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취직/이직하기

by 마그리뜨

지난 직장을 다녔던 3년 반은 돌아보면 찬란한 시간들이었다. 미국에서 처음 만났지만 나의 사수는 서울의 같은 동네 출신의 좋은 사람이었고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본인 말로는 사내 정치에 능숙하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내 생각엔 못한다기보단 윗사람들을 많이 부담스러워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나에게 좋은 선생님이었으며 본인의 일에 대해서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컸기 때문에 힘든 일들은 남에게 미루지 않고 본인이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눈치를 본다고 하고 싶은 말을 못 한 적도 없었다. 엄마에게 상사와의 에피소드를 늘어놓을 때면 엄마는 늘 재밌어했다. 어떻게 상사랑 그런 대화가 가능하냐면서.


회사를 떠난다는 생각은 정말 후련했지만 (인사팀이 회사의 뭐라도 되는 양 갑질 하는 인사팀장을 다시는 안 봐도 된다는 생각에) 과장님의 우산 아래를 벗어나 나의 길을 가는 것은 언젠간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느껴졌지만 많이 아쉬웠다.


나는 회사에서 꽤 액티브하게 이직을 위해 노력을 하던 사람으로 비쳤던 듯 하지만 유학생 연장의 신분으로의 이직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이력서를 제출한다 치자. 미국 회사들의 마지막 페이지 질문은 늘 "당신은 스폰서십이 필요하신 가요(=외국인 국적 노동자이신가요)",이었다. 이 질문을 Yes로 답했기 때문에 이력서 제출 버튼을 누르자마자 불합격의 이메일이 날아온 적도 많았다. 아메리칸드림과 이민자의 나라라고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에게 구직 시장은 내가 첫 직장을 찾을 때도 몹시 힘겨웠듯 이직도 만만치가 않았다. 미국은 대학교를 졸업한 유학생들에게 90일간의 구직 기간을 주는데 그 기간 안에 직장을 찾지 못할 경우 미국을 떠나야 한다. 그 당시 나는 그중 80일을 쓰고 나서야 겨우 일자리를 찾았다. 피가 말리는 좌절의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나는 도대체 무슨 용기로 "외국인 학사 나부랭이 신분"으로 구직 시장에 무작정 뛰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식한 게 용감한 거라고, 취직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지를 않았다. 막연히 헬조선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 정도가 있었다. 첫 직장이 한국 회사라는 점, 그리고 같이 일했던 한국 사람들이 꽤 많이 그립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내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갑질 하던 인사팀장 외에는 모든 사람, 모든 기억이 좋다).


하지만 이직 시장에서도 나아진 건 없었다. 외국인이라는 사실은 계속 발목을 잡았다. 그래도 아직 가정이 없고 언제 어디라도 떠날 수 있는 홀몸인지라 내가 원하는 도시, 내가 원하는 회사의 포지션이 보이면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썼다. 특정 회사가 원하는 정보를 맞춤화하여 이력서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어떤 회사가 비용 절감에 집중하면 전 회사에서 진행했던 비용 절감 프로젝트에 대하여 써 내려갔고 또 어떤 회사가 환경 보전(sustainability)에 신경 쓴다고 하면 참여했었던 친환경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다.


IMG_8375.JPG 급하게 뛰어나가서 전화를 받던 나의 뒷모습 ㅋㅋ


수많은 회사들의 리크루터들과 하이어링 매니저와 전화를 했다. 시차를 계산해서 아침 출근 전 전화 인터뷰를 할 수 있으면 양반이었다. 어떤 때는 출근해서 회사 건물 주차장 옥상이나 차에 타서 이어폰을 끼고 이력서와 노트, 펜을 들고 인터뷰한 적도 있었다. 전화를 받기 위해 회사 문 밖으로 달려 나가는 내 모습을 보고 내 상사는 대충 알았을 거다. 회사 건물 정원에 있던 야자수 밑에서 전화받던 나를 보고 또 어디랑 인터뷰를 보냐면서 사진을 찍고 지나가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정말 간절했다. 장장 1년의 시간을 퇴근 후 매일을 구직을 위한 노력으로 보냈으며 글을 쓰며 기록을 찾아보니 정말 많은 회사들과 전화하고 인터뷰를 다녔다. 이력서는 인터뷰의 수에 비해 몇 십배는 더 많이 뿌렸다. 링드인, 글래스도어, 인디드 등에 올라와있는 나의 직무와 연관된 구직 광고엔 너무 깡촌이어서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 빼고는 거의 모두 이력서를 냈다. 정말 가고 싶은 회사(꿈의 직장)들의 경우 그 회사들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관련된 잡 포스팅이 있나 찾아도 보았다.


인터뷰까지 갔던 회사들의 목록은 대충 이렇다: 화장품 회사, 보석 회사, 메디컬 회사, 콜라/감자칩 회사, 반려견/묘 밥 회사, 냉동 과일/식품 회사, 버터 회사, 프랑스 과일회사, 할리우드 스타가 설립자로 있는 아기 용품 회사, 맥도널드에 감자칩을 대던 회사, 면도기 회사,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등등.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신분 때문에 전화가 오자마자 5분도 안돼서 끊기는 상황들이었다. 스폰서십 필요해? 하고 물어보자마자 대화가 종료되곤 했다. 회사의 정책으로 외국인을 고용하지 않는, 그들이 어쩔 수 있었던 건 아니겠지만 그럴 때마다 슬픔이 몰려왔다.


계속해서 그런 거절 아닌 거절을 계속해서 받다 보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는 걸,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시간들도 왔다. 그래서 온사이트 인터뷰가 오면 즐겁게 여행을 다녀오자!라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다니기 시작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평생 못 와볼 수도 있는 이런 동네를 언제 와보겠냐는 마음으로. 어차피 인터뷰 초대해준 회사가 방도 잡아주고 밥도 먹여주고 차도 빌려주는데 인터뷰가 잘 안되더라도 맛있는 거 먹고 동네 구경하고 오면 되지 않겠냐는 기분으로!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 하면 할수록 느는 것이 인터뷰였다. 이곳저곳과 전화를 하고 얼굴을 맞댄 인터뷰를 다녀보니 자기소개나 업무 소개 등 항상 나오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은 자동적으로 나오기 시작하여 몇 개월이 지난 후에는 꽤 편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인터뷰를 몇 군데 다녀보니 회사를 선택함에 있어서의 나의 우선순위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너무 촌동네는 안 되겠고, 대도시랑 한국 마트가 30분 안쪽으로 접근 가능한 곳이었으면 좋겠고, 교통 체증이 심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파트 렌트가 월급의 1/3가 안 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식으로.


2016년 10월 첫 온사이트에 초대받은 후 2017년 8월 수십 번의 전화와 면접 인터뷰를 거쳐 외국인인 날 받아주겠다는 많은 조건이 (휴가 일수는 빼고!) 마음에 드는 회사의 오퍼 레터에 사인을 했다. 그렇게 나는 학교를 다녔던, 주 정부의 인컴 택스가 없는 텍사스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무엇보다 대학생활을 했던 주라 고향으로 돌아오는 듯한 편안함이 있었고 여전히 친구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텍사스에 있는 이 회사는 나에게 굉장히 관대했다. 이곳은 나에게 8월에 오퍼 레터를 보내주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11월까지 이직을 할 수 없는 나를 배려해 장장 4개월을 기다려줬다. 그렇게 나는 2018년 1월부로 내 두 번째 직장으로 취직했다. 물론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막상 돌아오니 캘리포니아의 사람들과 날씨와 회사 문밖으로 나가면 보이던 돈가스, 설렁탕, 곤드레 비빔밥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지만.., 나는 텍사스에서 두 번째 직장을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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