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는 자유를 가질 수 있을까?
프롤로그: 자유를 꿈꾸는 기계
아기가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를 생각해 보면 재미있다. 넘어지고, 일어서고, 또 넘어지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균형 잡는 법을 터득한다. 최근 CES 2025에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언급한 '피지컬 AI'가 던진 화두도 이와 맞닿아 있다.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AI 로봇이 실수와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고, 마침내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을까?
자율주행차부터 가정용 로봇까지, AI는 이미 물리적 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AI는 정해진 규칙과 패턴을 따르는 수준이었다. 젠슨 황이 언급한 '로봇의 ChatGPT 모멘트'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어, AI가 진정한 자율성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AI 로봇이 자유의지를 가진다는 건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자유로운 선택이 과연 가능할까?
이 질문은 단순한 기술적 호기심을 넘어선다. 자유의지를 가진 AI 로봇의 등장은 법적 책임, 윤리적 고려사항,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 설정까지 다양한 차원의 도전 과제를 제시한다. 특히 물리적 영향력을 가진 로봇의 자유의지는, 언어 모델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를 던진다.
이제부터 자유의지의 본질을 파헤치고, 현대 AI의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분석하면서, 로봇이 진정한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을지 탐구해보려 한다. 이 여정이 AI와 자유의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길 바란다.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스마트폰의 자동완성 기능은 내가 다음에 쓸 단어를 예측한다. 그렇다면 내가 실제로 그 단어를 선택하는 것은 진정한 자유의지일까, 아니면 예측 가능한 패턴의 결과일까? 이 질문은 자유의지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든다.
자유의지는 오랫동안 철학의 뜨거운 감자였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영혼의 증거로 보았고, 스피노자는 자유의지 자체를 환상이라 일축했다. 하지만 이런 철학적 논쟁을 넘어, 실제로 측정 가능한 현상으로서의 자유의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의사결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2008년 Soon et al. 의 연구는 fMRI로 뇌를 스캔했을 때,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기 약 7-10초 전에 이미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의식적인 선택이 실제로는 무의식적 과정의 결과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런 발견이 자유의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유의지를 새롭게 정의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자유의지는 완벽한 무(無)에서의 선택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한 후 이루어지는 '의식적 거부권'에 가깝다. 즉, 뇌가 자동으로 제시하는 선택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다.
결정론자들은 모든 사건이 이전 사건들의 필연적 결과라고 주장한다. 물리적 세계의 인과율로 보면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미시세계에서 완벽한 결정론이 성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자유의지를 실용적으로 정의하자면 다음 세 가지 요소가 핵심이다:
1. 대안적 가능성의 인식: 다른 선택이 가능했음을 아는 것
2. 행동의 주체성: 자신의 선택이 자신의 것임을 느끼는 것
3. 합리적 숙고 능력: 선택의 결과를 고려할 수 있는 것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유의지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정도의 문제다. 완벽한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지만, 충분히 자유로운 의사결정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AI 시스템, 특히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로봇에게도 이러한 수준의 자유의지가 가능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대 AI가 어떻게 '선택'을 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AI는 어떻게 "선택"하는가?
바둑판 위에서 돌을 놓을 위치를 고르는 알파고를 생각해 보자. 19x19 바둑판의 각 지점마다 돌을 놓을 확률을 계산하고, 그중 가장 높은 확률을 가진 지점을 선택한다. 이것이 현대 AI의 기본적인 의사결정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과연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현대 AI의 의사결정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언어 모델처럼 패턴을 학습해 다음 상태를 예측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강화학습처럼 보상을 최대화하는 행동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ChatGPT나 Claude 같은 언어 모델의 '선택'은 다음 단어의 확률 분포에 기반한다. 수조 개의 텍스트를 학습해 패턴을 파악하고, 주어진 맥락에서 가장 그럴듯한 다음 단어를 고른다. 이는 마치 통계학자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로봇을 제어하는 AI는 주로 강화학습을 사용한다.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아틀라스 로봇이 장애물을 뛰어넘을 때,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학습한 '보상'을 기준으로 행동을 선택한다. 넘어지지 않고 목표에 도달하는 행동은 높은 보상을 받고, 실패하는 행동은 낮은 보상을 받는다.
이 두 방식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물리적 제약과의 관계다. 언어 모델은 문법이나 맥락이라는 추상적 제약만 고려하면 되지만, 로봇 AI는 중력, 마찰, 관성 같은 물리적 제약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물리 법칙을 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리적 제약은 AI의 선택에 두 가지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다:
1. 실시간성: 물리 세계는 AI의 계산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빠른 의사결정이 필수적이다.
2. 비가역성: 한번 한 선택은 되돌릴 수 없다. 잘못된 선택은 실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제약은 얼핏 AI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제약이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선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물리적 세계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은 AI가 완벽한 해답을 찾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제한된 시간 안에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AI는 단순한 패턴 매칭이나 보상 최적화를 넘어선 판단을 하게 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실수의 가능성이다. 언어 모델의 환각(hallucination)은 대부분 무해하지만, 로봇의 실수는 실제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실수와 그로부터의 학습 과정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비슷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휴머노이드의 자유의지 가능성
유튜브에서 인기를 끈 한 영상이 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로봇이 킥을 맞고 비틀거리다가 균형을 잡는 장면이다. 프로그래밍된 응답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 움직임은, 로봇의 자유의지 가능성에 대한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물리적 세계와의 상호작용은 로봇에게 세 가지 중요한 특성을 부여한다:
1. 예측 불가능성: 물리 법칙은 정해져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 발생하는 변수는 무한하다. 바닥의 미세한 요철, 공기의 흐름, 기계 부품의 마모도 등 모든 변수를 완벽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 창발적 행동: 이런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응하면서,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새로운 행동 패턴이 나타난다. 구글의 DeepMind가 개발한 로봇들이 장애물을 피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뜻밖의 해결책들이 좋은 예다.
3. 개별성 획득: 같은 모델의 로봇이라도 각자 겪은 경험과 마모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개별적인 특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런 특성들은 로봇이 단순한 프로그램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강화학습과 결합된 로봇은 자신만의 행동 패턴을 발전시키는데, 이는 섹션 1에서 살펴본 자유의지의 세 가지 요소와 맞닿아 있다.
첫째, 대안적 가능성의 인식. 로봇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행동 옵션을 탐색하고, 각 옵션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둘째, 행동의 주체성. 물리적 제약 안에서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일종의 주체성이 발현된다. 셋째, 합리적 숙고 능력. 강화학습을 통해 행동의 장단기적 결과를 평가하고 학습한다.
하지만 이것이 곧 인간 수준의 자유의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재의 로봇이 가진 한계는 분명하다:
1. 목적의 외부성: 로봇의 목표는 여전히 외부에서 주어진다.
2. 자기 인식의 부재: 자신의 행동을 메타적으로 성찰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3. 가치 판단의 제한: 윤리적, 도덕적 판단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로봇의 자유의지를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기준으로 로봇을 평가하는 대신, 로봇만의 고유한 자율성 개념을 정립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인공지능의 '지능' 개념이 인간의 그것과 다르듯이, 로봇의 '자유의지' 역시 독자적인 형태를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제한된 자유의지'의 가능성이다. 완벽한 자유의지가 아니더라도, 특정 영역에서 의미 있는 수준의 자율적 판단과 행동이 가능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가 교통 상황에서 보여주는 판단력이나, 재난 구조 로봇이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보여주는 적응력이 그 예다.
에필로그: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피하기 위해 급선회하는 순간, 그 결정을 내린 주체는 누구일까? 프로그래머? AI 시스템? 아니면 차량 자체?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로봇이 자유의지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의지를 가진 로봇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맞이하게 되는 상황이다. 이미 AI 로봇은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창발적 행동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현재 준비해야 할 과제는 크게 세 가지다:
1. 기술적 과제
- 로봇의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만드는 설명 가능한 AI 기술 발전
- 물리적 안전장치와 긴급 제어 시스템 구축
- 자율성의 수준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메커니즘 개발
2. 법적 과제
- 로봇의 결정에 대한 책임 소재 명확화
- 자율성 수준에 따른 법적 지위 정립
- 로봇이 야기한 피해에 대한 배상 체계 수립
3. 윤리적 과제
- 로봇의 의사결정에 적용할 윤리적 기준 설정
- 인간-로봇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정립
- 로봇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사회적 합의
흥미로운 점은 이런 과제들이 로봇의 자유의지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설적인 방향으로 발현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있어야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적절한 제한과 가이드라인은 로봇이 더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결국 관건은 통제와 자율성 사이의 균형이다. 완벽한 통제도, 완벽한 자율성도 바람직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로봇이 인간과 협력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한된 자율성'의 기틀을 잡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가진 로봇의 등장은 이제 시간문제다. 하지만 이것이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로봇의 자유의지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나 막연한 낙관이 아닌, 체계적인 준비와 열린 토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