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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AI 시대, 로봇의 성별을 묻다

AI 거물들의 예측으로 부터

by 김형우
프롤로그: 소피아와 아틀라스 사이에서

보스턴 다이나믹스 아틀라스(출처: 보스턴 다이나믹스 유튜브 채널)

아틀라스를 처음 봤을 때의 순간이 선명하다.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공개한 영상 속 로봇은 중성적인 디자인에 기계적인 동작을 보여주며 단순히 기능성에 충실했다. 그리고, 소피아 로봇의 인터뷰 영상을 보며 완전히 다른 인상을 받았다. 긴 속눈썹과 부드러운 곡선의 얼굴을 한 소피아는 의도적으로 여성의 특징을 강조하고 있었다.


두 로봇 사이의 이 극명한 차이는 단순한 디자인 결정일까? 이 질문은 최근 젠슨 황이 CES 2025에서 언급한 '피지컬 AI 시대'라는 발언과 맞물려 더욱 깊은 고민으로 이어졌다. 일론 머스크는 인공지능이 곧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것이라 예측했다. 이제 인간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실제 공간에서 인간과 상호작용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로봇에게 성별은 필요할까? 더 나아가 성별은 로봇의 필수 요소일까, 아니면 인간의 편견을 투영한 불필요한 특성일까? 피지컬 AI 시대를 앞두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한다.


로봇의 얼굴에 투영된 우리의 편견

소피아 로봇 이미지(출처: 소피아 로봇 유튜브 채널)

거울은 보는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비춘다. 현재 로봇들의 외형을 살펴보면서 이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초기의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순수하게 기계적인 외형에 집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과의 상호작용(HCI)을 고려한 디자인이 등장했고, 여기에 인간 사회의 고정관념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소피아 로봇의 디자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부드러운 얼굴 곡선, 긴 속눈썹, 그리고 서비스직 종사자를 연상시키는 표정 연출까지. 이런 선택들은 분명 의도적이다. 반면 산업 현장에서 작동하는 아틀라스는 성별 특징을 최소화했다. 기능성과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결과물이지만, 여기에도 무의식적인 편견이 작용했을 수 있다.


가장 눈여겨볼 만한 사례는 테슬라봇(옵티머스)의 중성적 디자인이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 결정이 아닌, 성별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로봇을 만들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런 변화는 로봇 공학이 단순히 기술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가치까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뿌리 깊은 고정관념은 존재한다. 서비스용 로봇은 여성의 특징을, 산업용 로봇은 남성적이거나 중성적인 특징을 갖추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인간 사회의 성역할 고정관념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다.


결국 로봇의 외형은 기술의 발전사가 아닌, 인간 사회의 가치관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피지컬 AI 시대를 앞둔 시점에서 로봇의 성별 문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논제가 되었다.


기술이 정말 성별을 필요로 할까?

스크린샷 2025-01-21 오후 9.08.42.png 초기 Siri(출처: Apple)

스마트폰의 음성 비서를 살펴보면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 초기의 시리와 빅스비는 모두 여성의 목소리를 기본값으로 설정했다. 이런 선택에는 어떤 기술적 근거가 있었을까?


놀랍게도 순수하게 기술적인 관점에서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특정 성별을 가져야 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현대의 음성 합성 기술은 성별에 관계없이 동일한 수준의 자연스러움을 구현할 수 있다. 물리적 작업 수행 능력도 로봇의 성별과는 무관한 요소다.


그렇다면 이런 선택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데이터는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사용자들은 서비스 로봇에 대해 여성의 특징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산업용 로봇에는 중성적이거나 남성적인 특징을 선호한다. 이런 편향된 선호도가 실제 제품 개발에 영향을 미쳤다.


초기 시리가 여성 음성으로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기술적 필요가 아닌 사회적 통념이 이런 선택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접근법에 의문을 던져야 할 때다. 기존의 성별 고정관념을 인공지능 시대에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특히 피지컬 AI 시대를 앞둔 지금, 이 질문은 더욱 중요해졌다. 기술은 이미 성별의 제약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인간의 선택이다. 기술의 발전이 기존의 편견을 강화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젠더리스 로봇이 갖는 의미

스크린샷 2025-01-21 오후 9.10.37.png MIT 미디어랩 소셜 로봇 Tega(출처: Personal Robots Group)

MIT 미디어랩의 소셜 로봇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별 특징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이 로봇은 기능성과 친근감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했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의 변화가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점으로 읽힌다.


젠더리스 로봇의 첫 번째 장점은 사회적 편견으로부터의 자유다. 성별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남으로써, 로봇은 순수하게 그 기능과 목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이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본질적인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


두 번째 장점은 확장성이다. 하나의 로봇 플랫폼으로 다양한 역할 수행이 가능해진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디자인은 로봇의 활용 범위를 자연스럽게 넓힌다. 산업 현장에서 서비스 분야까지,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한 활용이 가능하다.


MIT의 사례는 또 다른 가능성도 보여준다.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이 반드시 성별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성별이라는 구분에서 벗어날 때,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할 수 있다.


이런 시도들이 주는 통찰은 분명하다. 로봇 공학의 진정한 혁신은 인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존재를 창조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성별의 구분에서 자유로운 로봇은 인간 사회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에필로그: 모두가 꿈꾸는 로봇의 미래

스크린샷 2025-01-21 오후 9.13.15.png FaceID 데모 영상(출처: Apple WWDC)

스마트폰의 잠금을 해제하는 순간에 주목해본 적이 있다. 생체인식이든 PIN이든, 그 순간 인간과 기계는 서로를 인식하고 상호작용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정체성 문제는 이런 일상적인 순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기존의 로봇 개발은 인간의 특징을 그대로 투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다. 로봇은 인간의 모방이 아닌, 독자적인 존재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인간다움'은 과연 무엇일까? 성별은 정말 인간다움의 필수 요소일까? 아니면 단순히 생물학적 특징의 하나일 뿐일까? 피지컬 AI 시대는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필요로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편견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로봇의 성별 문제는 단순한 디자인의 문제를 넘어섰다. 이 문제는 미래 사회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시험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기술 혁신의 진정한 가치는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 있다. 성별의 구분이 없는 로봇, 더 나아가 인간의 편견에서 자유로운 인공지능의 개발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설 수 있다. 그것은 인간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는 촉매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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