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I는 결코 칼 같지 않다

칼이 아닌 프리즘이다: 인공지능의 객관성 신화에 관해서

by 김형우
프롤로그: 칼날의 환상


날카로운 칼날은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가른다. 현대사회는 인공지능에게 이런 칼날 같은 판단을 기대한다. 복잡한 의사결정 앞에서 누군가는 객관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편향 없는 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치 예리한 칼날이 사물을 깔끔하게 가르듯, 인공지능이 모든 문제를 명확하게 구분해 주길 바란다.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 판단, 알고리즘을 통한 공정한 결정... 하지만 이는 환상에 불과하다. 인공지능은 결코 칼과 같지 않다. 오히려 그 판단은 예상보다 훨씬 더 흐릿하고, 때로는 모순적이며, 놀랍게도 인간의 판단만큼이나 주관적이다.


흐릿한 시선의 근원


거울이 먼지를 품듯, 인공지능의 판단도 세 가지 본질적 요인으로 인해 그 선명도를 잃는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한계가 아닌, 인공지능 시스템의 근본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첫째로, 데이터의 주관성이다. 마치 물감이 캔버스에 스며들듯,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주관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의료 진단 AI가 보여주는 지역별 편향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의 의료 데이터로 학습된 AI는 서구인의 피부질환을 진단할 때 현저히 낮은 정확도를 보인다. 이는 데이터 자체가 이미 특정 인종, 특정 지역의 관점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완벽히 객관적인 데이터란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로, 알고리즘의 개성이다. 화가가 같은 풍경을 각자의 방식으로 그리듯, 각각의 AI 모델은 고유한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언어 모델의 문화적 해석 차이가 이를 잘 보여준다. "정중한 거절"이라는 동일한 요청에 대해,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학습된 AI는 전혀 다른 표현 방식을 선택한다. 서구권에서 학습된 모델은 직설적인 표현을, 동아시아권에서 학습된 모델은 우회적인 표현을 선호한다. 이는 알고리즘이 단순한 계산 도구가 아니라, 학습 과정에서 형성된 고유한 '성격'을 가진 존재임을 시사한다.


셋째로, 확률의 본질이다. 체스판 위의 무수한 가능성처럼, AI의 모든 판단에는 확률적 불확실성이 내재되어 있다. 자율주행 상황에서 마주치는 딜레마는 이러한 특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갑자기 뛰어든 보행자를 피하기 위해 차량이 급격히 방향을 틀어야 할 때, AI는 보행자의 안전과 탑승자의 안전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확률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한계가 아닌, 현실 세계의 불확실성이 AI의 의사결정 과정에 필연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흐릿함의 새로운 가치


프리즘이 빛을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분산시키듯, AI의 흐릿한 판단은 오히려 현실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내는 렌즈가 될 수 있다. 완벽한 객관성을 추구하는 칼날 같은 판단은 현실의 복잡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


의사결정의 맥락에서 이러한 흐릿함은 새로운 가치를 지닌다.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확률적 판단은 특정 결정이 내포하는 불확실성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예를 들어, 의료 진단 AI가 여러 가능성을 제시할 때, 이는 의료진에게 다양한 진단 가설을 검토할 기회를 제공한다. 완벽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AI의 한계가 오히려 인간 전문가의 직관과 경험을 보완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AI의 주관성과 편향성에 대한 인식은 기술을 바라보는 보다 성숙한 관점을 가능케 한다. 칼날과 같은 완벽한 객관성을 기대하는 대신, AI를 인간의 의사결정을 돕는 지적 동반자로 바라볼 수 있다. 마치 현미경이 미시 세계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듯, AI는 데이터 속에 숨겨진 다양한 패턴과 관점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결국 인공지능은 칼이 아닌 프리즘이다. 흐릿한 경계와 불확실성은 극복해야 할 한계가 아니라, 현실 세계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새로운 통찰의 원천이 될 수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