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추천하지 않아요
이상하게 내 프로젝트도 아닌 팀원의 프로젝트를 위해 출장갈 일들이 한번씩 생긴다. 눈치가 없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출장을 등 떠밀려 가는건지 아님 내가 믿을만한 사람이라 생각되어 대타로 보내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러나 저러나 상관은 없다. 출장지가 가보지 않은 주나 도시라면 회사돈으로 현지 음식 맛도 보고 짧은 여행도 할 수 있는 더할나위 없는 기회이니까. 그래서 이번 출장지는 시애틀에서 직항 비행기도 없는 -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주도, 콜롬비아다.
여행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계획에서 나오는 설렘이고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의식주인 법이다. 구글맵을 켜놓고 신성한 마음으로 도시와 출근해야하는 출장지를 체크하고 예산을 초과하지 않는 한도에서 최고로 좋은 호텔을 예약한다. 별과 리뷰가 많은 레스토랑도 몇 개 마음에 챙겨둔다.
놀스 캐롤라이나는 좋은 학교라도 있고 (UNC) 많은 기업들이 이주하고 있어서 요즘 핫하다는 느낌이라도 있지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사투리 무지하게 심한 남쪽 촌동네라는 느낌이 강하다. 콜롬비아에서 2시간 쯤 떨어져있는 찰스턴은 미국 남북전쟁의 첫 총성이 터진곳으로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도 하고, 바다를 끼고 있기도 하고 나름 콜로니얼 시절 빌딩 등 볼 것이 꽤 있다고 한다. 하지만 콜롬비아는...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자체는 담배 및 목화재배가 주력 사업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노예제도를 오랫동안 옹호한 지역이라 그런지 그릿츠(grits)라는 음식이 지역 특색으로 자리 잡아있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옥수수죽으로... 가난하던 시절 먹던 음식스러운 느낌이 진하게 난다. 맛이 없지는 않았는데 내 돈 주고 먹고싶은지는 잘 모르겠는 그런 느낌. 하지만 곁들여 나온 새우가 굉장히 탱글탱글 잘 구워나와서 만족스러웠다.
콜롬비아엔 해산물을 (특히 굴) 취급하는 식당들이 많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새우가 얹어진 그릿츠를 주문하면서 전채요리로는 웨이트리스가 추천하는 오이스터 락커펠러라는 메뉴를 시켰는데 도대체 굴을 파마산 치즈니 뭔 치즈니 팍팍 뿌려서 구우면 도대체 굴을 굴 맛으로 먹으라는건지 치즈맛으로 먹으라는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금이나 쳐져있는 석화구이를 먹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물론 맛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날 퇴근하고 집에 가고 싶었지만 함께 출장을 나와있던 업체에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여 주청사 맞은 편 뷰가 좋은 스테이크 하우스에 갔다. 미국 음식은 도무지 sophisticated한 구석을 찾아볼 수가 없는것 같다. 비싸고 좋은 재료를 불에 잘 구워 버터에나 찍어 먹으면 그것이 바로 미국의 하이엔드 음식인 것이다. 안심은 말해 뭐해 맛있었는데 그 전에 나온 시푸드 타워는 비쥬얼이 어마어마했다. 왕 칵테일 새우, 굴, 랍스터가 어마어마하게 나왔는데 아무도 굴을 안먹겠다고 해서 (그럼 도대체 왜 시킨건지?) 내가 타워에 있는 굴을 거의 다 먹고 못먹겠어서 몇 개 남겼다. 다시 한번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 맛은 있었지만 미국 어딜가도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라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았다.
콜롬비아는 다운타운도 가로 세로 두 블락 두 블락 정도라 크게 볼 것이 없었고 제일 기대도 많이 했고 제일 좋았던 것 역시 주 청사 건물이었다. 4일 출장 내내 주 청사 지붕이 살짝 보이는 힐튼에 머물렀음에도 깜깜한 밤에나 주 청사를 볼 수 있었는데 마지막날 다운타운에 있는 지중해 음식점을 갔다가 마음에 안들어서 다른 위치에 있는 지중해 음식점으로 옮겨갔는데 마침 식당이 바로 주 청사 앞이라 쨍한 날씨의 건물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사진을 보니 구름 한점 없는 파란 날씨가 참 아름다워보이는데 사실은 40도에 육박하는 엄청난 더운 날씨였어서 주 청사도 5분쯤 구경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나는 참 이로스/자이로스/유로 디쉬를 좋아하는데 4일만에 밥을 먹으니 살 것 같았다. 나오면서 바클라바도 두개 사서 나왔는데 참 맛있었다. 사실 출장은 5일 일정이었는데 업무가 4일 차 아침에 끝나 그 날 저녁으로 비행기 일정을 바꿔 집으로 돌아왔다. 굳이 하루 더 이 도시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