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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산 Sep 17. 2021

"유엔 평화유지군에 선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평화”를 모르는 평화유지군 ①

 어릴 적 나는 멀미가 정말 심했다. 덕분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작은 고향 마을을 벗어나 다른 대도시에 가본 적은 거의 없었다. 수능을 보고 대학 면접을 보러 수원에 왔을 때였다. 난 길가에 있는 버거킹을 보고 짝퉁인 줄만 알았다. 고향 마을에는 “킹버거”라는 햄버거 가게가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까지 킹버거만 보고 자란 나에게 낯선 도시에서 만난 버거킹은 킹버거의 짝퉁처럼 느껴졌다. 19살이 될 때까지 나에게 세상이란 작은 고향 마을이 전부였다.           


 대학에서는 동아리 활동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냈다. 풍물패 활동을 시작한 뒤로는 매일 공연 준비를 하느라 바빴고, 창업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는 특허 하나 내보겠다고 매달리다가 대학교 1-2학년 시간을 다 보냈다. 그러다 2001년 5월, 3학년 1학기가 되어서야 군대를 갔다.


 훈련소를 마치고 배치받은 부대는 강원도 인제 원통이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군대 안의 우스갯소리가 있다. 첩첩산중 최전방 원통으로 배치받지 않기를 바라는 병사들의 마음이 담긴 표현이었다.


 자대 배치를 받은 첫날밤 고참들은 신병을 부대 안의 이발소로 불렀다. 깜깜한 밤이었지만 이발소 전등은 켜지 않았다. 고참들이 분위기를 잡고 아프지 않을 만큼 가볍게 몸 여기저기를 만져주면서 이런저런 가르침을 주는데,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가혹행위의 시작이구나 생각했다.


 이등병 생활은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700일도 넘게 남은 군생활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티모르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원 기한은 바로 그날 저녁까지. 마감까지는 불과 몇 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동티모르? 유엔? 평화유지군?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어쩌면 이곳을 벗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귀신에 홀렸는지 나는 어느새 행정반에 내려가 파병 지원서를 쓰고 있었다. 행정반 간부는 이등병  명이 내려와 파병 지원서를 쓰겠다고 하니 당연히 고참들에게는 보고 하고 왔을 거라 생각했는지 부모님 동의를 구했냐는 질문 외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내무반장과 다른 선임들은 내가 파병 지원서를 제출한 사실을 다음 날이 돼서야 았다. 하지만 크게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철없는 이등병의 파병 지원서가 통과될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지원서는 냈지만 선발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주가 지났을까? 서울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특별한 주특기가 없던 나는 영어 어학 행정병으로 평화유지군에 지원했었다. 영어?  못했다. 19 평생을 시골 마을에서 살았는데 영어를 잘하면 얼마나 잘했을까. 하지만 나는 절박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이등병 생활로부터 너무, 너무 벗어나고 싶었다. 영어 면접까지 남은 며칠 동안 최대한 많은 예상 질문을 만들고, 머릿속으로 답을 준비했다.


 면접 당일, 면접관의 첫 번째 질문은 이랬다.


 “Why did you apply for this position?(왜 이 보직에 지원했나?)”


 나의 대답은 이랬다.


 “I want to go to Dong Timor because....(저는 동티모르에 가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답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에 있는 티모르 섬(Timor Island)의 동부에 위치하고 있어 영어로는 East Timor(동(東)티모르, 현재 국명은 Timor-Leste)라는 국가명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캐나다(Canada)나 프랑스(France)처럼 동티모르 역시 동티모르 자체가 영어 국가명인 줄만 알고 있었다.



 면접관은 황당하다는 듯 ‘이 놈은 자기가 가는 곳이 동쪽인지 서쪽인지도 모르는구만’이라고 말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 다음 면접관의 질문과 내 대답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첫 번째 질문과 답이 끝난 뒤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해버렸고, 그 다음부터는 무슨 말을 어떻게 내뱉었는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허무하게 면접을 마치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강원도 인제 원통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세상 일이라는 게 참 알 수가 없다. 보름이 지났을 때 즈음 동티모르 유엔 평화유지군에 선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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