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타협한 대학생활

by 마그리뜨
IMG_8705.JPG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Engineering and Education Research Center (EER)


갇혀 사는 것만 같았던 호스트 패밀리와의 생활을 마치고 대학을 갔다. 어렸을 때부터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관심이 많아서 상경계에 진학을 원했다. 다만 문제는 내가 가장 가고 싶어 했던 나의 모교의 1 지망이었던 비지니스 프로그램은 내게 불합격을 통지했고 달리 2 지망을 쓰고 싶은 것이 없었던 나는 아빠가 하니까 나도 할 수 있겠지, 싶었던 전자공학과를 2 지망으로 쓰고 합격장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해가는 아이가 앞으로 뭘 하고 싶을지, 내가 뭘 잘할지 알았을 리가(난 이게 한국 교육의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냥 그 도시에서 살고 싶고 그 학교가 가고 싶으니까 과는 상관없이 그냥 그 학교를 가기로 결정했다.


텍사스는 땅을 파면 석유가 나는 신의 은혜를 입은 곳이라서 고등학교를 텍사스에서 3년 다니면 외국인들에게도 텍사스 거주민 자격으로 학비를 내는 특권을 누리게 해 준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외국인이 한 학기에 17,000불의 학비를 냈다면 텍사스에서 특정 기간 이상을 살아온 친구들의 한 학기 학비는 5,000불이라는 것이다. 물론 5,000불도 한국 사립대 학비에 맞먹는 학비로 학비가 싼 건 아니지만 한 학기에 학비가 대략 천이백만 원이 절약이 된다면 4년이면 1억 차이다.


나는 11학년으로 미국을 왔고 처음 왔을 땐 1년만 있다가 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다. 만약에 내가 이 제도에 대해서 알았다면 한 학년을 꿇고 고등학교 3년을 채워 대학을 가게 되었을까. 1억은 큰돈이니 아마도 그렇게 했을 것 같다.


공부는 어려웠다. 같은 과에는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코딩 언어에 취미를 붙인 아이들도 있었는데 나에게는 난생처음 보는 단어들과 개념을 익히는 날의 연속이었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고 6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궁둥이를 떼지 않고 코드를 짜도 그 쉬운 프로그램 하나를 짜 낼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꿈을 꾸면서도 특정 레지스터 안에 밸류를 넣어 원하는 결과가 아웃풋으로 나오도록 기계 언어로 코딩을 했고 어느 날에는 깨달음이 오기도 했다. 깨달음은 달콤했지만 하나를 깨달으면 그 앞은 첩첩산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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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 공부였지만 학비는 항상 목구멍 뒤에 걸려있는 생선 가시 같았다. 어떻게라도 외국인 학비를 면제받아보고자 여기저기 뛰어다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NO 였다. 장학금 오피스에 웃으며 찾아가서 눈물을 흘리며 나오던 날은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내고 있는 이 학비면 아프리카에는 굶주리고 병든 아이들을 몇 백 명을 살릴 수가 있을 텐데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돈을 내고 교육을 받고 있는가. 아빠가 시애틀에서 꽂았던 비수는 한 번씩 날 아프게 했다.






그러다 한국인 선배가 졸업하면서 전자과 랩에서 일하는 자리를 내게 넘겨주었다. 이 일은 나의 생활에 많은 변화를 야기했다. 외국인 학비를 면제받았고, 일주일에 20시간을 일하며 학비를 스스로 버는 경제력이 생겼다. 돈으로부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면제된 학비로 차를 사게 되었고 남자 친구가 생겼다. 학비는 물론 통장으로 들어오는 월급도 쏠쏠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었다. 원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손안에 들어왔고 모든 것이 해결된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영어가 편해지게 된 데에도 이 일이 크게 작용했다. 모든 전자과 학생들을 상대하며 시시덕거리고 실험 장비를 빌려주는 일이었다. 나는 전자과의 checkout desk girl이었다.


재정적인 마음의 여유. 얻은 것도 많았지만 잃은 것도 많았다. 나는 5학년 2학기를 졸업하면서 내내 학비를 위해서 이 일을 해야 했는데 그 때문에 중간에 있었던 다른 기회들을 포기해야 했다. 예를 들면 경제과에서 얻은 1학년들 보충수업 가르치는 조교의 자리, 하고 싶었던 오디오 시그널 관련 리서치. 그 자리들은 내가 더 하고 싶은 것들이었지만 월급을 줄 뿐, 학비를 지원해주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성적을 돈과 타협했다는 핑계를 댔다.


말이 일주일에 20시간이지, 수업에 가고 프로젝트를 하면 정말로 남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였나 어느 순간부터 주객이 전도되어 공부보다는 일이 우선순위가 되어버렸다. 내가 일을 덜/안 했더라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었을까. 내 대학 생활은 엉망진창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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