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남자와 한국 여행: 포항편
내향인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오로지 두 경우이다.
1. 직장 상사를 즐겁게 해줘야 할 때 (샐러리맨의 비애)
2. 진짜 마음을 터놓은 사람이랑 갔을 때
싱가포르인 남편이 몇 번 정도 "한국인들은 정말 노래방에 가면 그렇게 노는거냐"라고 물어봤지만 한 번도 보여준 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부부 관계라지만 나의 체통은? 나는 가무에 젬병인 타입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분위기가 싸해지고 만다.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미국인 친구는 나와 내 동생이 춤추는 걸 보고는
This family tree has no dancing genes.
이 집안에는 댄스 유전자가 없군
이라고 했다. 흑흑.
그러나 포항 여행의 막바지에 들어선 우리는 이 이상 할 게 없어 시간을 떼워야했다. 남편이 나의 모국을 여행할 때 최대한 즐거웠으면 하기에 노래방이라도 가기로 결정, 나의 숨겨진 모습을 개방하게 되었다.
노래방에서의 승부처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나는 세련된 최신곡으로는 승부를 내기 어렵다고 본다. 노래방의 꽃은 단연 90년-00년대 댄스곡들로, 우리 내향인들도 도전할 수 있다.
나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으로 포문을 열었다.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내 친구도 믿었기에....
숨막히는 랩과 이어지는 댄스.
그 다음으로는 이정현의 <와> 로 메들리를 마무리했다.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두 곡으로도 이미 숨이 찼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길 믿고 싶었어 널 놓치기 싫었어~
두루마리 휴지를 길게 잘라서 <와> 무대의상처럼 소매를 연출한 것은 덤이다.
남편은 평소 샤이했던(...) 나의 노래방 자아를 보며 웃더니 자기 친구들에게 비디오를 보냈다.
한국 드라마가 진짜였어!!!
그렇게 커플이 된 지 3년만에 한국인과의 만남을 새삼스러워했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