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헬렌켈러 미로

배곧의 겨울 바다

by The Way

바다는 받아준다

마음이 답답하면 나는 바다를 떠올린다. 울적한 날에도, 생각이 꼬일 때도 마찬가지다. 넓은 수평선을 눈앞에 그리면 가슴 한편에 뭉친 것들이 풀린다.


2025년 12월 19일 오후, 나는 시흥시 배곧 신도시 한울공원에 있었다. 서울에서 45분에 만날 수 있는 바다다. 강남순환도로와 경인 2 고속도로를 지나, 오이도 가기 전에 있는 곳이다.


기온은 영상 11도, 햇빛은 따스하고 바람은 없었다. 바닷물은 만조라 갯벌은 보이지 않았다.
물은 가득 차 있고, 수면은 고요했다.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다.


아내와 나는 가끔 이곳을 찾아 걷는다. 바다를 끼고 난 산책로는 길고 단정하다. 4km 길 옆으로 철 지난 빨간 해당화 열매가 매달려 있다. 오른편 육지에는 아파트 단지가, 왼편에는 바다가 펼쳐 쳤다.


인공구조물과 자연이 서로 연결돼 있고, 사람들은 그 사이를 걷는다. 한울공원은 배곧 신도시와 함께 만들어졌다. 버려진 해안 초소 39곳을 활용해 만든 공원이라고 한다. ‘배곧’은 원래 지명이 아니다. ‘배우는 곳’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헬렌 켈러 미로를 걷다

산책로 중간에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베토벤, 헬렌켈러, 라이트형제, 장영실 등의 위인들 테마로 조성된 구간이 있다. 그중에 특별한 것은 헬렌 켈러 미로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구조 같다.


미로 바닥에 시각장애인용 점자 블록이 설치되어 있다. 눈을 가리고 점자 블록을 통해 미로를 빠져나오게 되어 있으나 그것은 쉽지 않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잠시 생각했다. 여기, 왜 헬렌 켈러일까?


바다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깊이를 품고 있다. 헬렌 켈러는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진실을 발견했다. 이곳 배곧은, 보이는 것 너머를 배우는 곳이다. 그녀의 삶을 빌려 배움과 극복을 배우는 곳이다.


나는 미로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눈을 뜨고 보면 길은 단순하다. 눈을 감으면 복잡해진다. 미로는 우리 삶의 엉킨 마음과 닮아 있다. 눈감고 점자 블록을 통해 미로를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 천천히 걷다가 멈춰 선다.


보는 일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걷는 것 역시, 그냥 주어진 능력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보고 걸을 수 있는 것은 선물이었다. 헬렌 켈러가 어둠 속에서 발견한 내면의 빛이 우리의 배움이 된다.

헬렌 켈러의 미로

일터였던 바다, 배움의 바다

미로를 빠져나와 다시 바다를 본다. 바다는 나에게 휴식 장소만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내 일터였다. 평생을 바닷속에 항로를 내는 일을 했다. 해상 풍력 프로젝트 현장을 오갔다. 폭풍이 오면 공사를 멈추고, 파도가 잔잔해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기다림 또한 일의 일부였다. 기다리며 방향을 찾는 법을 배웠다.


바다는 자연의 질서를 보여줬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끝까지 남는지를 알려줬다. 파도 앞에서 거짓이 통하지 않았다. 준비하고 겸손해야 살 수 있었다.


나는 늘 새로운 기술을 설명하고,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보여 주는 삶이었다. 지금은 보며 기다리는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


오늘의 바다를 바라보며

의자에 몸을 기대고 바다를 본다. 말없이 물 위를 바라본다. 오늘 바다는 유난히 잔잔하다. 내 안의 번뇌를 밀어내고 고요한 물그림자로 머문다.


물오리 몇 마리가 물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갈매기들은 그 주변을 서성인다.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가장자리에서 맴돈다. 그 모습이 옛날의 나와 닮았다. 나도 주변에 머물던 아웃사이더 시절이 있었다.


멀리 인천 송도가 보인다. 아파트 단지, 빌딩, 공장, 인천 신항만의 컨테이너 크레인들이 줄지어 서 있다. 바다 위에는 준설선과 배들이 떠 있다. 나는 그런 배들을 다루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산책로 옆에는 항만 공사에 쓰였던 임시 부두가 남아 있고, 작은 등대 하나가 조용히 서 있다. 이곳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자리다.


함께 걷는 속도

아내는 다리가 아파 내 뒤쪽에서 천천히 걷고 있다. 나는 운동을 위해 빠르게 걷다가, 다시 되돌아와 아내와 보조를 맞춘다. 함께 걷는다는 건, 속도를 맞추는 일이다. 끝까지 못 가더라도 우리는 같이 걷고 있었다.


같이 걸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이날 우리는 많이 걷지 못했다. 중간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예전에는 끝까지 걸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함께 걸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다시 배우러 오는 곳

바다는 여기에 있고, 이 길도 여기에 남아 있다. 답답하면, 다시 오면 된다. 배곧은 ‘배우는 곳’이다. 나는 배곧의 이름을 곱씹어 본다. 나는 글쓰기를 배우며 에세이를 쓴다. 일주일에 한 번 컨설팅을 하며 비즈니스를 코칭하지만 나는 여전히 배우는 편이다.


헬렌 켈러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았다. 나는 이 바다 앞에서 고요를 배우고 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이 바다에 다시 배우러 와야 한다.


‘청산에 살리라’를 마음속에서 바꾸어 본다.

나는 파도 숨 쉬는 바다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고요한 바다에 살으리라.

세상 번뇌와 시름을 잊고 바다 살리라.

세월은 변했지만, 바다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바다에서 배운다. 쉼을 얻고 힘을 얻으며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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