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시장은 늘 어렵다. 한국 사는 한국인도 취직이 어려운데 나는 미국에서 취직하려는 외국인이었다. 심지어 경력도 없다. 그리고 아무리 한국계 회사였어도 여기는 미국이다. 신분문제에서부터 이미 다른 사람들보다 문턱이 높았다. 그래도 120일간의 눈물겨운 시간을 보낸 후 나는 단 하나의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미국에서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연장할 수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이었지만 여기는 작은 미국 지사였다.
더군다나 나의 직무는 내가 학교에서 공부했던 분야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였는데 그 직무를 하는 사람이 회사에 나밖에 없었다. 관련 공부도 해보지 않은 신입 사원이 무언가를 회사의 매뉴얼대로 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심지어 이 지사는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데다 매뉴얼을 셋업 할 수 있는 누군가를 원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를 해내길 기대했지만 나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기대에 부응하지도 못하는데 5시만 되면 다른 "선배"들은 다 근무를 계속해도 따박 따박 집에 가는 이상한 신입사원이었다. 어느 날은 보다 못한 부장님이 날 불렀다. "마그리뜨 님, 5시가 돼도 다른 선배들이 계속 근무하고 있으면 "선배님들"이 필요한 건 없는지, 마그리뜨 님의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물어보기도 하고 눈치도 좀 보고 그래요". 눈치는 개나 줘라. 나는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5시가 되면 집에 갔다.
이 미운 오리 새끼를 처치 곤란으로 생각했는지 결국 한국 본사에서 사람을 보냈다. 일도 할 겸. 사람도 교육할 겸.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 나의 상사, 은인, 커피 중독자, 맥주 중독자. 좋은 사람이었고 본인 하는 일에 대해 지식도 넓고 깊은 데다 자기가 할 일에 대해 완벽히 책임지고 남에게는 미루지 않는, 완벽한 삼박자를 갖춘 상사였다. 5시에 퇴근하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진 모르겠으나 5시가 되면 먼저 퇴근시간이라고 잘 가라고 인사를 했고 자기는 매일 야근을 하면서도 나한테는 싫은 내색을 한번 한 적 없는 사람이었다. 이 분 밑에서는 정말 많이 배웠다.
회사는 취업비자를 지원해줬는데 첫 해도 뽑기에서 떨어지고, 두 번째 해도 뽑기에서 떨어지고 마지막 삼 년 차의 비자 추첨. 이것도 내가 공대생이 아니었더라면 세 번의 추첨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러려고 공대를 갔었나, 싶기도 했다. 번번이 비자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1년에 한 번, 1년 반에 한 번, 따위로 OPT를 계속해서 연장해야 했다. 이렇게 계속 신분 목숨을 연장하며 장기적인 미래 설계가 불가능한 삶을 산다는 것은 언제나 벼랑 끝에 서있는 심정이었다.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비자 서류를 위해서 15년, 16년 내 서류를 담당했던 변호사를 새 변호사로 바꿨다. 그리고 2017년 10월 마지막 취업비자 추첨에서 나는 드디어 3년짜리 취업비자 목숨을 연장하는 데 성공한다. 드디어 한국에 그렇게 많지만은 않은 H-1B 비자 홀더다. 취업비자는 1년에 65,000명을 뽑는데 한국인은 통계상 매년 2,0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개표가 완료가 되지 않아 과연 트럼프의 첫 임기이자 마지막 임기인지 모르는 이 시점에 트럼프는 지난 10월, H-1B 비자 홀더들이 받아야 하는 적정 임금을 매우 높게 책정하며 이민 비자의 문턱을 한층 더 높게 만들어놓았다)
다음 편에 계속.
#내가이민자라니 #외국인노동자 #미국이민 #미국유학 #미국영주권 #취업비자 #H-1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