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치의
<날마다, 28>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싱긋
20년 하고도 몇 해 전 어느 봄날, 교문 앞 광경은 참으로 낯설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서 있었을 때 신호를 기다리며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더니 어느새 한 무리가 되었다. 신호가 바뀌자 사람들은 꼬리가 긴 먹물이 화선지 위에 퍼지듯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요란한 자동차 경적소리와는 달리 출발선에는 이렇다 할 긴장감이 없었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뀜과 동시에 앞사람은 바삐 걸음을 옮겼고 뒷사람은 앞사람의 걸음에 맞추어 뒤따랐다. 그 무리에 섞여 직선의 평지를 비장하게 걷다보면 사람들은 어느덧 사라지고 결승 지점의 마라토너처럼 나는 혼자가 되었다.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개미처럼 다음날 그들은 횡단보도 앞에서 또다시 무리를 이루었다. 합심하면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처럼 하나가 되어 전진하다 이내 모래알 처럼 맥없이 흩어지는 아침을 매일같이 반복했다.
<날마다, 28>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