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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Dec 31. 2018

인생 연말 정산

박영준 질문술사님의 Design2019 워크숍 참석 후기

 2014년부터 나에게 생긴 1년의 습관 중 하나는 '인생 연말 정산'이다. 

 서른셋이라는 나이를 두고 봤을 땐, 꽤 늦은 습관이다. 


 그 전엔 여러 패배감에 젖은 마음으로 어차피 짧게 살다 갈 인생, No Plan이야말로 Good Plan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러던 2012년도 여름, 당시 남자 친구와 내일로 여행을 계획해서 다녀온 후 나는 조금의 용기를 얻었다. 한 번도 계획해서 긴 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었기에 나에게 내일로는 계획 후 일어난 작은 성공이었고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였다. 그리고 그다음 해의 1월 1일 광안리 카페에 앉아 노트에 여러 목록들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 그 노트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순 없지만(눈물 눈물) 꽤 나에게 의미 있었던 한해였는지 2013년 12월 블로그에 올 한 해를 깨알같이 연말 정산해 두었더라. 

 그렇게 시작한 혼자만의 버킷리스트. 그리고 16년에 알게 된 최효석 대표님의 삶의 동심원(내가 그냥 붙인 이름), 다음 해의 윈키아 플래너의 양식들을 따라 하면서 어설프게나마 한 해를 돌아보고 한 해 계획을 세웠다. 그렇다고 천하삼분지계처럼 이룬 것은 없지만, 무엇을 이루었고 이루지 못했고, 또는 시도했지만 실패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됐다. 한 해를 어영부영 보낸 것이 아니라 적어도 내가 올 한 해를 채우기 위해 애썼다는 것. 그리고 각자의 삶의 설계 방식이 내가 보지 못하는 다른 관점을 제시해서 삶의 다양성을 인지하게 해 준다는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때마침 올해 연말 정산할 시기도 왔고, 늘 좋은 영감을 주시던 박영준 질문술사님이 신도림 디큐브 아카데미에서 Design 2019 워크숍을 하신다고 해서 덜컥 신청해버렸다. 부산에서 서울까지는 꽤 먼 거리지만 마치 운명처럼 그 주에 출장이 잡혀 있었고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길 기대했다. 

 

 크리스마스에는 쑥이 와 함께 숙제로 내주신 동춘하추를 작성하면서 붙였는데 여태 혼자만 해 오다가 함께 한 해를 돌아보니, 우리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알게 되고, 동시에 같은 사건에 서로가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지도 알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나의 사소한 것이 상대방에게 의미 있는 행동으로 여겨질 때 더할 나위 없는 감사를 느꼈다. 


 

 그래서 함께 나누는 것도 의미 있겠다고, 그래서 사우들과 꼭 해봐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유학생 마냥 큰 뜻을 품고 참석했는데, 내심 이런 건 지인과 함께 신청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가족이 단체로 참석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오기도 했다. 아, 맙소사. 나 같은 소심둥이는 혼자 참석했다는 분위기와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불편함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역시 이런 건 혼자 했어야 하나, 라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 게다가 페북에서 늘 뵙던 박영준 코치님이 예전 우리 대표님이랑 무척 흡사하게 생기셨다! 아...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모든 걱정이 쓰나미로 밀려오는 찰나 내 테이블에 앉은 4분은 나 빼고 다 함께 오신 친우 사이. 후, 이제 와서 자리를 옮긴다면 완폐녀가 될 것이고, 그렇다고 지인의 훈훈한 정과 사랑이 오가는 자리에 낙동강 오리알 마냥 박혀서 잘 해낼 수 있을까, 오만 걱정이 떠올라 거의 눈물이 터지기 직전에 한 선생님께서 뒤늦게 내 옆에 앉으셨다!(구세주!) 자기 소개할 때 진심을 담아 손을 붙들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던 중 함께 앉은 테이블의 여자 선생님께서는 6년째 참석하신단다. 이유가 궁금해서 여쭤봤더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전엔 무작정 많은 계획을 세웠는데, 지금은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뭘 못하는 지를 알게 되었어요. 나를 점점 알아가는 것 같아요." 


 그래, 나도 돌이켜보면 2013년부터 어설프게나마 세우기 시작한 계획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해가는 내 모습에서 내 가능성과 한계를 직시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내 삶이 전과 달리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구심점을 두고 풍부하게 회오리치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거대한 은하계처럼. 쑥이에게도 전 후의 나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예전에는 그냥 바쁘기만 하던 사람이 지금은 어떤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쌓아간다는 모습이라고 했다. 내심 뿌듯해하며 두 손으로 내 양 어깨를 토닥토닥거려주었다. 

 서툴지만 잘해가고 있어. 


 보통은 한 해를 마무리할 때 축하하고 기억하고 감사하기보다는 반성과 질책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반성과 질책은 내년의 계획으로 이어지고, 내년에 우리는 또 반성하고 질책하게 된다. 마치 그 연쇄 고리를 끊는 것처럼 첫 장부터 나는 어떤 것을 할 때 빛나는 사람인지를 생각하도록 해 주셨다. 

 

김주미 저자님의 외모는 자존감이다를 읽고 자리에 붙여두었던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사람의 기준, 반짝임의 기준.

 때마침 미리 적어두었던 것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적으려고 하니 수없이 많이 구겨져 나가는 꼬마 포스트잇들...

  

많은 포스트잇 사이에서 살아남은 승자 꼬마 포스트잇

 여러 번 쓰고 버리기를 반복해, 간신히 붙여낸 이 페이지는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다. 여러 '나'라는 자화상 중에서 내가 선택한 내 모습은 이런 것일까. 


배우는 일이 대부분이었던, 그러나 썩 만족 스럽진 않았던 그림. (쿠우야, 나는 만족한단다)


 몇 년 전 우리 반으로 들어온 신입사원이 시를 쓰는 것을 보고, 내가 덮어준 문학에 대한 애정을 다시 키워내면서 조금씩 써내려 갔던 짧은 시. 그가 추천해줬던 시들은 과거 내가 한 번 읽었던 것들이지만, 어떻게 성찰하며 읽어내는지를 류시화 시인을 통해서 다시 배웠다. 동시에 박영준 코치님이 시를 쓰시는 모습은 다시 손을 놓았던 나에게 큰 자극이 되고 있었다. 무조건 시는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내가 생각한 것을 시로 표현해 나가는 것, 그 자체를 나는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작은 포스트잇이 발견하게 해 준다. 

 

관계에 누구보다도 취약한 나는

[만약 당신이 사라진다면, 누가 당신을 그리워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괜히 작아진다. 문득 쑥이는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져서 톡을 보냈다. 


[내가 만약 사라지면 어떨까?] 


그 질문에 쑥이는 이렇게 답해 준다.


[나와 모든 추억을 공유했기에 나만이 나가 아니라, 그 사람이 있어야 내가 될 수 있어.] 


 순간 왈칵한다. 내 삶의 감사한 인연들이 나에게 어떤 행복과 풍요를 주었는지 나는 늘 잊고 산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준 행복과 풍요가 더욱 작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생각해 준다는 것에 큰 감사를 느낀다.  


 김정운 교수의 칼럼에서도 우리가 일 년에 한 해 계획을 세우는 건 담배 하나 끊자고, 술 한 번 줄이는게 아니라, 내가 감사한 이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들과 올해에는 어떤 고마움을 만들어갈 것인지를 생각하기 위함이라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의미조차 없이 내가 해야 하는 to-do list에 매여 살아온 나. 세상을 혼자 바라보고 살아왔던 나. 세상의 모든 것에는 나 혼자 존재할 수 없고, 우리 세상도 모두의 꿈이 뒤얽혀 있는 것이라면 나는 어떤 관계를 여태 만들어 오고, 또 만들어 가야 할까. 


 매년 한 해를 돌아보면 후회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나름대로의 결과물은 있지만, 거기에 행복했다는 감정이 자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올해는 한 해를 돌아봤을 때 해 온 것들은 기억나지 않더라도, 행복했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아래의 키워드로 정했다.

  [행복]


 2019년에 나는 행복을 위해 성찰하는 여행을 떠나는 시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 길이 쉽지 않고, 좌절될 수도 있지만 그에 대한 플랜 B도 만들어 둘 생각이다. 

 다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 

 13년도부터 꾸준히 해왔던 나의 새해 계획과 삶을 돌아봤던 시간들이 미흡하더라도 어디 가지 않고 잘 응축되어 있을 테니까. 


 


내 생에 첫 해외여행과 승진이 더 큰 의미를 부여했던 걸지도 모를 2013년...


꿈과 희망에 가득찼지만, 뭘 했는지 분실해버렸던 2014년... 그리고 상실된 2015년


 

몰래 블로그에 넣어두었던 나만의 2016년
2017년의 고민이 너무 많았던 삶의 동심원

 


 


  


 이번 Design2019 워크숍은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 계획을 세운 나에게 좀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보라고 말해준다. 나는 여기에서 단순히 계획을 세우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의 격려와 응원을 통해 큰 감사와 에너지를 얻고 간다.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과,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안마저도 얻었다.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테니까.


 비난, 자책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했던 자만이 채워낸 내 삶. 그러나 그 속에서 있었던 아무도 보지 못한 수많은 고뇌와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던 내게 다가온 릴케의 따스한 충고, 그리고 언젠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던 후배와 함께 나누던 시, 그리고 2018년의 마지막 토요일ㅡ 박영준 코치님이 다시 상기해 준 시가 다시 나에게 말해준다.  


 그러니 지금을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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