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 때문에 사라진 어촌
바다를 마주할 때마다 2002년, 23년 전의 기억이 떠올린다. 부산 신항 건설 현장, 당시 경남 진해시 용원동 아름다운 해변의 어촌이 항만 대지로 변모해가는 그 풍경이었다.
대한 해협의 배타적 경제 수역의 수심 100m 바다 밑에, 수천 년 동안 쌓인 바다 모래를 준설선이 빨아들이고, 그 모래로 어촌의 해안을 매립하는 현장이었다. 하루에도 몇만 톤 해저의 바다 모래가 사라졌으며 어장은 침묵했다. 여의도 면적의 2.94배에 달하는 11km2의 바다는 "경제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육지가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경제와 자연의 충돌을 목격했다. 현대 사회는 "경제"라는 거대한 인간의 우선순위에 의해 움직인다. "재화와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활동"이라는 경제의 정의 속에서, 우리는 그 시스템의 부품이 되어 돌아간다.
성장, 효율, 이익이라는 단어들은 주문처럼 우리의 결정을 지배한다. 현대인의 삶은 이 경제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 가는 듯하다.
하지만 모든 작용에는 반작용이 있는 법. 경제 발전이라는 빛나는 성과 뒤에는 '환경 파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코로나의 장기화, 강력해지는 태풍들, 예측할 수 없는 홍수—이 모든 것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깨어진 균형이 보내는 경고음이다. 우리의 끝없는 욕망이 자연에 남긴 상처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20년 전, 네덜란드 컨퍼런스에서 만난 해양 엔지니어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평생을 바다를 매립하고 개발하며 살았다. 환경을 망가뜨린 것이다.
이제 남은 생애는 그 상처를 치유하는 데 바칠 것이다." 노년의 목소리에 실린 후회와 결의는 오래된 항구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처럼 깊고 쓸쓸했다.
우리는 왜 항상 후회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왜 상처가 깊어질 때까지 모른 척해야 할까?
물론 경제 발전의 혜택을 부정할 수 없다. 완공된 부산 신항만에는 수십 척의 선박들이 오고가며 활발한 무역으로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일자리가 생겨났고, 국가 경제는 탄탄해졌다. 이것은 분명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변화다.
그 자리에 원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바다 속의 해초와 물고기, 밀물과 썰물의 리듬에 맞춰 숨쉬던 수많은 생명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유럽에서 네덜란드의 운하, 독일의 숲, 프랑스의 해안에서는 상처 입은 자연을 치유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이 계속된다. 그들은 자연을 '빌려 쓴다'는 마음으로 돌려주기 위해 애쓴다. 대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보다 훨씬 길고 깊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반면 우리는 어떠 한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산을 깎고, 강을 막고, 바다를 메우면서도 그 상처를 치유할 생각은 후순위다. 우리가 보금자리를 넓히는 동안, 제 자리를 잃은 생명들은 침묵 속에 사라졌다.
무심코 버려진 비닐 한 장이 산과 바다의 슬픔이 된다. 편리함을 위해 흘려 보낸 하수가 수천의 생명에게는 독이 된다. 인간의 이익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자연의 질서는 흔들리고,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도 위태로워진다.
경제와 환경 사이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일까? 발전과 보존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가치일까? 아니다. 이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과제다.
자연의 시간을 존중하며, 그 흐름에 거스르지 않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인간의 욕망과 자연의 보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은 폭풍우 속에서 배를 운항하는 것처럼 어렵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환경과 함께'라는 원칙 아래 경제 활동을 다시 그릴 때, 우리는 비로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
경제개발과 환경보존 사이에 갈등할 때마다, 자연의 깊은 한숨을 떠올려야 한다. 달빛 아래 일렁이는 파도, 새벽 숲의 안개, 계절의 변화를 맞이하는 산천... 자연은 인간의 계산을 초월한 깊고 넓은 시간의 질서를 품고 있다.
바다의 숨결이 해안에 닿을 때마다, 삶의 근원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이 속삭임은 우리에게 겸손함을 가르친다.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의 소명은 이 땅의 청지기로서 자연을 보살피고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밟는 이 대지, 마시는 이 공기, 바라보는 이 바다는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이다. 자연의 질서를 경외하고 보전할 때, 우리의 삶도 온전한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창가에 서서 도시의 풍경을 바라본다.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좁게 보이는 하늘과 아파트 단지내 작은 녹색 가지들. 우리가 만든 이 인공의 구조물 속에서도, 자연은 끈질기게 숨쉬고 있다. 아스팔트 틈새의 잡초처럼, 도심 공원의 작은 새들처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경제 성장과 생태계 파손 사이에서, 우리는 미래 세대를 위한 지혜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사명이다. 자연의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야 말로 인류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현명한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