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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그리뜨 Nov 02. 2023

세인트 루이스, 미주리, 고스트 타운

미시시피 강의 영광, 도시의 죽음

미국 50개 주 도장 깨기는 계속해서 진행 중이다. 미주리 주의 세인트 루이스로 향한다.


세인트 루이스에는 회사의 반려동물 식품 부문이 있는데 그동안 코비드 때문에 주최할 수 없었던 북미 부서 워크샵이 무려 5년 만에 열린다고 했다. 여러 가지 일에 도움을 받기 위해 회사 내의 네트워크의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굉장한 오산이었다. 100명 정도가 왔던 것 같고, 출장이나 휴가로 빠진 사람들도 꽤 되었다고 했다.


세인트 루이스 포 시즌 호텔 뷰 - 아치뷰를 위해 꼭 짝수방 번호로 달라고 하세요


세인트 루이스 포 시즌에 머물렀는데 멋진 아치 뷰에 창 바깥으로는 수영장이 내려다보여 마음은 늘 수영장에 나가있었는데(호수 수영 중독상태라, 어딜 가도 수영복을 들고 다니는 중)가 볼 시간이 없었다는 게 몹시 아쉬웠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회사 친구들이랑 우버를 타고 다운타운에 있는 수퍼마켓에 갔는데 해가 중천에 떠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운타운의 치안이 너무 좋지 않아 보였다. 인적이 드물었고 수퍼마켓 앞에는 노숙자들이 늘어져있어서 우리는 얼른 살 것만 사고 호텔로 돌아왔다. 워크샵 그룹 일정을 어찌나 빡빡하게 잡아놨는지 겨우 하루 저녁을 나가서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도 혼자가 아니고 팀으로) 다운타운 메인 거리에 있는 식당에 갔음에도 (화요일 저녁이었지만) 길거리엔 사람이 하나가 없었고 죽은 도시 같아서 조금 찝찝했다.



다운타운은 아니고 호텔하고 아치 사이 어디


다운타운 옆으로 미국의 젖줄, 미시시피 강이 흐르고 강을 따라서는 지금 돌아가고 있는지 망했는지 모르겠는 공장들이 잔뜩 서있다. 좋아 보이는 사진을 올려서 그렇지 동서로 나있는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길 몇 블락을 늘어져있던 빈 공장들은 유리창이 깨지고, 여기저기 벽돌들이 무너져 있고 낙서가 크게 되어있고 아주 으스스했다. 이렇게 죽어버린 공장지대는 처음이다. 죽은 도시, ghost town. (대신 섭어브가 뜨는 중)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런 도시가 과거에는 얼마나 큰 영광을 누렸던 건지, 세인트 루이스에는 연방 준비은행이 있다. 아치를 보고 돌아오는데 연방 은행을 발견했다. 연방 은행은 참을 수 없지. 지나가는 사람과 오오 님 연방은행에서 일하십니까?라고 대화하고는 거기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지 않았음을 후회를 하며 연방은행으로 향했다. 은행은 당연히 들어갈 수 없고 몇 년 전 관광객을 위해 오픈한 경제 박물관 (economy museum)이 있었는데 일 달러 밀리언개로 만든 밀리언 달라 (13억) 큐브랑 파기해서 분쇄한 화폐를 나눠주고 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세인트 루이스 연방 준비은행 aka Fed St. Louis




 


포 시즌즈에서 걸어서 아치스를 가는 길, 잘보면 입주된 상점이 거의 없음


일정이 빡빡해 세인트 루이스를 둘러볼 시간이 있을까 싶었는데 마지막날 오전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기 전 두 시간 정도가 남아서 시원한 옷으로 갈아입고 (사무실은 냉방병 올 거 같고 바깥은 쪄 죽을 거 같은 날씨) 게이트웨이 아치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공원으로 가는 길엔 포시즌 바로 옆에 있는 카지노를 지나 다리 밑도 지나야 하고  아무도 입주해있지 않은 망해버린 빌딩들을 지나고 나면 갑자기 풀밭이 나타나고 공원이 나타난다.



아치스는 거대하고 멋졌다


아치는 거대하고 아름다웠다! 오래되고 아주 비좁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아치의 꼭대기에 올라가 세인 루이스를 볼 수 있다고 하던데 굳이 40불 넘는 돈을 주고 세인트 루이스 전경은 안 봐도 될 것 같아서 아치와 흙탕물의 미시시피 강만 구경하고 왔다. 역시 세인트 루이스의 하이라이트는 무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게이트웨이 아치(The Gateway Arch) 다.



아치의 정면에는 Old Courthouse이니 옛 법원이 있는데 현재 공사 중이라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이곳은 Dred Scott이라는 노예가 자신과 자신의 아내의 자유(freedom!)를 위해 소송을 진행했던 아주 역사적인 장소다. 1857년, 연방 대법원 Supreme Court에서 그들은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소송이 무효라는 판결을 내리고 이는 남부와 북부의 노예제도 견해 차이와 갈등을 더욱 심화시켜 결국에는 헌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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