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 사랑에 빠지다
*저의 아주 개인적인 경험임을 밝힙니다.
외국인과 연애를 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서로 간 다른 지점이 개인의 개성에서 온 건지, 아니면 문화적 다름에서 온 것인지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친구들과 노는 문화. 유유상종이라고, 나의 친구들은 하나 같이 낯선 사람을 만나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으며 우리끼리 카페에서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단 한번도 "내 친구도 불러도 돼?"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인지 "술자리에서 만난 사이" 같은 말을 들으면 믿기지가 않는다. 모르는 사이인데 술자리에 부른단 말이야?
반면 싱가포르에 와서는 친구의 친구가 모임에 오거나, 동료가 여는 홈파티에 애인들이 온다거나 하는 광경을 자주 보았다. 다른 글에서도 썼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진지한 사이가 아니어도 친구들 모임에 놀러가고는 한다.
그래서인지 내 싱가포르인 남자친구와 사귀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도 그의 친구들을 보곤 했다. 그러나 그런 모임에 다녀온 날에는 십중팔구 기분이 나빠져서 돌아왔다. 어느 날에는 불쾌한 감정이 감당이 되질 않아서 한국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한 적도 있다.
물론 내 남자친구의 친구들은 모두 다정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기분이 안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크게 두 가지일 것 같다.
첫번째, 낯선 사람을 여러 명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다. 나도 친구 사귀는 것을 좋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그것은 한 두명에 한정되었을 때다.
여러 명을 그룹으로 만나게 되면 그때부터는 어느 타이밍에 치고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듣고 있느라 진이 다 빠진다. 그들이 나와 공감대 형성이 안 될때 더더욱. 싱가포르인들이 부동산 이야기를 할 때 내가 뭘 그렇게 잘 알겠는가...!
두번째, 영어가 너무 힘들다. 싱가포르에 온지 2.5년 정도가 되었지만 아직도 영어는 정말 버거운 부분이다. 나에게만 해당되는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억양에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나의 상사들은 줄줄이 인도인들이었기 때문에, 인도 영어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도인의 영어를 완벽히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자주 쓰는 단어, 사투리 억양, 속도 같은 것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런 것들에 익숙해지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을 8-10명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겪어야 한다면... 당연히 "Sorry?", "Pardon me?"를 주구장창 외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런 나 때문에 분위기가 싸해질까 무척 두려워져서 나는 점점 작아진다.
처음에는 남자친구가 나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 그는 타고난 외향인인데다가 언어에 어려움이 없다. 나로서도 정말 미안했는데, 그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나 때문에 기분이 다운되었기 때문이다.
34살 먹은 남자가 "내 친구들이랑도 놀고 싶고, 너랑도 놀고 싶어"라고 말할 때 얼마나 귀여우면서도 미안했는지. 내가 사회성이 좋거나 영어를 잘하거나, 둘 중 하나라도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우리는 적절한 지점을 찾았다. 그는 여러 명이 만나는 모임에 더 이상 나를 초대하지 않는다. 슈퍼 외향인인 그가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 나는 "Have fun!"을 외치고 집에서 심슨 가족을 보거나 책을 읽는다(천국이 따로 없다.).
하지만 그가 한 두명의 친구를 만나러 갈 때 정도는 고마운 마음으로 따라간다. 어쨌건 그가 나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데리고 가는 거니까, 참 낭만적인 일이다. 차이의 시작점이 서로 다른 문화가 되었건, 타고난 성격이 되었던 간에, 우리는 어찌저찌 맞춰 가며 연애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