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욘포세의 3부작을 읽었다. 아침 그리고 저녁의 아스라이 아지랑이에 두터운 구름과 물안개가 가라앉은 것처럼 3부작은 잿빛이 너무 짙었다.
알리다처럼 너무 피곤하고 피곤해서 졸리고 졸리지만 멈출 수도 없이 페이지를 넘기다가 올라브의 꿈에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책을 잠시 덮었다.
나는 그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어떤 사람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채 운명에 사그라드는 것을 보았다. 오로지 알리사만이 어쩌면 알리사도 알 수 없는 그의 모습을 내가 구태여 이해하려 한 듯 머리만 아팠다.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산발적으로 흩어진다. 욘 포세의 호흡을 쫓아갈 수가 없다. 아슬레가 영문도 모른 채 목이 매달렸다. 교수형으로 그가 죽었다. 알리다가 그의 죽음을 아는지 모른 채 나도 올라브의 꿈을 묻듯이 책을 덮고 며칠을 두었다.
며칠뒤 알리사가 아슬레의 소식을 들을 무렵 나도 간신히 책을 펼쳐 알리사의 소식을 접했다. 시그발을 안고 아슬레를 잃은 절망대신 살아가길 선택한 알리사, 알리사 그래 살아야지,
아슬레는 어쩌지, 깊은 그리움은 이제 어쩌지, 사무친 그리움은 슬픔보다 더한 아픔일 텐데, 너무도 아플 텐데, 그 아픔을 어떻게 안고 가려나.
이제 내가 살아있는 아슬레야.
그렇지 아슬레는 어디에도 있어, 바다에도, 하늘에도, 바람에는 아슬레의 음악이 있지, 파도는 아슬레의 손으로 알리다의 뺨을 쓰다듬겠지.
알리다의 머리 위로 파도가 스러질 때 나는 책을 덮었다. 이렇게 먹먹해도 되나.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제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머리로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
남은 것은 알리다, 아슬레, 이어지는 시그발, 알레스,
부서진 파도 안에 남은 사랑,
그저 사랑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