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우리 아들은 아직 피끓는 청춘인데..

이미 끝난 관계

by 애이

끝나지 않는 줄다리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나를 끌어당기는 거대한 힘과 맞서며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내 앞에는 딸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초인적인 힘을 내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불안한 뒷모습이 보였다.

남편은 분명 내 뒤에 서 있었지만
의욕 없는 표정으로 손끝만 얹고 있는 듯했다.
그 줄다리기에서 그는 애쓸 마음이 없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었고
본인 커리어가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
절약하는 그의 모습이 좋았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그가 멋있고 든든했었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도
그 사람의 태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했다.
혹시라도 내 치료비로 마음의 짐을 느낄까 봐
그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 관계를 지키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에.

(가족과 친척, 어른들이 조금씩 도와주었고,
암 환자는 중증질환자로 분류되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덕분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시댁의 도움도 의미 있을 만큼 크지 않았다.
치료 기간 동안 과일 한 박스, 현금 10만 원,
그리고 시어머니의 병문안 한 번이었다)




병원일정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커리어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바쁜 남편 대신 친정 부모님이 늘 함께해 주었지만 서운해한 적도, 닦달한 적도 없다.
그건 아마,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다

나는 배려했지만
돌아온 것은 계산적인 현실뿐이었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만 수술당일 (안부차였겠지) 시어머니가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수술은 잘 끝났는지.. 간병하느라 고생한다.. 그런데 우리 K가 아직 젊고 피 끓는 청춘이라 많이 힘들어한다' 는 내용이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적절한 타이밍에 대한 배려도 없이 나와 부모님을 아프게 했다
암이라는 불가피한 고통보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더 깊었다.
그때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정말로,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을.




남편의 확고한 마음,
그리고 아들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건강한 사람과 새롭게 시작하길 바라는 시댁 어른들의 이미 기울어진 마음을 확인하고 나니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알겠어.. 그렇게 하자'라고 말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미리 작성해 둔 협의이혼신청서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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