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둥이 된 구호
검소한 생활, 능력껏 배우자, 이웃을 위해 살자
"이제 신세 들볶지 말고 살아!" 아내가 우스개 소리로 하던 말이다. 인생의 겨울이 다가오는 나이에 "이제는 좀 하고 싶은 거 해. 이제는 좀 자신을 위해 써"라고 한다.
너무 인색하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세 문장이 있다. 마치 오래된 가훈처럼, 또는 몸에 밴 생활신조처럼. "검소한 생활. 능력껏 배우자. 이웃을 위해 살자."
이 세 문장은 1970년 초 어느 토요일 오후, 인천의 태화복지관 회의실에서 시작되었다. 한 선생님이 외쳤고, 불사조 클럽 남녀 고등학생 30명이 함께 따라 했다. 그때는 이 문장들이 내 인생 50년을 지배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신학자 남편과 목사님 아내 부부가 설립한 청소년 봉사 활동 모임이었다.
때론 복지관 회의실에서, 때론 여름 캠핑장에서, 어느 때는 선생님 댁에서 우리는 이 구호를 외쳤다. 1970년 초 일인당 국민 총소득 250달러의 시대였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콩나물 시루 버스와 최루탄 냄새, 무너질 듯한 루핑과 슬레이트 집들이 있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농촌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던 역동의 시대였다. 도시의 야망과 혼란 속에서 '불사조 클럽'은 서로의 형편을 살피는 끈끈한 공동체였다.
첫 번째 약속, 검소한 생활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렸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했다. 검소함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생존의 지혜였고, 자립의 첫걸음이었다.
소비를 줄이고, 본질에 집중하고, 작은 것에서 만족을 찾는 삶이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식당에서 가격표를 먼저 본다.
적정 가격과 비싼 것을 구분한다. 탐나는 물건도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 아내는 답답해 하지만, 그 구호가 내 체질을 만들었다. 글로벌 기업 한국 대표로 일하며 풍요로운 자리에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은퇴한 지금도 변하지 않는 기본자세다.
두 번째 약속, 능력껏 배우자
1970년대는 가난 때문에 꿈을 접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가능한 만큼, 끝까지 배워야 한다"는 가르침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었다. 삶에 대한 태도였다.
주경야독으로 경영학을 마치고, 45살에 영어 공부를 하며 글로벌 해양 토목 기술을 학습하여, 국내에 적용하며 기술을 전파했다.
25년 동안 글로벌 해양 기업과 연결된 것도 능력껏 배우자는 그 약속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은퇴한 후에도 AI를 배우며 책을 읽고 글쓰기를 배우고 있다. 시니어가 AI를 배우는 것을 어떻게 생각 할까? 나는 배움이 멈추는 순간 삶도 멈춘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약속, 이웃을 위해 살자
가장 무겁고도 가장 깊은 약속이었다. 1970년대 인천 도시산업 선교회 활동을 하시던 교수님과 목사님은 산업 현장의 근로 환경과 여성 노동자들의 고통을 피부로 느끼셨다.
그 시기 인천 동일방직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로조건과 어용노조에 핍박을 받았다. 그때 도시산업 선교회는 여성 노동자들의 실질적 지원기지 역할을 했다. 우리는 그 선교회의 활동을 보고 들었고, 이웃의 아픔을 알게 되었다.
내 인생은 많은 분들의 사랑과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분들에게 감사하며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선교사역을 후원하며, 소외된 이웃을 돕고, 해양 토목의 신기술을 소개하며, 업계 후배들에게 기회를 열어주고자 노력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불사조 클럽의 약속으로부터 연결된 것이었다.
풍요로운 시대의 고백
세상은 많이 변했다. 2024년 1인당 국민총소득은 36,000달러가 되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어도, 사람 사는 원리와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불사조 클럽이라는 작은 모임에서 배운 세 가지 약속이, 결국 내 삶의 토양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절 그 약속이 자랑스럽다.
"자기는 정말 열심히 살았어. 이제 좀 즐기면서 살아도 돼." 아내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게 내 모습야. 불사조 클럽에서 약속한 것들이 오늘의 나를 만든 거야." 가끔은 편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누군가가 외친다.
" 검소한 생활. 능력껏 배우자. 이웃을 위해 살자."
삶의 기둥을 세워 주신 김호현 교수님, 윤문자 목사님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