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짧은 여정

난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세데라, 가마쿠라 여행 이틀째 - 둘

by 올리비아 킴

고토쿠인에서 하세 역으로 가는 길을 따라 내려오면 '하세데라'라는 사원을 만날 수 있다. 가마쿠라에 세 번이나 방문했지만, 한 곳을 질리듯이 방문했던지라 하세데라는 매번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하세데라는 빡빡한 일정 상 지나치려고 했다. 이미 신사를 두 곳이나 둘러봤고, 에노시마에 있는 신사에도 들릴 예정이었던 터라 반복되는 모습에 혹여 질려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잠시 망설이던 찰나 많은 관광객들이 하세데라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다. 한 번쯤은 가보지 않은 곳을 방문해 보는 것도 색다를 것 같아 은정이에게 물어보니 흔쾌히 좋다고 한다.

하세데라로 가는 길, 우리를 반겨주는 귀여운 해파리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은정이는 상대방의 제안에 '좋아'라는 말을 흔쾌히 건넨다. 그것이 상대로 하여금 얼마나 안심이 되게 하는지 은정이는 잘 알진 못하는 것 같다. 그만큼 그녀의 생활 자체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고 조화를 잘 맞춘다는 뜻일 것이다. 반면에 나는 갑작스러운 낯선 사람의 방문이나 만남이 어색하고 힘들다. 삶에 근접한 관계일수록 특히나 이질감을 완화시키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처음 만난 내 친구들과 갑작스러운 만남에도 어색해하지 않고 잘 지내는 은정이는 친구도 약속도 항상 많았다. 덕분에 서로 간의 만남도 잘 엮어 주곤 했다. 그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도 해당되는 모양이다. 경계심이 짙어 발생될 문제나 부정적인 것들을 먼저 고려하는 나와는 달리 그녀의 눈에는 세상의 반짝거리는 빛과 호기심이 항상 먼저 비치는 모양이다. 이렇게도 다르기에 서로의 이면을 채워주며 오래된 우정을 이어나갈 수 있나 보다.

하세데라로 들어가기 전에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길거리 노점상에서 팔고 있는 타코야키 앞으로 갔다. 그저 동그란 비주얼에 타코야키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사실은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였다.


"응? 이게 뭐야?"

이미 비주얼부터가 멸치가 올라간 점이 보통의 타코야키랑 달랐는데도 불구하고, 달짝지근한 맛과 멸치의 바스락거리는 식감이 입 안에 퍼질 때 문어가 아니다는 걸 눈치채다니. 둘 다 어지간히 허기가 졌던 모양이다.

속재료와 토핑이 다른 '이것'은 타코야키가 아닌 자코야키라고 불리는 모양이다. 3개에 300엔, 6개에 500엔이다. 환율로 계산을 하면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닌데, 동전으로 건네는 바람에 우리는 또 저렴하다는 생각에 속고 만다.

뭐 그럼 어떤가. 여행의 묘미라는 것이 가끔 이렇게 탕진(?)하는 재미도 있어야 한다며 우리는 남은 멸치 조각까지 입안에 싹싹 털어 넣었다. 다행이게도 판매하는 장소 옆에 앉아서 먹고 갈 수 있도록 작은 테이블과 벤치가 놓여 있었으며, 식사 후 남은 쓰레기도 처리해 주셨다.

판매하시는 사장님이 워낙 친절하시고, 미소가 기분이 좋아서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냐고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하신다. 첫 일본 여행에서는 노점에서 팔고 있는 그림이 예뻐서 함부로 사진을 찍었다고 어르신께 알 수 없는 일본어로 된통 혼이 났다. 그 이후로는 어느 나라를 방문하든 반드시 정중히 허락을 구하고 사진을 찍게 되는 교훈을 얻었다. 맛있는 음식을 끝까지 좋은 경험으로 남겨주는 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소는 사람을 맞이하고 보내는 진심에서 우러난 미소인 듯하다. 맛이 특별히 기억에 오래 남진 않았지만, 우리를 맞이하고 보내주신 상점 주인의 모습은 이토록 오래 남으니 말이다.



하세데라는 가장 오래된 목조 관음상으로도 유명하지만, 매화, 벚꽃, 등나무, 수국과 같은 계절별로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꽃의 절이라고도 불린다. 크게 두 개의 구역으로 나뉘는데 연못을 중심으로 정원 구역,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9미터가 높 관음당과 가마쿠라의 전경을 바다와 한눈에 볼 수 있다. 입장료 300엔을 내야 해서 사원 치고는 꽤 비싸게 받는 것 같아 의아했는데, 입구에 들어서니 그 이름이 결코 무색하지 않다고 느낄 만큼 화려한 꽃들이 우리를 반긴다.

가마쿠라의 모든 꽃이 다 하세데라로 몰려온 모양이다. 꽃이 주는 다채로운 색과 그 향에 취해서 한참이나 입구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꽃이 없다며 시무룩했던 얼굴이 환해진다. 입구에서는 굉장히 작아 보였던 곳인데 마치 다른 세상에 발을 내디딘 것만 같다.


뿐만 아니라 일본 특유의 정원이 꾸며져 있어, 일본을 찾은 보람을 느끼게 했다.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툇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정원의 조용함을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또 뭐가 그리 바빴는지 정원의 세세함을 느끼기도 전에 쫓기듯 관음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관음당으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가다 보면 료엔지조우라는 미소가 아주 쾌활한 불상이 있다. 이 곳을 찾는 모든 이에게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라는 듯 웃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불상이 있는 곳은 총 세 곳. 이 불상을 하나의 사진으로 만들어 휴대폰 배경으로 하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하니 경내 곳곳에서 불상을 찾아보는 재미를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한 텀 계단을 올라가니 지장보살을 봉안한 지장당이 눈에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향을 피우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어느 절이든 지장당은 나에게 뜻깊다. 유독 엄마가 지장당에서 오랜 기도를 하시는 모습이 내 눈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절을 찾으면 대웅전이나 관음당이 아닌 지장당을 찾곤 했다. 지장보살 앞에서 몇 시간이고 기도를 하고, 나는 그 옆에 앉아 기도를 하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지장보살 앞에서 기도하는 엄마의 두 눈을 감은 얼굴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간절한 마음이 묻어났다. 자식들이 잘되기만을 바라며 기도하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온 맘을 다해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이 나는 무척이나 좋았다. 여러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가슴 사무치게 애틋하면서도, 온전히 엄마와의 시간을 보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지장당 뒤에는 수많은 작은 동자승의 모습을 한 불상들이 있었는데, 승천하지 못한 어린 태아들을 기리는 것이라고 했다. 고통받는 중생들이 있는 이 세상과 지옥, 그리고 육도. 그곳에 지장보살이 있다고 한다. 망자들이 저승으로 잘 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고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가 바로 지장보살이다. 특히나 일본의 지장보살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구원한다고 한다. 특히 빨간 턱받이를 한 지장보살은 사산, 유산, 낙태된 아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워졌는데, 이곳 하세데라의 지장보살은 그러한 특징은 드러나지는 않는다.

여하튼 불쌍한 아이들의 영혼을 돌보고, 그들이 간절히 아이를 원하는 부부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만 같은 지장보살이 모셔진 이곳 지장당. 그래서인지 하세데라의 지장당에는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부부들의 기도가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때마침 은정이가 임신을 한 상태였기에 은정이에게 지장당의 특성에 대해 말해주었더니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뱃속에 품은 아이와 함께 할 미래에 대해 기도하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것들을 기도하는 것인지 알 순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친구가 아이를 가지고 이렇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새삼 낯설다.


물론 주변에 벌써 아이를 낳은 친구들은 많다. 함께 자란 소녀들이 여자가 되고, 그리고 위대한 엄마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나는 그녀들이 진정한 성숙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신 외에 유일하게 생명을 창조해 내는 존재가 되면서 동시에 자기희생이라는 숭고한 사명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친구의 순산과, 그리고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직장 선배 언니의 임신을 바라며 나도 향을 피우고 기도했다. 은정이는 분명 특유의 유쾌하고 밝은 성품으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좋은 엄마가 될 것이다. 임신을 바라는 선배도 정말 다정하고 세심한 엄마가 될 것이다.

반면에 내 기도는 내가 엄마가 되기보단 원하는 다른 누군가가 좋은 엄마가 되길 바라고 있었다.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단지, 아직 엄마가 되기에 내가 무척이나 부족한 존재임과 동시에 엄마가 치러야 하는 희생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엄마 없이 보냈던 막내의 유년 시간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지 느끼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무엇보다 크게 느꼈다. 자식이 부모 없이 큰다는 것이 힘들고, '남들만큼'이라는 타이틀을 달기까지 스스로의 노력이 얼마나 필요로 한 지 알아버렸다. 게다가 여기서 말하는 스스로의 노력이라는 건 고작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이겨내야 할 문제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한창 보살핌 받을 아이가 어떻게 이겨낸단 말인가.


가마쿠라 일대가 한눈에 보이던 관음당 앞의 전망대. 바람이 무척이나 강하게 불어왔던 그 날, 많은 아픔들이 스쳐 지나갔다.


난 가슴에 큰 죄책감을 안고 산다.

십 대 후반, 집안이 흩어지면서 책임지지도 못할 막내의 어린 시절을 망쳐버렸다.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어린 동생에게 엄마가 줬어야 할 사랑을 주지 못했고,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그 어린아이가 겪은 고통을 외면했다. 내가 저지른 '방치'라는 큰 잘못이 한 아이의 인생에 얼마나 큰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는지, 그리고 그걸 아무리 속죄한다고 해도 흩어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물론, 나 혼자만이 아닌 우리 가족 모두가 느끼는 아픔이지만, 나는 제일 큰 책임이 여전히 나에게 있다고 본다. 내가 가장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보살피지 못했고, 어줍잖은 고집 덕에 어린 아이를 엄마에게 일찍 보내지 못했다.


여러가지로 불안했던 막내는 엄마에게 돌아간 후 그나마 안정을 되찾았다. 나는 죄책감에 한동안 막내를 보러 갈 수 없었다. 서툰 글씨로 "큰누나, 놀러와요. 보고 싶어요."라는 편지를 보낸 후에야 간신히 엄마 집을 찾고, 막내 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열 살 차이 나는 다 큰 스무 살 중반의 누나가 막내 앞에서 쭈뼛거리며 여태의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던 찰나, 막내가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 어린 마음에 용서도 원망도 아마 자리하지 않았었던 모양이다. 순수함으로 가득찬 미소를 보며, 나는 진심으로 두려워졌다. 내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지금 막내에게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 될 것 같았다. 또 다른 상처를 누군가에게 남기는 것이 되고, 희망보다는 상처를 되물려 줄 것 같았다. 막내 동생이 가진 당시의 외로움과 아픔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더욱더 엄마가 될 자신이 없다.

관음경에 따르면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이들을 구해주기에 주로 관음당은 바다에 인접한 지역에 성지를 주로 두고 있다


관음당에 들어서서는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거대한 목조 관음상 앞에서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약 9미터가 넘는 관음상은 금빛이었다. 지옥의 중생을 구제해주는 것이 지장보살이라면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의 현세의 고통을 없애준단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중생의 모든 것을 살펴보고 보살피는 관세음보살은 이런 내 마음과 그 고통을 잘 알고 있으실까. 그리고 내가 닿을 수 없는 우리 가족들의 아픔과 사연도 잘 알고 있으실까.

나는 불상 앞에서 기도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내 부모님들을 위해서,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큰 병을 치른 여동생을 위해서, 내 곁을 십여 년간 지켜준 고양이를 위해서, 그리고 내 모든 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막내 동생에게 내가 준 상처가 부디 아물길 바라면서. 동시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 지난 시간들과 품어온 아픔들을 관세음보살만큼은 알아주길 바라면서.

이십대와 같은 이런 포즈도 취하는 철없는 삽십삼짤

언제까지나 과거에 연연해선 안된다고, 이제 그러기엔 너무 많은 나이를 먹지 않았냐고 핀잔을 종종 받지만ㅡ 난 아직 철없는 서른셋이다. 아니, 철들고 싶지 않은 서른셋이 더 맞겠다. 홀로 산지 십여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엄마 아빠 품이 그리우니까.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내가 한 인생을 키워나가야 할 엄마가 된다니. 상상조차 되지 않는 막연한 일이다.


사실 결혼이라던지,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이 두려운 이유가 지난날의 죄책감에서 비롯된 트라우마 때문이라 한들, 나에게 막내 동생의 양육을 잠시나마 맡겼던 부모님을 원망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 부모님 또한 부모님의 부재에서 자라왔고, 그 고통을 이미 겪어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흥청망청 놀면서 인생이라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고 외치고 있을 때, 엄마는 나를 뱃속에서 품고 열 달을 기다렸다가 큰 고생을 하며 나를 낳았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는 지금 내 나이, 엄마는 여행이라는 건 꿈도 꾸지 못한 채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우리를 굶기지 않으려고 애쓰시며 혼자 눈물을 삼키셨다. 아빠는 먼 타지에서 집에 돌아오지도 못한 채 가족을 책임지며 자신의 삶이 아닌 아빠의 삶을 선택하셨다.


히말라야에서 나는 수없이 많은 마니차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이 곳에서도 아픔의 회복을 바라며 마니차를 돌린다.


이 모든 시간을 알기에ㅡ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어느덧 이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어느 날 아버지의 우스개 말처럼, 그리고 한 노랫말처럼, 두 사람의 인생이 거름이 되어 우리를 꽃피우고 있다는 걸 안다. 두 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셨고, 그 선택이 스스로에게도 상처가 되어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고 계실 거다. 아마, 나처럼. 그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지금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내가 어떤 원망을 한단 말인가.


철 모르던 시절, 후대에 내가 겪은 아픔을 물려주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온몸으로 엄마가 되기를 거부하고, 결혼마저도 밀어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내 부모님은 지금 우리 세 자녀가 불행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실 거다. 오히려 자신들이 겪은 상실과 상처를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 더욱 많이 노력하셨을 거다. 그래서 우리가 여러 상황에서도 '가족의 사랑'이라는 것을 잃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아, 이제는 알겠다. 아픔을 물려주지 않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설령 아프다고 하더라도 '함께 아픔을 이겨내는 강한 마음'을 물려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 내가 처한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한 터널이라 할 지라도 괜찮다. 난 계속해서 달리고 있고, 곧 벗어날 이 터널 너머에는 또 다른 멋진 세상이 날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터널의 끝자락. 시치리가하마의 푸른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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