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드디어 3년짜리 취업 비자가 생겼다. OPT는 학생비자 밑에 있는 프로그램이라서 미국 밖으로 나갈 수는 있다고 하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는 상태에서 F-1 학생비자 스탬프를 받는 것은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OPT를 하는 동안은 나는 미국에 갇혀있었다. 한국은 물론, 외국 어디도 나갈 수가 없었다.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어서 간 곳이 알라스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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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B 비자 승인이 떨어졌고 비자 스티커를 받기 위해 고국 방문을 했다. 즐거운 시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사관에서 인터뷰 후 비자가 찍힌 여권을 늦게 보내주는 바람에 강제로 휴가가 연기된 것 또한 좋은 일이었다. 인사팀에서는 ㅈㄹ을 해댔지만 여권이 없는데 비행기를 탈 순 없지 않은가.
인사팀의 의지는 확고했다. 우리는 비자를 지원해줄 뿐, 그 이상은 없다. 하지만 내가 미국에서의 삶을 꿈꾸기 위해서는 그 이상이 필요했다. 비자도 결국 일시적인 신분 연장일 뿐,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나는 영주권이 필요했다. 그리고 회사가 나에게 이것밖에 해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으니 방법은 내가 찾아야 했다.
사실 비자가 나오기 전부터 나는 많은 회사들을 쑤시고 다녔고 (내 상사는 몹시 못마땅해했지만)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으면 그곳이 어디던 간 일단 비행기부터 타고 봤다. 그래서 갔던 게 한 다섯 군데 정도. 그리고 두 곳에서 오퍼를 받았다. 비참했던 학생 시절의 잡 헌팅보다는 훨씬 나아진 숫자였다. 그리고 회사에겐 비밀이었지만 이미 비자가 나오기 전 8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로부터 오퍼가 있었다. 도대체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은 나에게서 뭘 봤는지 모르겠지만 8월에 오퍼를 주고 내가 서류 문제로 갈 수 없다고 하니 그럼 비자 나오고 트랜스퍼하는 기간까지 기다려주겠다며 정식 출근 1월까지 장장 5개월을 기다려줬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 생각해봐도 그렇고 정말 어지간히 고마운 회사가 아니다. 사람을 뽑았다는데 그 사람이 5개월 동안 나타나지를 않아 내 상사는 그렇게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비자 스탬프를 받고 미국으로 돌아와서 몇 주 후, 취업비자의 트랜스퍼가 새 회사로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상사를 끌고 콘퍼런스 룸에 들어갔다. 언젠가는 떠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그 시간이 빨리 오게 될 줄은 몰랐다며 정말 축하한다며, 어디 가서도 잘할 거라며 축하해주던 내 상사. 이렇게 일은 산더미같이 많은데 가면 자기는 어떻게 하냐던 내 상사.
인사팀의 갑질만 아니었으면 -- 이라고 쓰고 영주권만 지원해줬어도 라고 읽는다 -- 나는 좀 더 오랜 시간 전 회사에 머물렀을 것 같다. 일을 배우는 것도 좋았고, 사람들도 좋았고, 캘리포니아도 좋았고, 동네에 널려있는 한식당도 좋았고, 회사 탁구대회도 좋았고, 그냥 다 좋았다. 나쁜 기억이라고는 땅딸막하던 인사팀장밖에 없다.
내 예전 자리로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그렇게 내 링드인을 방문한다. 도대체 우리 과장님이 뭔 얘기를 했으면 사람들이 궁금해서 찾아들어오나 싶다.
그리고 그렇게 새 회사로 이직을 해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글이 내가 처음 브런치에 쓴 글(https://brunch.co.kr/@investor/1)이다. 다시 보니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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