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받아서 뭐 해...
부모님 동행 없이 처음으로
혼자 병원에 간 날이었다
평소에는 그냥 스쳐 지나가던 병원 풍경들이
유난히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고,
병실특유의 냄새도 더 짙게 감돌았다
소독약 냄새, 차가운 복도,
각자의 사연을 품은 다양한 얼굴들까지.
늘 그렇듯 예약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검사는 조금씩 밀리기에
그날도 대기실에 앉아 시간 보내기용
폰 스크롤링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 환자 A와 간호사 B의 대화가 들려왔다
A: 항문 쪽 통증이 점점 심해져요
B: CT상 사이즈가 조금 더 커진 걸로 나와요 근데 아시겠지만 쓸 수 있는 약이 얼마 안 남으셔가지고...
A: 아…
간호사는 사무적으로 설명을 마치고
곧바로 다음 환자의 이름을 불렀다
순간 마음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힘내세요’라는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될까 조심스러워 섣부른 위로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다음 약이 제 역할을 해주어,
다시 일상으로 걸어가실 수 있기를 조용히 바랐다
그런 마음이 스치고 지나가는 사이
내 이름이 불렸고, CT 촬영실로 들어가
둥근 통 모양의 검사장비에 누웠다
'숨 들이마시세요'
지시에 따라 있는 힘껏 폐 속에 공기를 채웠다
갈비뼈가 위로 그리고 옆으로 벌어졌다
곧이어 조영제가 흘러 들어오며
혈관을 타고 뜨거운 감각이 훅 밀려왔다
독한 술을 마셨을 때 식도가 어디 있는지 또렷하게 알 수 있는 그 느낌처럼.
남은 검사를 받기 위해 다른 층으로 이동하는데
이번엔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여럿 눈에 들어왔다
암 병동에서 마주하는 내 또래는 대부분 환자가 아니라 보호자다
6,70대 부모님의 딸로서 온 보호자
또는 소아암환자의 엄마로서 온 보호자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친,
지쳐 보이는 30대의 젊은 엄마가 보였고
그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는 어린아이가 앉아있었다. 작고 여린 아이의 손등에 링거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그들에게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몇 달 전의 내가 떠올랐다
'왜 나만 이 나이에 아픈 거지?'
민머리에 비니를 쓰고 있는 나를 보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시선이 너무 싫어
반항심까지 들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시선을 누군가에게 그대로 보내고 있었다. 당시에 내가 느낀 불편감이 생각나 곧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속으로 조용히 빌었다.
아이가 부디 건강하길.
중학생이 되어 교복도 입어보고
20대의 건강한 젊은 날을 온전히 누려볼 수 있기를 말이다
이혼 후,
내 삶에 대한 의지는 한껏 쪼그라들어 있었는데
다른 환자와 그 작은 아이의 미래는
간절히 응원하게 되었다.
치료의 의미를 잃어가며 무기력해진 나와
누군가의 삶을 기도하던 나,
그 두 개의 마음이 공존했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