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 INFP가 외국에서 친구를 만드는 법

싱가포르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나는 인프피다. 친구를 만드는 방법이라곤 간택 당하는 것 밖에 없다는 인프피. 혼자 있는 걸 선호하지만 고립될까 두렵기도 한 인프피.


누가 봐도 해외 생활에 적합한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으레 해외 이직이나 유학에서 성공한 사례를 보면, 넉살 좋게 안 되는 영어로라도 척척 말을 붙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나 역시 싱가포르에 오면서 내심 걱정했던 부분이었다. 고립되는 건 싫지만, 그렇다고 모임에 나가서 낯선 사람을 대거 만나는 건 딱 질색이야! 더군다나 영어로....... (한번 말해서는 내 마음이 전달되지 않는다. 다시 강조하자면, 정말 질색팔색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걸, 으레 인프피들이 그렇듯 싱가포르에서도 그저 열심히 존재하기만 했더니 소중한 인연들이 생겼다.




"우리 중국인들은 아픈 사람을 보면 못 지나치거든" - 동료 L이 사준 따뜻한 죽

Photo by Amanda Lim on Unsplash



싱가포르로 처음 이직을 했을 때, 회사는 완전히 아사리판이었다. 전임자들이 한꺼번에 그만 두고 없는 데다가 내 위의 상사도 해당 팀에서 일을 한 지 일년 밖에 되지 않은 상황.


오로지 L과 나만이 모든 일을 쳐내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는 팀이 안정화되어 총 7명이니, 그 정도 일을 후임자 세 명이 했다고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였을지 감이 올 것이다.


나는 타고나기를 장이 약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이 오면 반드시 장염에 걸린다. 더군다나 이 상황을 병원에 가서 영어로 설명해야 하다니! 어느 병원을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스트레스는 여러 방향에서 치고 들어왔다. 한 방향으로만 들이치지 않는 파도처럼.


내가 아프다는 걸 L이 어쩌다 알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쨌건 그는 나에게 "오늘 저녁은 내가 죽을 사줄게. 따라와"라고 했다.


그는 중국계 말레이시안으로, 바로 옆 나라라고는 하지만 그 역시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죽도록 애를 쓰고 있었다. 죽을 사주면서 그가 하던 말. "우리 중국계들은 아픈 사람을 보면 못 지나치거든".


그 이후로 비슷한 말을 들어보지 못한 관계로, 중화권 문화가 정말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약간 머쓱했던 L이 그냥 덧붙였던 게 아닐까.


실상 죽을 좋아하지 않건만, 때때로 나의 머쓱한 말레이시안 동료가 사준 죽이 생각나곤 한다. 싱가포르에서 느낀 첫번째 따뜻함이었다.




"글로벌 시대, 차카게 살자... 어느 나라에서 누구를 마주칠지 몰라!(웃으며)" 알고보니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J


J와 나는 단 것을 좋아한다. 어느 날 만나 어김없이 먹은 디저트


때때로 운이 한번에 들이닥칠 때가 있다. 싱가포르로 이직을 할 때, 이전까지는 주어지지 않았던 면접 기회가 세 군데에서나 주어졌다.


J는 그 중 한 회사의 팀장으로, 나를 면접 본 한국인이었다. 연봉을 더 높게 주는 다른 회사를 선택한 관계로 J의 회사로는 가지 않았는데, 반년 정도 지나 링크드인으로 연락이 왔다. 같은 업계에서 한국인을 찾기 쉽지 않은데 연락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고.


고립될까 두려운 인프피로서는 고마운 간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함께 하게 된 밥 한 끼.


그의 집 근처 쇼핑몰에서 만나 밥을 먹었는데, 알고보니 우리는 동갑이었지만 사회생활 하는 직장인으로서의 언어에 익숙해진 탓에 말을 바로 놓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편안하게 이어진 걸 보면, 한국에서 빠져나와버린 사람들끼리 통하는 뭔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싱가포르 문화가 주는 자유로움, 다양함을 수용하는 분위기, 외국인으로서 느끼는 한계 같은 것들.


어찌되었든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가는 길, J가 나에게 인스타그램 친구를 하자고 했다. 친구가 되고 보니 어라, 공통된 친구가 전부 고등학교 친구들이잖아?!


알고보니 J는 나와 3년 내내 같은 고등학교를 다닌 동창이었다. 둘 다 고등학생 때 얼마나 외골수였으면 오며가며 봤을 만한 얼굴도 기억을 못했던 건지.


그 날 우리는 우정도 얻고 깨달음도 얻었다. "글로벌 시대, 차카게 살자...어느 나라에서 누굴 마주칠지 몰라!"




Outro

L을 포함한 다른 동료들과 함께 다이빙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외에도 나에게는 다양한 인연들이 있다. 다이빙 여행을 함께 간 L 이외 다른 동료들. 그 중 한 명은 나의 싱글리쉬 선생님이기도 하다(주로 속어를 가르친다. Siao Liao! - 미쳤다는 뜻- ).


때때로 만나 수다를 떠는 대학 동창 모임,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애인, 나에게 카라멜을 주며 점심 먹자고 조심스레 물어보던 중국인 친구까지...


그저 흘러가다보면 좋은 사람들을 만날텐데 굳이 걱정을 했다 싶다.


내향인들이여, 외향인들의 성공 사례를 보고 주눅들지 마시길. 외국에 나가더라도 흘러흘러 살아가다보면 우리 방식대로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것 같다. 나와 비슷한 'I'들을 본다면 꼭 그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싱가포르에선, 애인의 친구들을 이렇게 자주 본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