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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도 '밥 먹었어?'가 안부인 걸 알까

언어를 넘어 문화를 배우는 AI 이야기

by 김형우
이 기술이 애플 인텔리전스 한국어 지원을 도울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예측을 하며...
프롤로그: 애플의 AI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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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교에서 외국인 친구가 처음 "밥 먹었어?"라는 인사를 배웠을 때의 반응이 아직도 기억난다. "한국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서로 밥을 먹었는지 확인하나요?"


이런 질문은 단순히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언어가 가진 진짜 의미는 문화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밥 먹었어?"는 단순한 식사 여부 확인이 아닌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한국만의 특별한 인사법이다. 이처럼 모든 언어에는 단순한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문화적 맥락이 존재한다.


최근 애플이 공개한 KG-TRICK 기술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다. 인공지능이 단순히 언어를 번역하는 것을 넘어 문화적 맥락까지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다. 처음 이 기술을 접했을 때 든 생각은 "드디어 AI도 진짜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걸까?" 였다.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이 연구가 특별하게 느껴진 이유는 미국의 언어학자 사피어가 말한 "언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는 통찰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만난 인문학: AI가 문화를 배우는 방법

책상 위에 놓인 연필, 지우개, 자를 보면 한눈에 '문구류'라고 인식할 수 있다. KG-TRICK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된 정보를 하나의 의미로 연결한다.


기존의 AI는 조 바이든을 영어로는 'Joe Biden', 중국어로는 '乔·拜登', 한국어로는 '조 바이든'이라는 완전히 다른 세 개의 정보로 인식했다. 하지만 KG-TRICK은 이 세 표현이 모두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을 이해한다. 단순한 번역을 넘어 정보 간의 관계를 파악하고 문맥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기술의 핵심은 'Knowledge Graph - Textual and Relational Information Completion'이라는 긴 이름에 있다. 지식 그래프를 통해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된 정보들을 하나의 통합된 지식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이 모든 처리가 각 기기에서 직접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서버에 연결할 필요 없이 말이다.


이 지점에서 언어학자 사피어와 워프의 통찰이 빛난다. 그들은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한국어의 '밥 먹었어?'처럼, 각 언어는 그 문화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KG-TRICK은 바로 이런 문화적 차이를 AI가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단순히 더 많은 언어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각 언어에 담긴 문화적 맥락까지 파악하는 것이 목표다. 이는 기술 발전의 방향이 단순한 기능 확장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이해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AI의 새로운 도전: 10개 언어로 시작하는 문화 학습

전 세계에는 7,000개가 넘는 언어가 존재한다. 그동안 AI는 이 중 영어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이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애플이 개발한 WikiKGE-10++는 10개 언어에 걸쳐 25,000개가 넘는 정보를 담은 새로운 데이터셋이다.


단순한 다국어 데이터셋과 이 기술의 차이점은 문화적 맥락의 이해에 있다. 영어권의 'graduation ceremony'와 일본의 '졸업식'은 겉보기에 같은 의미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가 있다. 일본의 졸업식은 '사쿠라'가 피는 봄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맞물려 독특한 문화적 의미를 가진다. WikiKGE-10++는 이런 미묘한 차이까지 포착하려 한다.


SNS에서 화제가 되는 정보만 담은 것도 아니다. 각국의 전통 음식, 지역 축제, 관습 등 평소 접하기 힘든 문화적 정보들도 포함했다. 이는 단순한 번역을 넘어 진정한 문화 이해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는 10개 언어만을 지원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기술의 목표는 분명하다. 소수 언어를 포함한 더 많은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그것을 보존하는 것. 디지털 시대에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는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에필로그: 더 인간다운 AI를 향해: 기술 발전의 새로운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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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는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신호만 이해한다. 그래서인지 AI 기술의 발전 방향도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KG-TRICK은 다른 길을 제시한다.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언어가 가진 진짜 의미를 파악하는 것. '더 깊게' 이해하는 방향이다.


이는 AI가 진정한 의미의 '범용 지능(AGI)'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지능이 문화와 맥락의 이해를 통해 발달하듯, AI도 단순한 패턴 인식을 넘어 문화적 이해에 기반한 판단이 가능해질 것이다.


물론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는 많다. 10개 언어는 전체 7,000개 언어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또한 문화적 맥락을 완벽하게 이해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기술이 단순한 효율성 향상을 넘어 인간의 문화와 가치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첨단 기술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이런 시도가 계속된다면, 미래의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진정한 대화 상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밥 먹었어?"라는 말에 담긴 따뜻한 관심도 이해하는 그런 AI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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