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면 오후 4시, 늦어도 오후 6시면 별다른 연락 없이 창고 반 연습실 반인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먼저 도착한 사람은, 다 모이기 전까지 낡고 큰 회색 소파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소파는 창고와 연습실을 나누는 경계였다. 혼자 소파에 앉아 고철덩들을 등지고 음악을 듣는 건 유난히 좋았다.
20살의 우리들은, 또래의 보통 남자들과는 조금 다르게 시간을 보냈다. 술도 마시지 않았고, PC방에서 게임을 하지도 않았다. 대신 다들 담배는 꽤나 피워댔다. 당시에는 천 원 한 장 또는 거기에 100원 동전 하나 정도만 더하면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술이나, 게임은 사치였지만, 담배는 감당할 만했다.
담배를 많이도 피워대는 우리였지만, 그곳에 도착하면 담배연기를 볼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네 명이 다 모이기 전까지는 담배에 손이 잘 가지 않는 터였다.
담배와 함께한 우리의 주식은 콜라와 오예스였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이로 된 과자 박스가 방음에 도움이 된다고 했고, 이후 틈만 나면 과자 박스를 벽에 붙여대기 시작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주머니에 담배를 사고도 2,000원 남짓 남은 날은 항상 오예스를 한 박스 사서 오는 게 불문율이었다. 근데 왜 그게 꼭 오예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초코파이보다 오예스를 더 좋아했다.
이거 들어봤나? 안 들어 봤으면 한번 들어봐라.
이거 구하기 힘들다던데.
다 모여들면 연습보다 음악 이야기들을 먼저 하곤 했다. 각자의 한정된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정성껏 큐레이팅 한 작품들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세계를 넓혀갔다. 굳이 깊게 설명들은 하지 않았다.
분명 그때는 지금보다 결핍의 시기였다. 하지만 결핍이 꼭 나쁜 건 아니다. 그 소파와 음악, 콜라와 오예스만 있으면 밤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