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모르는 평화유지군 ⑤
동티모르 파병 기간 동안 휴가나 외출은 없었다. 부대 밖을 나간다 해도 딱히 갈 수 있는 곳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휴가나 외출은 큰 의미가 없었다.
동티모르뿐만 아니라 다른 어느 지역에 파견된 평화유지군이건 상황은 비슷했을 것이다. 평화유지군이 파견된 곳은 교전 중이거나 전쟁이 끝나 정세가 불안한 지역이 대부분이기에 부대 밖을 나가 편안하게 문화생활을 즐긴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평화유지군의 삶이란 속세를 떠난 수도승의 삶처럼 자기 인내가 필요한 일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기 스스로를 돌보고 지역의 치안을 유지해야 하는 평화유지군이 파병 지역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적지 않다.
가난하고 척박한 분쟁지역에서 평화유지군과 현지인들의 관계란 수평적일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평화유지군은 이런 권력관계를 이용해서 가난한 여성들을 푼돈으로 유인해 몹쓸 짓을 하고, 심지어는 전쟁의 수단이 되는 무기를 지역주민들에게 밀매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회원국이 파견한 평화유지군에 대해 유엔이 직접 처벌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덕분에 파병지에서 잘못을 저지른 평화유지군이 처벌을 받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문제가 터지면 본국으로 송환되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특별히 사태가 커지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나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동티모르에는 한국 외에도 호주, 파키스탄, 태국, 요르단 등 여러 나라의 평화유지군이 활동하고 있었다. 각자 담당하고 있는 지역과 역할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큰 틀에서는 모두 지역의 치안유지가 핵심 업무였다.
그런데 요르단 군인 몇몇이 지역주민을 성추행하고 무기를 밀매하는 사건이 터졌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정확한 사실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요르단 부대의 본국 철수가 결정되면서 누군가 요르단군 관할 지역의 치안 공백을 메워야만 했다.
한국 평화유지군인 상록수부대는 로스팔로스 지역의 치안 유지뿐만 아니라 도로와 성당 개보수, 아이들을 위한 태권도 교육과 영화 상영 등 다양한 대민지원 사업으로 현지인들에게 '다국적군의 왕(말라이 무띤)'이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덕분에 상록수부대는 요르단군의 공백을 메워줄 적임자로 선정되었고, 부대이동이라는 특별한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한국 평화유지군에 동티모르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식민의 아픔을 겪고 독립을 쟁취했지만 여전히 외국 군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동티모르의 모습에서 우리의 과거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는 동티모르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도 있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큰 마음은 불과 몇 십 년 전 우리의 모습과 다름 없이 살아가고 있는 현지인들에 대한 동변상련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해외에 파병된 한국 평화유지군이 현지인들을 다치게 했다거나 지역사회에 피해를 끼쳤다는 이야기는 내가 동티모르에서 근무할 때도,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어쩌면 한국 평화유지군의 가장 큰 힘은 우리의 불행했던 과거를 잊지 않고 함께 기억하고 있다는게 아닐까 싶다.
파병 3개월이 지나고,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주둔지를 향해 부대이동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