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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그리뜨 Nov 07. 2018

미국 여행 - 쿠퍼 랜딩/위티어, 알라스카

Cooper Landing/Whitter, Alaska

시워드를 둘러보고 위티어로 올라가는 길, 비가 와서 들르지 못했던 쿠퍼 랜딩을 들러야만 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하이킹 트레일이 있는 곳으로 알라스카를 여행지로 고르게 된 큰 이유기도 했다.


표지판도 없어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트레일을 찾는데만 한 시간쯤이 걸린 이 곳. 동네 사람들은 이 코스가 깨나 가파르니 내려올 때 등산화 없이는 몹시 힘든 산행이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알라스카의 산행을 위하여 등산화를 하나 장만해온 터! 그들의 말대로 좁은 트레일은 몹시 경사졌고 산행은 숨이 찼다. 날씨는 아주 훌륭했고 봄이 한창으로 야생화가 만개해있는 풍경. 트레일을 얼마나 올랐을까. 원체 등산 중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길래 뒤를 돌아보니 탁 트인 뷰에 넋을 잃었다. 완벽한 날씨에 만년설이 덮인 산들과 완벽한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 아아.


아, 이 광경을 보려고 내가 알라스카에 왔구나.

  

쿠퍼 랜딩 케나이 강, 파노라마, 노 필터.


한참을 서서 바라보며 맑은 산소를 마셨다. 황홀함에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그런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산 바람마저 아름다웠다. 위에서 봤을 때 이렇게 아름다운 곳은 가까이에서 보면 어떨까 싶어 하산하여 작은 공원에 찾아갔다. 사뭇 다른 느낌이었지만 아름다움은 매한가지.



가까이서 보는 케나이 강, 노 필터.




쿠퍼 랜딩에서 떠나 밤은 거드우드에서 지내기로 하고 다음 날 아침 위티어로 향했다. 가기 전엔 몰랐던 사실은 위티어에 가려면 정해진 시간마다 열리는 게이트를 통해 가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위티어로 가는 터널은 매 정시에, 위티어에서 돌아오는 터널은 매 시 30분마다 열린다는 것이었다. 주차 또한 전쟁일 수 있다는 코멘트에 잔뜩 겁을 먹고 위티어에 도착했다.   


위티어에 가면 주로 빙하 크루즈들을 많이 타는 듯했으나 이 날의 계획도 빙하를 보러 가는 하이킹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Portage Pass를 지나 Portage Glacier. 대략 10km 정도 왕복 코스였으나 차를 멀리 대는 바람에 몇 키로를 더 걸어야 했다.


그렇게 힘들어야 했을 트레일은 아니었는데도 내딛는 걸음마다 발이 눈 속에 푹 푹 빠지는 산행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눈 때문에 길이 정확히 나있지 않은 곳이 많았고 눈이 녹은 곳은 자갈길 밭이라 편한 산행이 아니었다.


맨 오른쪽 사진이 포타지 패스에서 바라보는 바다



그렇게 두 시간 반쯤 걷고 나니 저 멀리 빙하가 보이기 시작했다. 두 산의 산골짜기 계곡 사이에 웅장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Portage Glacier. 빙하에 가까이 다가가니 Portage Glacier를 구경 오는 크루즈도 한 번씩 왔다 갔다 했다. 물 온도가 너무 차서 들어가 볼 용기는 내지 못했지만 빙하 물에 손을 씻고 앉아 빙하를 바라보며 먹는 간식은 훌륭했다. 역시 빙하가 만들어낸 물 색은 영롱하다.



Portage Glacier



혼자 알라스카를 여행하는 내내 가장 걱정스러웠던 점은 곰과의 마주침이었다. 하이킹 트레일 어디를 가도 입구에 곰을 만나면 이렇게 하세요, 혹은 이러시면 안 돼요 라는 주의 문구를 볼 수가 있을 정도로 곰이 그렇게 많다고 하는데 곰을 마주쳐도 걱정이지만 곰을 마주치지 못해도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여행 마지막이 다 되어가도록 곰을 마주치지 못하여 곰을 보는 것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그렇게 마지막 날 앵커리지로 돌아가기 전 거드우드의 식당 테라스에서 파스타보다 할리벗(가자미) 더 많이 든 것 같은 파스타를 먹고 있는데 먹을 것을 찾아 산에서 내려와 식당가로 침입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블랙 베어를 결국 보기는 보았다. 그리즐리 베어에 비해 몹 집도 작고 성격도 온순하다고 하는 블랙 베어는 식당 주인이 막대기를 들고 워이 워이 쫓아내니 후다닥 달아나버렸지만 어쨌든 알라스카에서 곰을 보긴 봤다.






앵커리지에서 시워드로 가는 길은 내내 비가 오고 구름이 산에 걸려있어 운치는 있었으나 시야가 트이지 않았었다. 심지어 그 아름다운 케나이 강도 비 때문에 전부 잿빛으로 물들어 그 당시에는 케나이 강이 그렇게 아름다운 옥색을 띠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시 앵커리지로 돌아가는 길, 1번 도로는 나에게 청명한 날씨를 허락했다. 결코 끊이지 않는 산 정상마다 밀가루를 다정하게 뿌려놓은 듯한 눈 덮인 산들과 그 아래 잔잔한 바다, 호수, 강의 경치. 이런 게 청정 자연이지 않을까.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보다는 아직 닿지 않은 곳이 더 많은 아름다운 불모의 땅. 산을 좋아하는 나에겐 더없이 아름다웠던 곳. The last frontier.


길지 않은 여행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알라스카는 나에게 정말 강렬한 인상을 선사했다. 빙하의 원대함, 끝없이 펼쳐진 눈 덮인 산들, 좋았던 산행들과 그들이 주었던 멋진 뷰들. 다시 돌아올 그 여름에 드날리, 주나이를 기약한다. 강에서 연어를 사냥하고 있을 곰님들도 함께.   


날이 갠 1번 도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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