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의 콜럼버스(촌구석) 한식 탐방기
하이킹을 다니다가 만난 한국 사람들이랑 얘기를 하면서, 그리고 먹으러 다니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시애틀은 한국 음식이 형편없다. 최근 시애틀 근교에 새로 중국집을 열었다는 소식에 모두가 열광하며 하이킹을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갔는데... 참고로 하이킹 끝나고 먹는 음식은 맛없기가 힘든데... 짬뽕에서 라면 스프 맛이 났다. MSG를 얼마나 넣었으면 이런 맛이 나는 걸까. 파트너가 만들어줬던 짬뽕이 100배는 맛있었던 것 같다.
요즘 회사에 일이 너무 많은 데다가 출장 다다음 주에 2주 휴가까지 계획되어 있어서 일주일 출장으로 자리 비우기가 몹시 버거운 상황이었는데 어쨌든 가보지 않았던 주를 갈 기회가 생겼으니 간다. 이번에는 오하이오다. 오하이오는 처음이다. 시애틀 같은 대도시에서 오하이오촌구석를 가면서 가장 설렜던 부분이 한국 음식이라는 게 조금 웃프다.
시애틀은 미국 본토에서 아시아와 가장 가까운 곳이지만, 그것은 곧 미국 본토 모든 곳과는 제일 멀리 위치해 있다는 걸 의미하는데 이 때문에 미국에서 어딜 가려해도 멀다는 게 괴롭다. 4시간이 넘는 비행시간과 3시간의 시차를 뚫고 오하이오 콜럼버스에 도착하여 곧장 순대국이 맛있다는 집으로 향했다.
몇 주 동안 콜럼버스에 비가 오지 않아 사람들이 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데, 시애틀에서 비를 모셔갔는지 국밥 한 그릇과 잘 어울리는 날씨였다. 콩나물이 잔뜩 든 해장국 스타일의 순대국은 처음이었는데 맛있게 잘 먹고 숙소로 향했다. 곱창전골도 위시 리스트에 있었는데 다른 식당들에서는 전골 스타일로 팔길래 며칠 뒤 1인용 곱창찌개를 먹으러 같은 식당에 돌아왔었는데 같은 육수 베이스를 쓰는 듯싶었고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순대국이 원픽.
숙소의 옵션을 고를 수 있다면 킹 침대가 1개 있는 방보다는 퀸이 2개 있는 방을 선호한다. 외출했던 옷 입고 뒹구는/간식 먹는 침대 하나, 잠자는 용 침대 하나.
오하이오에 좀 살아봤다 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제니스 아이스크림을 추천했다. 제니스는 오하이오의 자랑인지 여기저기에 많았는데 숙소에 가까운 예쁜 제니스 가게가 있었다. 6일 출장동안 이틀인가를 제외하고 매일 들락날락하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최애는 솔트 카라멜. 처음 솔트 카라멜을 맛봤을 땐 너무 맛있어서 충격적이었다. 짭짤한 달고나 맛이랄까. 두 번째부터는 유틸리티가 줄어서인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와일드 라벤더도 인기템이라고 했는데 라벤더의 향보다는 시트러스 계의 상큼한 맛이 많이 났다. 브램블 베리도 맛있고 알몬드 브리틀 버터크림도 맛있었다. 와플콘이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 (처음 이틀은 와플 한 조각을 주길래 따로 시킬 수 있는지 모르고 안 시켰음 ㅠㅠ. 집으로 돌아가는 오하이오 공항에 제니스 자판기가 있길래 급히 처리해야 할 일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하나 뽑아먹었는데 그것도 맛있었다. 회사 땡큐. 회사 아저씨는 오하이오에 방문했던 바이든이 먹었던 Greater's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다고 했는데 다음을 기약해 본다. 제니스는 "어른"들의 아이스크림이고 그레이터는 좀 더 기본적인 맛들이 많다고.
출장지는 미국 R&D 본사였는데, 전 프로젝트 때도 많이 도와주시고 지금 하는 프로젝트도 멘토 해주고 계신 R&D 분이 계신 곳이었다. 그분을 알게 된 지는 2년이 넘었으나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라 매니저에게 하루 먼저 일요일에 날아가서 월요일을 그 아저씨와 트레이닝하고 프로젝트 캐치업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주말에 가는 거 괜찮은 거 확실해? 했지만 너만 괜찮다면 오케이라며. 그래서 그분을 만나 아주 생산적인 월요일을 보내고 감사하게도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시고는 저녁 식당 옵션을 몇 개 주셨는데, 아시안 음식에 미친 내가 초밥집은 어때요? 해서 초밥집에 가기로 했다. 사실 초밥보다 아저씨가 가자고 했던 스테이크집이 더 비싼 것 같아서 저녁에 밥 먹으려고 만나서 아저씨가 가자고 한 거기 가는 게 어때요? 했더니 자기 P2가 생선을 먹지 못한다며 아무 때나 기회가 오는 것이 아니니 초밥집을 가자고 하셨다. ㅋㅋㅋ
본인은 이 로케이션에 10년쯤 몸 담으면서 이태리만 7번을 갔다며, 전 세계를 서포트하는 R&D 센터라 다음 달에는 브라질 출장이라나. 동남아 쪽도 자주 다니시는 듯했다. 예전에 시카고에서 한번 만났던 그분의 매니저도 운 좋게 마주쳤는데 R&D 센터에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라며, 아님 permanently 와도 된다고 하시며 팀 전체 사람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도 마련해 주셨다. 어린애들(?)이 오고 싶어 할 지역은 아니어서 그런지 사람들을 유치하는데 혈안인 듯하다. 이유 없는 호의는 없는 거겠지. 속이 시커먼 여우들같으니.
맛있는 밥을 실컷 먹었으니 눈 호강을 시켜줄 차례다. 좀 더 적절한 시간의 비행기가 있었으면 더 빨리 집에 돌아갔겠지만 시애틀로 가는 직항은 오전 7시 30분, 오후 6시 30분밖에 없어서 일정이 끝난 다음날 오후 비행기로 여유롭게 돌아가기로 했다. 일정이 빡빡한 데다 시차도 3시간이나 나서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게 몹시 괴로웠는데 목요일쯤 되니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다. 그래서 떠나는 날 레잇 체크아웃을 했는데도 못 잔 잠을 몰아 자느라 체크아웃 시간에 겨우 간당간당 맞춰 나왔다. 잠은 역시 보약이라 컨디션이 한결 나았다. 그리고 숙제같이 짬뽕을 먹고 (시애틀보다 훨씬 맛있었다. 탕수육도 있었는데 도대체 왜 치킨을 시켰는지 의문이지만) 콜럼버스 미술관으로 향한다.
What a pleasant surprise. 대부분 미국 작가들의 그림과 사진으로 꽉 찬 미술관의 가장 깊숙한 방 한 칸에 모네의 작품 몇 개가 있었다. 차갑지 않고 시원한, 뜨겁지 않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그의 작품은 마음을 살랑살랑하게 한다. 모네의 방을 찾고 나서는 더 이상 미술관을 돌아다니지 않고 모네의 방에만 앉아있다 왔다. 집이 생기는 날엔 모네 그림 하나정도는 아마존에서 사서 하얀 벽에 걸어둘 거다. 그동안 모네의 그림들을 많이 보고 제일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봐야겠다.
16세기에서 19세기의 유럽의 그림은 세 가지 P로 설명이 된다: Power(권력), Piety(신앙), Prestige(특권)
첫째로는 Power를 가지고 있는 대상들이 그림들을 주로 의뢰했을테니 그들이 중요하다고 여긴 종교적, 사회적 가치가 반영되어 그려졌다. 가톨릭교단과 지배 계층인 왕, 왕비, 귀족, 교역으로 부를 쌓은 상인 등.
둘째로는 Piety의 대상들을 그렸다: 주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의 스토리. 대표적으로 예수와 그의 아홉 제자들, 마리아 같은 인물들이 있겠다.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겠다.
마지막은 Prestige로 예술은 럭셔리로, 계층, 권력, 부를 과시하는 목적을 가진다. 그림을 의뢰한 사람이나 그린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 취향을 가졌는지 표현하기 위해 값비싼 보석, 당시 구하기 힘들었을 귀한 과일이나 꽃들, 실크나 동물의 털 등이 그림에 등장한다.
종교는 없지만 예수님의 삶이 그려진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온갖 금붙이는 다 갖다 붙여서 액자를 장식하고 그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제로 그렇게 많은 경이로운 작품들을 창조해냈을까 싶다. 저렇게 예쁜 그림 (+입이 떡 벌어지는 성당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분명히 크리스챤이었을 것이다.
만족할 만큼 미술관을 둘러보고 다음번 오하이오를 기약하며 공항으로 향한다. 왠지 오하이오에는 곧 다시 올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살고 싶은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오와나 사우스 캐롤라이나보다는 좋았던 것 같다. 일단 이름이 더 예쁘잖아?
혁오 - 오하이오
https://www.youtube.com/watch?v=7tyEDx9tgBk&ab_channel=E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