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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채우기 위한 역사(1)

네 인생 바로알기

by 소심한 김사장

나는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알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생각했던 것 보다 어려운 존재였다. 나는 나를 안다고 생각했다. 모국어를 구사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였다. 그래서 굳이 스스로에 대해 자문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관통하는, 했던 가치는 무엇이였는지, 어쩌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와 싫어하는지 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다. 아래는 나에 대해서 더 잘 알기위한 일종의 의미찾기 프로젝트다. 누군가는 스스로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가졌을지 모르나 내가 아는 나는 그렇지 않더라. 주관이 담기겠지만 활자로 나열해 놓으면 무엇인가 보이지 않을까? 그래서 직접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빈칸을 가지고서 태어난다. 우리가 삶을 사는 이유는 그 빈칸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채우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 삶은 의미를 찾는 과정이다. 의미를 찾는 방법은 다양하다. 경험과 지식습득, 가치관 형성을 통해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나는 삶의 목적과 가치관을 찾기 위해 ‘경험’을 도구로 이용해왔다.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보다 몸소 경험하는 방법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운 길이 싫었다.


사회경험의 시작으로 학생회 활동을 했다. 학창시절의 사회적 지위는 내가 추구했던 가치이자 같은 교복을 입는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돋보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정 6년동안 학생회 활동을 했다.


"6년이나 했으면 지겹지 않아?" 친구가 웃으며 물었다.

"멋있잖아" 나는 툭 던졌다.


그게 이유였다. 거창함, 내 인생 첫 가치가 멋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나는 사회적 지위가 나를 기만하는 가치였다는 것을 깨달었다. 직책만 학생대표임에 불가한 허수아비는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합리화했다. 이것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 가치라는 사실을 깨우치기 까지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14년 3월.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문적 몰입을 추구했다. 고등교육기관에서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될 때 비로소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서 인문사회 학문을 전공했다. 사업을 하시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시장경제에 관심이 많았다. 더불어 프로세스 설계에 대한 공학적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에 경영공학분야에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강점들을 활용해 2년동안 전공에 집중했다. 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학술논문을 써 공모전과 학회에 참여했다. 힘들지 않았다. 내가 즐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학문적 몰입은 나에게 대학생활의 의미와 자기확신을 주었다. 처음으로 의미의 존재 인식했다.


2015년 7월. 휴학과 동시에 군 입대를 했다. 군대는 2년간의 사회적 도태와 경력단절을 의미했다. 국방의 의무를 지는 일이 학업이나 사회경력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생활을 통해 얻은 자기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2년의 공백기는 나에게 더 높은 수준의 학문적 도달을 위한 축적의 시간이었다. 그 첫 단계로 독서습관을 길렀다. 좋은 선택은 좋은 정보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분야를 막론한 도서들은 내가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논리가 정연한 작가들의 사고방식을 접하면서 유수의 대학이 가르치는 교육방법과 인프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2017년 9월. 목표가 생겼다. 편입을 통해 양질의 교육과 넓은 인프라를 가지는 일이였다. 편입을 하기위해 자료를 찾아보니 영어라는 걸 해야한단다. 내 해마는 2013년 12월로 향한다. 내 손에 들린 수학능력검정 성적표라고 적혀있는 종이에는 내 12년간의 영어실력이 수치화되어 검은 잉크로 찍혀있다.


"6등급"


내 인생 가장 나를 괴롭히던 적을 이제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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