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로 이직 후 11개월

이곳은 지루한 천국

by 마그리뜨
creative-office-new-1.jpg 사진 출처: 구글, 나의 오피스는 이렇게 쾌적하지는 않다


한국계 대기업을 다니다 미국의 아주 평범한 회사로 이직한 지도 일 년이 되어간다.

이전 회사에 다닐 때엔 미국 회사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자유롭겠지, 사람의 노동 가치를 더 크게 쳐주겠지 (같은 일을 해도 돈을 더 많이 주겠지).


이직을 해 온 지역의 특성상 더 극단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직한 회사는 듣기만 하던 "지루한 천국"이었다. 업무는 전 회사의 1/4 정도였지만 월급은 조금 부풀려서 50%가 늘었다. 이것은 한 가지 주제에 대하여 깊게 생각할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시간들은 내가 하는 일에 이해도를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지만 어떤 때에는 딱히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입사 후 매일이 문화 충격의 연속이었다.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한국 회사라면 어떻게 했었을까, 하고 비교해보면 가장 쉽게 이해를 할 수가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1. 식사 문화

한국 회사의 첫 출근 날이었으면 팀 빌딩의 명분으로 모두가 함께 "퇴근 후 회식"을 하러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회사에서 10개월 차 직장인이 된 지금, 나는 아직도 회사의 누군가와도 밥을 나가서 먹어본 적이 없다 (물론 bridal shower, baby shower 등 특별 이벤트가 있어 모두가 모여 점심 식사를 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집이 가까운 동료들의 경우 12시경 되면 점심 먹으러 나가기 바쁘고 오후 5시가 되면 퇴근하기 바쁘다. 열심히 밥을 챙겨 먹는 이들도 생각보다 많지 않고 수프 한 캔 혹은 샌드위치 하나, 이렇게들 많이 먹는 것 같다. 퇴근 후 "회식"이라는 개념이 없으며 동료들이 함께하는 식사는 무조건 점심이다 (물론 친한 동료들끼리 모여 밥을 먹거나 간단하게 술을 한잔하는 happy hour 등은 자주 있지만 프레셔는 없다).


2. 출퇴근 시간

출퇴간 시간이라는 개념도 없다. 오고 싶을 때 와서 대략 8시간 정도를 일한 후 가고 싶을 때 간다. 내가 있는 팀은 나를 제외한 모든 이가 남자인 엔지니어링 팀이라 시간에 대해 좀 더 엄격하다고 느껴지지만 다른 부서는 8시간씩 지키면서 일하는 팀들도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내가 다녔던 한국 회사는 "유연 근무제"를 실천한다고 제시했던 것이 8시 혹은 9시 혹은 10시 정각에 맞춰서 회사에 나오는 것이었다. 그것도 인사팀이 정각 시간마다 프론트 데스크에 앉아서 사람들의 지각을 체크했었다 (그리고 그 인사팀장이 징그러워서 회사를 나오는데 큰 몫을 하기도 했고). 금요일에 일이 다 정리되었다고 느끼는 경우에는 나도 한 시간 정도는 일찍 퇴근한다.


3. 출장 기간

출장 기간이나 출장 예산을 계획하는 것도 유연하다. 한국 회사 출장을 다닐 시엔 아침엔 얼마, 점심엔 얼마, 저녁에 얼마 할당된 비용 안에서 돈을 써야 했기 때문에 비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었고 출장 기간도 빡빡하게 짜서 업무 외에 다른 것들을 둘러볼 시간도 전혀 없었다. 이곳에선 좀 더 여유 있는 출장 스케줄로 가고 싶었던 미술관도 갈 수 있었고 출장을 다녀온 후 사람들이 touristic 한 것들은 뭣들 좀 했어?라고 물어봤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큰 가이드라인을 줄 뿐 (예를 들면 벤더와 비지니스 미팅이 있지 않은 한 하루에 두 끼만 먹어라) 구체적인 결정은 개인이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출장에 다녀온 확실한 성과는 필요하다.


한국 회사에서 퇴사를 선언했을 때 그 무렵 새로 부임한 팀장이 내게 했던 말들이 기억난다.

"미국 회사는 어떻게 다를 것 같아요? 저도 외국계 회사 다녀봐서 아는데 다 비슷해요"

그때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모르니까 다녀봐서 알고 싶어요"

아직도 다는 알 수가 없지만 1년이 지난 후 느껴지는 두 가지는:

1. 개인의 개성과 다양함이 더 존중되는 문화를 가졌다는 것

2. 일과 가정의 양립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 - 퇴근 후의 시간은 온전히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고 때문에 퇴근 후 회식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인 것. 2번이 곧 1번을 있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분이 말했었듯 사람 사는 곳이라 사내에 정치 및 질투도 있고 조직 생활은 비슷비슷하지만.


한국 회사를 떠나고 나니 느껴지는 점도 적지 않았다. 몇 년을 살았어도 영어는 나에게 외국어라는 점. 업무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도 모두가 왁자지껄 수다를 떠는데 막 끼어들어 말을 하기에는 외국인으로서의 한계점이 있다. 그 당시에 회사를 탈출하겠다고 노래 노래를 불렀고 실제로 그것을 이루어 냈지만 알게 모르게 나는 나의 언어와 나의 문화를 공유한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했다. 어마어마했던 업무량(과 간간히 해야 했던 야근) 도 내가 어디 가서 든 적응 할 수 있도록 많이 성장시켜주었고. 조금은 외로운 회사생활이지만 아직까지 이직을 후회한 적은 없었으니 조금 더 열심히 버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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