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 점심시간엔 뭘 할까?

내가 다니는 미국 회사의 점심시간

by 마그리뜨

한국계 회사를 다니며 매일같이 회사 사람들과 함께 밥을 사 먹으러 다니던 문화에 익숙했던 나는 점심시간을 혼자 보내는 미국인들을 보며 쓸쓸함을 느끼는 동시에 충격을 받았었다. 하지만 곧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일 년 반에 가까운 시간을 자리에 앉아 혼자 밥을 먹으며 지냈다. 회사 근처에 사 먹을 곳도 녹록지 않아 매일 같이 밥을 싸서 다니고 있다. 그리고 일 년 반이 지났을 때쯤, 점심을 같이 먹는 친구가 생겼다. 어떤 계기에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녀도 혼자 책상에 앉아 밥 먹는 게 싫다고 했다 (She once said, “All I want to do is socialize!”).


한참을 그녀와 둘이 함께 밥을 먹었다. 건강검진에서 비타민 D가 부족하다는 판정을 받은 이후, 여름 내내 우리는 바깥에서 점심을 먹었다. 텍사스 휴스턴의 여름은 워낙 덥고 습하기 때문에 사무실 밖 피크닉 테이블에서 밥을 먹는 사람은 우리말곤 없었다. 나는 회사에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 생겼다는 게 정말 기뻤다. 그녀는 나와 같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휴가가 부족해서 불평하는 사람이었고, 텍사스로 이민을 온 1.5세였으며 우리는 소화에 좋대!! 하며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는 콤부차를 나눠마셨다.


몇 달이 지나자 텍사스에도 가을이 왔고 날씨가 선선해지자 하나 둘 밖으로 나와 점심 먹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내가 밥을 함께 먹는 친구는 인사팀에 사교성이 좋은 데다(심지어 얼굴도 이쁜) 인기도 많은 것 같은 친구인데 사람이 사람이다 보니 그녀 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관계에 있어서 일대일 관계를 선호하며 다자 관계가 쉬운 적이 없었는데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대화를 해야 하니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아직도 회사 끝나고 해피 아워에 오라고 하면 부담되는 마음에 웬만하면 가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점심 테이블에 10명이 한꺼번에 뛰어들다니. 부담스러웠다. 항상 10명이 함께 했던 건 아니었고 어느 날은 얘가 없고 저느 날은 쟤가 없고 오늘은 모두가 있고 이런 식이었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밥을 먹다 보니 각자 뭘 싸왔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푸에르토리칸과 살바도리안의 혼혈, 멕시칸, 아르헨티나와 멕시칸의 혼혈, 엄마가 페루비안, 베네수엘란, 코스타리칸, 그냥 미국인(ㅋㅋㅋ)들이 싸오는 음식은 국가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한 가지 새롭게 다가왔던 사실은 부모님이 중앙 아메리카나 남아메리카에서 온 친구들은 모두가 주식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쌀은 오로지 아시안들의 주 음식재료라는 나의 편견이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멕시칸 음식을 먹을 때 날리는 밥이 빠진 적이 거의 없었는데 말이다! 키가 별로 크지는 않은, 이미 어깨가 자기 키만큼 커져있는 멕시칸은 근육을 더 키울 거라며 매일 같이 밥에 치킨 가슴살을 먹고 있었고, 심지어 미국 애도 같은 식단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중에 한 명이 우노 카드를 들고 왔다.

UNO! 생각해보니 스패니쉬로 1을 의미한다.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점심시간은 우노를 기다리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우노 카드의 오너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매일같이 테이블에 모이기 시작했고 세네 판을 차고 점심시간 한 시간을 꼬박 채우고서야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운이 몹시 좋았던 어느 날, 점심시간에 할애되는 네 판 중 내가 세 판을 이기는 신박한 일이 일어났고 그 이후 챔피언이라는 이유로 모든 사람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다.


내일도 아마 우리의 식사 테이블에선 이런 대화가 오갈 것이다.

“What’s the color?”

“ROJO!” (스패니쉬로 빨간색을 의미한다)



keyword
이전 08화미국 회사로 이직 후 11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