜻이 '처리하거나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과제를 받는 사람들에겐 정말 ‘해결해야 하는 문제’, 과제를 주는 사람들에는 과제에 대한 고민, 과제를 검수하는 것은 강의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기에 서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의 답은 여기에 있다. 최고의 강의는 강사와 학습자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과제의 문제'도 상호 간의 소통을 통해 지혜를 모아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글의 통일성을 위해 과제(=숙제)라는 의미로 사용하겠습니다.
숙제 : 예습 복습
과제 : 처리해야 할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