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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벤스토리 Oct 15. 2021

[8] 변리사가 가로챌 수 있다는 우려

스타트업을 꿈꾸기 전에 꼭 알아야 하는 특허 실무


변리사가 아이디어를 가로채지 않을지, 우려하는 질문을 듣는다. 개인적으로, 사업 초기에 했던 걱정이기 때문에 이 마음을 잘 안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속 시원한 답이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변리사가 아이디어를 가로채 우리에게 손해를 끼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손해를 끼친다는 의미를 세분화해보자.


가정 1. 특허를 빼앗는다.


변리사는 고객의 발명을 그 고객을 출원인으로 하여, 특허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대리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고객의 아이디어를 변리사 자신, 또는 가족이나 주변인의 명의로 먼저 출원하는 경우이다.


우리가 변리사를 만날 때는 대부분 좋은 아이디어라는 확신을 한다. 혹은, 특허의 확신은 몰라도 사업은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 인생의 많은 것을 건다. 특허의 본질 가치보다, 내가 걸고 있는 기대감과 내 상황에 따른 절실함에 무게감이 실린다. 이로 인해서, 적은 우려도 전부 조심스럽다.


특허의 개념을 생각해보자. 특허가 등록되려면 출원 시점에 새로워야 한다. 그리고 진보해야 한다. 즉, 기존에는 없던 것이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공개된 모든 문헌에 없어야 한다. 등록 조건이 생각보다 까다롭다.


양보해서, 등록되었다고 치자.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하지 않았던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시장에 자리를 잡아야, 그제야 특허의 가치가 부각된다. 사업화에 실패하면 기대하던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사업의 성패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실패를 기대하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이 사업은 잘될 것이라고 시작하지만, 알다시피 성공확률은 낮다.


특허가 등록되고, 사업에 성공했다고 치자. 이때에도, 등록된 권리 범위가 대체 기술을 모두 막을만한 넓은 수준이 되어야 특허 가치가 있다. 동등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는 회피 기술이 하나라도 존재하면 해당 특허의 가치는 속절없이 하락한다.


특허 등록이 필수일 뿐 아니라, 넓은 권리 범위로 등록되어야 하고, 사업에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변리사 입장에서 특허를 빼앗았던 실익이 생긴다. 여기에는 긴 시차가 발생한다. 특허를 빼앗는 시점과 특허에 가치가 부여되어 실제적 이익이 생기는 시간 차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담담하게 암 판정을 내린다. 환자는 인생에서 처음 듣는 이야기로 충격을 받는다. 담담한 의사와 패닉에 빠진 환자.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특허도 마찬가지다. 일생에 몇 번 안 되는 획기적인 사업 아이템이라고 생각하지만, 변리사는 이렇게 수많은 발명을 접한다. 내 것은 정말 달라. 이건 정말 획기적이야. 그 북받치는 감정을 변리사는 담담하게 느낄 것이다.


특허법 33조와 34조에는 무권리자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상식적으로 변리사 입장에서 위험은 크고 기대 실익은 낮다. 특허를 빼앗을 동기가 낮다 못해 없기까지 하다.



가정 2. 아이디어를 도용한다.


변리사 자신, 또는 가족이나 주변인이 고객의 아이디어로 사업하는 경우이다. 해당 아이디어를 들은 변리사가 사업 전면에 노출되면, 규정을 어긴 변리사를 대한민국 법이 가만둘 리 없다. 이것을 변리사도 잘 알 테니, 본인이나 가족이 아닌 주변인에게 사업을 제안하는 정도가 현실적인 상상이다.


변리사 자격은 고된 시험을 통과해야만 취득할 수 있다. 변리사법에는 이런 경우, 해당 변리사의 징계와 벌칙에 관해서 규정하고 있다. 얼만큼의 대가를 바라고 이런 도박을 시도할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이 또한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앞선 가정들, 특허를 빼앗거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것은 변리사의 고의를 전제로 한다. 변리사에게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시점에는 사업의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업의 성공을 확신함과 동시에 법을 어기는 비양심적 도박을 해야 한다. 잃게 될 것이 많을 뿐 아니라, 잃게 될 확률 또한 높다. 불확실한 가치를 위해 현재 보유한 확실한 보장을 포기할 어리석음을 선택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앞선 상상들, 탈취와 도용은 지나친 우려가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가정 3. 무심결에 누설한다.


변리사가 고의로 아이디어를 빼앗는 상상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무심결에 누설하는 경우는 어떨까. 업무 중, 혹은 술자리에서 그럴 수 있을까. 겪어 보지 않았기에 이런 상상을 장황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변리사가 업무상 알게 된 발명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도용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변리사법 제23조) 변리사가 아이디어를 누설하는 것은 법을 어기는 행위이다. 이 정도가 우리가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렇게 변리사가 우리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는 가정들을 몇 개로 나누어 보았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있다. 우리는 사업에 많은 것을 걸었고 꼭 살아남아야 한다. 이렇게 절실한데, 덮어 놓고 사람을 믿기가 쉽지는 않다.



이제, 관점을 바꾸어보자.


변리사에게 우리의 아이디어를 말하지 않고, 권리를 지킬 방법이 있다면 그대로 행하면 된다. 예를 들어, 직접 특허 명세서를 작성하여 출원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자. 누구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출원한 것이니 염려할 것이 없다. 또는, 영업비밀로 유지할 수 있다면 아무도 모르게 유지한 채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언젠가는 공개할 수밖에 없다. 사업의 파트너에게, 고객에게, 투자자에게 아이디어를 공개할 수밖에 없다면 이왕이면 변리사가 안전하지 않을까. 아이디어를 오픈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업에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때 특허를 출원한 상태라면 더 안전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자신감을 갖고 사업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다. 


우리에게 무엇이 최선일까. 직접 특허 명세서를 작성하려면 많은 학습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고품질의 특허를 만들어 내려면 더 많은 고뇌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소모된다. 영업비밀로 유지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수고를 해야 한다.


최선책은 늘 찾기 어렵다. 이제, 염려를 내려놓고 적당한 수준에서 차선책을 찾아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 특허를 출원해야겠다고 정했다면 변리사를 신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과정 중 이런 것들은 유의하자.


첫째, 내가 상담을 받는 사람은 변리사여야 한다.

변리사가 아닌 사람이 상담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전화로 미리 변리사와 대면 상담을 약속하자.

변리사법에서는 비밀을 유지해야 할 대상을 변리사이거나 변리사였던 사람으로 한정한다. 민법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할지 몰라도, 여러 이유로 변리사여야 한다. 우리의 상황에서 위험을 낮추고, 합리적으로 선택할 필요가 있다. 비용을 지불함에도, 변리사가 아닌 자와 상담 할 이유가 없다.


둘째, 투명한지 살피자.

해당 특허 사무소의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구성원이나 경력 등이 공개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개인적으로 홈페이지에 변리사 이력이나 사진이 없는 곳보다 있는 곳을 더 선호한다.


셋째, 선택했다면 인색하지 말자.

변리사의 역할은 특허 대리인이다. 양질의 특허를 위해서 아이디어나 기술을 오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허 명세서에 기재된 청구항만 권리로서 보장받기 때문에, 청구항으로 작성하지 않은 채 특허 명세서에 장황하게 기술 내용을 공개할 변리사는 드물다.


독점적 권리를 보장받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뿐 아니라, 비밀로 유지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설명하는 것이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의 하나다.


간략 정리> 

영업 비밀로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라. 자신 없다면 변리사와 공유하고 도움을 구하라. 단, 투명하게 공개된 특허 사무소의 변리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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