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치료 중 가정법원에 가다
전 남편과 첫 데이트를 한 건
몇 해 전 이맘때쯤이었다.
약속 장소에서 날 보자마자 활짝 웃던
그 미소가 인상적이라 추운 날씨였지만
마음이 따뜻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제 남아있는 기억은
가정법원에서 만난 차가운 그의 모습이다.
안 그래도 추운 날씨가 그 사람의 메마르고
애정 없는 눈빛 때문에 더 싸늘하게 느껴졌었다.
그날은 한 달간의 숙려 기간을 마치고
협의이혼을 마무리 짓기 위해 법원에 출석한 날이었다.
이제 모든 게 끝이란 걸 알았지만
미련스럽게도 오랜만에 그 사람을 만난다는 생각에 아주 조금은 설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남편이
다시 마음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이혼하지 말자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헛된 생각을 하며 치마를 입고 부츠를 신고 나름대로 꾸미고 갔었다.
그런데 만났다는 반가움도 잠시,
그 사람은 이미 내게 마음이 떠났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진짜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몰려오면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그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대기실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정 없는 얼굴로, 어쩌면 영혼 없는 모습으로
담담하게 각자의 상대와 자신들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누가 봐도 미련 뚝뚝 흐르는 모습으로
그곳에 있었다.
오지 않길 바랐던 우리 순서가 되었고
협의이혼 확인실로 들어갔다.
' 28번 들어가세요 '
그곳에는 우리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정리해 줄
판사가 앉아 있었고, 그 판사가 물었다.
' K은 A님과 이혼하시겠습니까?'
남편은 망설임 없이 또렷하고 명확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울먹이며 대답하지 못하고 있자 다시 한번 물었고
판사와 판사 옆에서 신고서를 작성하는 서기
그리고 내 옆에 앉아있는, 이혼을 원하는 남편이
동시에 날 쳐다봤다.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이라도 안 한다고 할까..
내가 협의 안 하면 이혼이 성립이 안되는데
잘못한 게 없으니 소송도 못하는데
아니야 아니지.. 해야지..'
' 네 '
내 대답을 끝으로 우리의 이혼신고서에는 판사의 확인 도장이 찍혔고,
나와 그 사람의 결혼생활은 끝이 났다.
혼인이라는 법적 관계가 사라지고
말 그대로 남과 남이 되어버렸다.
거리에는 캐롤이 흘러넘치고
연인들 사이에는 사랑이 넘치는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두고 나는 이혼녀가 되었다.
마음이 너무너무 많이 아파서 참 많이도 울었다.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찰나의 순간은 내 기억 속에 깊게 자리잡았다.
그리고 원하지 않지만 간헐적으로 떠올라서
내 마음을 시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