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의 꽃은 일상 포스팅이라고 했던가. 수년 전, 첫취업을 위해 이것저것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던 무렵에 블로그를 개설했다. 나의 자격증 취득 후기와 공부방법 등의 정보글에 댓글로 수많은 합격수기가 달리던 시절을 뒤로하고, 이윽고 직장에 다니게 된 나는 조금씩 변화하는 일상을 잊지 않으려고, 그리고 쳇바퀴 굴러가듯 지루하고 똑같아 보이는 매일의 다른 점을 찾아내려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블로그에 말이다.
그 블로그의 일기 카테고리에는 오늘까지 무려 600여 개가 넘는 글이 기록되었다. 나 조차도 그 글을 다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매일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수년간 쌓인 글의 수만큼 나에게도 어떤 발전이 있긴 한 걸까. 어제 하루도 성실하게 쓴 일기에 오늘따라 몇 개의 코멘트가 달렸다. 자랑하기 쑥스럽지만 대충 내 글을 좋아한다는 따듯한 말이었다.
내가 뭐라고 썼더라? 4월부터 5월까지, 두 달간 쓴 최근의 일기를 쭉 읽어봤다. 내가 쓴 글이라 나를 배제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보려고 했다. 그러자 내 문체가 보였다. 아, 이거 익명이든 익명이 아니든 내 문체가 익은 사람들은 내 글을 바로 알아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재미있었다.일기일 뿐인데 담담한 문체에 여러 가지 마음이 담겨있었고,소설에서처럼 정해진 주인공은 없지만 나와 누군가의 일상은 매번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니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미 나와 함께 오늘의 수다를 떤 친구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고 여전히 진행 중인 누군가의 삶이 잘 정리되어있는 글.나는 실제 말 수가 적은 대신, 글로 조곤조곤 떠들어대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익명을 유지하던 블로그이다 보니, 가끔은 익명의 제약이 있었다. 대체로 익명성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고 좋지만, 때로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 효과적이겠다 싶은 적도 있었다. 그래서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이곳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보려고 한다.
첫째, 재무담당자 실무.
가능하면 회사생활 에피소드를 풀어가며 실무를 재미있게 설명해보고 싶었는데, 퇴사하는 마당에 회사 자료를 쓸 수는 없어서 회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가능한 배제한 채 다소 건조하게 써야 할 것 같다. 브런치에서 직무 관련하여서는 마케터를 많이 본 것 같은데, 재무 실무자는 흔하지 않은 듯하다(혹시, 숫자만 보는 사람은 대체로 글재주가 없기라도 한 건지..). 좋은 정보가 모일 수 있도록 여러 작가가 참여 가능한 매거진을 만들 계획이다.
둘째, MBTI 타입 중 나의 특성을 INTP의 전형으로 일반화한 글.
갑자기 MBTI 과몰입이 유행하던 시기에 내 블로그에 유입이 폭발적이었던 소재인데, 그 뒤로 준비하던 글이 내용이 너무 많고 퀄리티도 좋아서 기왕이면 제대로 된 콘텐츠로 발행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셋째, 음악 창작과 제작에 대한 글.
이건 내 일이기도 하면서 회사생활과는 관련이 없기에 마음껏 에피소드를 풀 수가 있다.
위의 세 가지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것은 주로 일기나 수필일 것이다.
나를 드러내고 글을 쓴다는 건, 익명일 때보다 더 표현을 조심하고 주의해야 하더라. 누군가를 언급하는 일도, 그에 대한 내 감정을 드러내는 일도. 어쩌면 많은 것을 생략해서 형편없는 글을 쓰게 될까 염려되나, 회사 생활로부터 멀어지고 차차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브런치에도 진솔한 에세이를 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