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아있는 어둠을 밀어내는 힘찬 울음소리. 단풍잎처럼 작은 손으로 침대 바닥을 살살 긁는 소리. 뒤집고 엎드리고 앉아있기를 반복하며 내는 생기 넘치는 숨소리. 아이는 매일 다른 소리를 내며 나를 깨운다. 아이의 기척은 나의 시선과 청각의 방향을 결정하는 만물의 아우성이다. 온 몸의 촉각을 뜨겁게 사로잡으며 떠오르는 작은 태양이다. 아이의 침대까지 몇 걸음 되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어둠을 뚫고 반짝이는 아이의 눈망울을 마주한다. 밤새 한껏 무거워진 기저귀를 갈고, 땀으로 축축해진 옷을 갈아입힌다. 잘 잤는지 좋은 꿈을 꾸었는지 자느라 크느라 수고했다며 아이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준다. 부드럽고 통통한 볼에 나의 볼을 부비고, 잠시 허전했던 내 품에 끌어안는다. 그렇게 나를 향했던 아이의 기척에 힘껏 응답한다. 아이와 나의 하루를 여는 익숙한 장면이자, 아침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지금도 이따금씩 꾸는 꿈이 있다. 일년 전, 오랜 기다림 끝에 아이를 만나고, 처음으로 젖을 물리려고 품에 안았을 때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신비롭고 경이로운 아이의 모습에 난 얼어붙고 말았다. 젖을 물리기는커녕 아이를 안는 것조차 못해서 몹시 허둥댔다. 나 때문에 아이가 불편할까봐 노심초사하며 간호사를 애타게 불렀다. 많은 것들을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내가 여실히 드러났다. 나처럼 부족한 사람이 한 사람의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두려움이 급습했다. 결혼 후에도 쉼 없이 사회생활을 하고 자유롭게 원하는 일을 하며 지냈던 내가 엄마로서의 인생을 잘 살아낼 수 있을까. 남들보다 유난히 반복하는 것을 싫어해서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전에 없던 상황들을 즐겼던 내가 아이를 돌보는 일과 고된 가사 노동이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아를 할 수 있을까. 나의 텅 빈 밑바닥을 확인했던 찰나. 그 순간의 두려움과 떨림이 참으로 강렬해서 지금도 가끔 꿈에서 그때를 마주한다. 꿈의 말미에는 늘 젖을 물지 못해 배가 고파 입을 오물거리다가 끝내 울어버리는 아이와 미안한 마음에 울컥하는 나를 본다.
두 세 시간에 한번 씩 기저귀를 갈고 젖을 물리고 재우기를 되풀이했다. 나 뿐 아니라 아이 역시 자궁에서 나와 세상에 적응하는 중이였기에 무언가 혼란스러워 하는 듯 했다. 낮과 밤이 바뀌어 밤을 꼴딱 새기도 하고 젖을 빨고 잠든 지 삼십 분도 되지 않아 깨어나고 우는 일이 허다했다. 겨우 재우고 밥 한 술 뜨려는 순간, 다시 우는 아기에게 달려가기를 반복했고, 아이가 잠 든 후에도 한참 동안 아이 얼굴을 쳐다보기를 되풀이했다. 갑작스러운 아이의 울음에 영문을 몰라 진땀이 났고 왜 울었는지 그저 지레짐작 할 뿐이었다. 매일 비슷한 일들이 계속되었고 나의 일상도 단순해졌다. 육아는 아이를 향한 수많은 행위들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엇비슷한 일들이 계속 되는 과정 속에서 아이와 나는 서로에게 조금씩 적응해갔다. 배가 고파서 혹은 잠에서 깨어나서 작은 침대에서 치열하게 울던 아이는 어느 새 나의 목소리만으로도 울음을 그치게 되었고, 품에 안았을 때 눈물이 번진 얼굴로 웃었다. 우리는 매일 닮은 하루를 살아가는 듯 했지만 둘 사이에는 세상에 없던 리듬이 피어나고 흐름이 생성되며 우리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이가 손을 빨기 시작하자 수건으로 손을 닦아주기를 반복했다. 누워만 있던 아이가 몸을 뒤집고 땀이 나자 땀을 닦아주기를 되풀이 했다. 흥건히 젖은 옷을 확인하고 옷을 갈아입혀 주는 일이 잦아졌다. 기저귀를 갈고 젖을 먹이고 눈을 맞추고 울음을 달래고 잠을 재우는 무수한 반복들은 광대한 우주만큼 멀고 낯설었던 우리를 가깝게 만들었다. 이제는 나의 기척만으로도 고개를 돌리고 반응하는 아이를 볼 때면 예전에는 절대 알지 못했던 순전한 기쁨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무수한 반복들이 촘촘히 박히는 매일의 삶 속에서 아이와 나는 함께 자라고 있다.
이전에는 무언가 같은 상황들이 계속되거나 비슷한 말을 듣는 것도 지루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이를 향한 반복되는 행위들로 가득한 일상을 살아보니 삶이란 셀 수 없이 무한한 반복들이 거대하고 성스러운 물결이 되어 흐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많은 이들이 이 땅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같은 일들을 되풀이한다. 아무 생각 없이 밟고 지나가는 거리도 차갑고 고요한 새벽마다 그곳의 더러움을 벗기고 씻기며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고자 애쓰는 이들의 숭고한 수고와 땀이 되풀이되기에 존재한다. 캄캄한 하루의 시작 앞에서 매일 타인들의 삶을 지키고 자신의 생계를 영위하기 위해 졸음을 쫓아내고 마음을 다잡으며 운전대를 잡고 온 몸의 신경을 집중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세상은 치열하고 존귀한 반복들이 서로 연결되어 흘러간다. 그것으로 인해 때로는 자신을 한없이 낮은 곳으로 끌어내리는 수치심을 마주할 때도 있고, 어느 날 문득 초라한 나를 대면할 때도 있다. 그렇게 살아서 뭐하냐는 핀잔을 들을 때도 있고, 나보다 앞서 나가는 이들을 보며 저 밑바닥까지 가라앉는 나를 억지로 끌어올릴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아프고 외롭고 한숨 쉬는 자신의 모습이 반복되어도 눈물을 삼키며 밥을 먹듯이 꾸역꾸역 참아내며 삶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기에, 되풀이 되는 일들의 위대함을 알고 늘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은 꿋꿋하게 굴러간다.
때로는 누군가의 해서는 안 되는 실수가, 부패한 권력이, 양심을 저버린 강자의 폭주가 반복되며 덤빌 때도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함부로 쓰는 천박한 태도를 멈추지 않는 무리들도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알고, 다가오는 억압과 짓누르는 절망에도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킨다. 바로 그 때, 세상에 없던 리듬이 창조되고 크고 선한 흐름이 일렁이며 평범한 듯 찬란한 일상이 탄생한다.
오늘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다보니 하루가 금세 흘러갔다. 어제 보았던 책을 또 읽어주었고 익숙한 장난감을 가지고 함께 놀았다. 하지만 매일 읽어주는 책을 보는 아이의 눈빛이, 장난감을 쥐고 있는 아이의 손에서 느껴지는 힘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는 늘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을 살아가며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의 크기와 세상을 살아낼 힘은 조금씩 커지고 있다.
매일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같은 말을 한다. 그 순간 환한 아이의 미소에 나의 시간이 멈춘다.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시 시간을 돌려 또 같은 하루를 산다고 해도 나는 아이에게 똑같은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2019년 계간 <시와 산문> 발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