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지워져도 태도는 문신처럼 남는다
추억을 찾아 가는 사람들
사람은 기억으로 살아남지 않는다. 사람은 잊혀진 뒤에 남긴 태도로 기억된다.
지난 12월 13일 인천 연수구의 한 식당으로 가는 길에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일찍 출발해 약속 시간보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했다. 해마다 이어지던 송년 모임이었지만, 그날의 걸음은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오래 연락이 끊겼던 선배들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청춘이 머물렀던 시간의 설계자들이었고, 함께 풍랑을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주차를 마치고 식당으로 걸어가다 L 전무를 마주쳤다. 같은 회사에서 14년을 함께했고, 그중 2년은 직속 상사로 모시고 일했다. 그는 나에게 단순한 상사가 아니라, 내 직장 생활을 상징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반가움도, 망설임도 없이 낯선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
“누구 십니까?” 나는 이름을 말했다.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얼굴이 생각이 안 나는데…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서운함보다 먼저 밀려온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아, 이것이 기억의 상실이구나. 함께 보낸 14년의 시간이 한 마디 앞에서 증발해 버렸다. 기억이 이렇게 사라질수가 있나?
우리는 왜 이렇게 기를 쓰고 모이는 걸까? 왜 이미 지나간 시간의 잔해를 붙잡고 송년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모이는 걸까? 자리에 앉아 옛날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자, 그의 얼굴에 희미한 불이 켜졌다.
“아, 이제 좀 생각이 나네요.”
그의 기억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타인이 건네는 추억의 조각을 따라 잠시 숨을 쉬었다. 기억이란 혼자서는 살아나지 못하고, 늘 누군가의 손을 빌린다.
그의 나이 87세였다. 말은 또렷했지만 기억은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그는 나 뿐만 아니라 함께 온 동료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이름 대신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 순간, 사람을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되었다.
모임의 풍경은 묘하게 갈라졌다. 아직 현역으로 살아가는 이들과, 인생의 황혼을 걷는 사람들이었다. 젊은 쪽은 생존을 이야기했다. 부동산과 투자, 타이밍을 놓친 선택들에 대해 말했다. “그때 그걸 샀어야 했다”는 말이 오갔다. 그 말 들에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
반면 나이 든 쪽은 죽음을 이야기했다. 작년과 재작년에 떠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이제 우리 순서가 남은 거지.” 웃으며 던진 말이었지만, 그 웃음은 겨울비처럼 차가웠다. 시간 앞에서 사람은 결국 겸손 해진다.
모두가 생존과 상실을 이야기하는 중에 가장 조용했던 사람은 K선배였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도 남을 판단하지 않았고, 흉을 보지 않았다. 그저 듣는 사람이었다. 거기서도 고기를 굽던 아주머니에게 그가 말했다. “고기를 참 잘 구시네요. 맛있겠네요.”
20여 년을 함께 일하며 그를 싫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를 보며 기억은 지워질 수 있어도, 몸에 새겨진 태도는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은 이름이나 직함보다, 함께 있을 때 남긴 감정의 온도로 기억된다는 것을 알았다.
은퇴 후 송년 모임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한때 거친 바다 위에서 해로를 건설하며 흘렸던 땀방울이 헛되지 않았고, 서로의 눈빛 속에 새겨진 그날의 따뜻한 문신을 보며 위로 받기 위해서다.
기억을 잃는 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늙음의 필연적인 경로다. 문제는 기억이 사라진 뒤에도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 있는가 라는 점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대에게 할당된 시간은 전체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한 점에 불과하다.” 우리가 붙잡고 사는 기억과 후회, 자랑과 미련은 우주의 시간 앞에서 모두 한점의 먼지가 된다. 그는 또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사느냐가 전부다.”
기억은 과거에 속하지만, 태도는 현재에 나타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말투와 표정, 침묵의 온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기억이 사라진 뒤에도 편안함으로 남고, 어떤 사람은 오래 기억되어도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끝없이 살 수 있는 것처럼 살지 마라. 죽음이 너를 덮으리라. 네가 살아있고 능력이 있다면, 옳은 길을 가라.” 나는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그날 식당에서 만난 얼굴들을 떠올린다.
이름을 잊어도, 따뜻함은 남는다. 기억은 사라져도 태도는 몸에 문신처럼 남는다. 비 내리던 겨울 초입, 한해의 송년 모임에서 나는 기억의 상실을 보았고, 동시에 삶이 가야 할 방향을 보았다.
우리는 언젠가 서로를 몰라보게 될 것이다. 얼굴도, 이름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함께 있었던 시간의 온도는 남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을 고르고 글을 쓴다.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따뜻했던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 글을 쓴다. 시간이 나를 지워도, 내가 남긴 태도만은 누군가의 마음에 문신처럼 남아 있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