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인학센, 슈니쩰, 소세지와 맥주
레겐스부르크 호텔에 체크인을 하면서 귀여운 카운터 오빠야(나보다 한참 어려 보였음)에게 식당 추천을 부탁했는데 참미각의 소유자였는지 그가 추천해 준 메뉴는 모두 성공적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생 애머랑 수도원과 돔 생 피터 등 체력 닿는 데까지 성당 투어를 하고 슈퍼마켓에서 양손 가득 도넛 복숭아와 체리를 사들고 집에 들어오는 길 마지막 목적지로 오빠야가 추천해 준 슈닛쩰 집으로 향했다 (도넛복숭아는 충격적으로 맛있었다)
키가 큰 우거진 나무들과 자그마한 인공 연못이 있는비어가든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첫끼라 그랬는지 밀맥주는 환상적이었고 평소면 먹지 못했을 맥주의
양을 들이켰다. 알딸딸하니 독일에 있다는 황홀함과 동시에 사무치는 외로움이 몰려왔다. 아무 커뮤니티 베이스가 없는 동네에 식당 전체에 동양인이 나하나뿐인 이질감이라니. 식당에 혼자 앉아먹는 사람도 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슈닛쩰은 간이 삼삼했는데 하나 먹어보고 싶어서 시켰던 스팻쯜레(달걀 파스타면)의 양송이 크림소스에 찍어먹으니 간이 맞았다. 궁금했던 스팻츨레는 아주 기본적인 구성이지만 기본에 충실한 맛이었다. 슈닛쩰은 고기와 튀김옷이 따로 놀았다. 고기와 튀김옷이 두 몸인 돈가스를 먹을 때면 꼭 한 마디를 해야하는 파트너가 생각났다. 한국 돈가스 장인이 와서 이 동네서 돈까스 장사하면 대박 날 듯.
스톤 브리지를 건너 있는 스피탈 가든에 슈바인스학세를 먹으러 갔다. 이 집도 호텔 카운터 오빠야가 학세를 추천한 곳. 이 식당에 가는 길에 뷰가 더 좋아서 투어리스트 트랩인 곳이 있댔는데 음식은 별로라고 가지 말라고 했다. 이 비어가든도 나무가 우거지고 도나우 강변에 있어서 분위기도 좋은 데다 자리를 잘 잡으면 성 베드로 성당 부분 뷰도 가능하다.
100ml씩 맥주 네 종을 주는 샘플러가 있다길래 딱 내 사이즈다 싶어 시켰다. 라거랑 밀맥주는 맛있었지만 흑맥주와 오늘의 맥주는 도무지 내 취향이 아니라 두세 모금을 마시고는 넘기기가 힘들었다. 그냥 풀사이즈 밀맥주를 시킬 걸 약간 후회했다. 이 집은 학세랑 크노들이라 하는 쫀득쫀득 감자만두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크노델 위에 바삭바삭한 식감의 무언가가 한층 맛을 더해주길래 뭐냐고 물어봤더니 오트빵 부스러기를 갈아서 구운 가루라고 했다. 여기 크노델은 리젠스버그 생각하면 생각날 듯.
양식을 연타로 먹고 이틀 만에 쥐쥐를 치고 말았다. 국밥이 간절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을 보기도 힘든 이 동네에는 한국 식당이 없었다. 차선책으로 미스 홍이라는 아시안 음식점을 가기로 했다. 연어 덮밥을 시켰는데 끔찍한 대혼종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밥보다 소스가 더 많았던 듯. 소스를 따로 달라했으면 좀 나았으려나. 미소국은 표고버섯으로 육수를 내긴 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름이 둥둥. 녹차가 제일 맛있었다. 여긴 출입 금지 밥 다 먹고 피곤해 죽겠는데 현금만 받는데서 운전면허 맡겨놓고 은행 가서 돈을 찾아와야했다.
소스 범벅 연어덮밥으로는 도저히 위로가 되지 않아 아시안 음식을 계속 찾아 헤매다가 사진이 괜찮아 보이는 베트남 음식점을 발견했다. 한식을 찾을 수 없고 속을 달래야 할 땐 뽀만 한 게 없다. 옆 테이블의 서양인들은 모두 볶은 우동에 치킨 튀김이 올려진 디쉬를 먹고 있었다. 맛있어 보이긴 했지만 국물을 먹어야 했다. 미국 쌀국수 맛에 길들여져서인지 몰라도 쌀국수가 약간 심심하게 느껴졌지만 간이 부족하진 않았다. 다시 기본에 충실한, 속이 풀리는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쌀국수와 에그롤을 먹고 나니 다시 양식을 먹을 준비가 되었다.
독일에 온 지 4일 차, 드디어 소세지를 먹을 결심을 했다. 1302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700년이 넘은 레겐스버그의 아이코닉한 소세지 집이다. 몇 주 전 다른 팀이 독일 출장 나왔을 때만 해도 도나우 강에 홍수가 나서 닫아있었다고 했는데 다행히 정상 영업을 하고 있었다. 메뉴에 어느 각에 어느 두께로 썰었는지 모르겠는 삼겹살 요리가 있어서 그걸 시키고 소세지는 사이드로 추가하려고 했는데 이 날 따라 똑 떨어졌단다. 어쩔 수 없이 소세지만 시켰다. 관광객으로서 여기를 안들를 수는 없어서 들렀는데 소세지는 생각보다 작았고, 소세지는 소세지 맛이었다. 그래도 짜지 않아서 좋았다. 사워크라스트는 오히려 괜찮았고 감자샐러드는 너무 맛이 없어서 손이 가지를 않았다. 뉘른베르크의 소세지들이 유난히 맛있다고 하는데 기대해 본다.
도나우 강변에 앉아 이런 생각에 닿았다. 옷은 입기만 할 수 있으면 되고, 밥은 맛이 어떠하던 입에 넣어 배를 채울 수만 있으면 되고, 차나 건물은 안전하고 튼튼하고 오래가면 된다는 것이 이 나라의 기본 철학인 것일까. 좋은 말로 하면 기본에 충실한데, 맛과 멋이 강점인 것 같진 않다. 도시는커녕 나라를 5일 만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화려하고 미적인 것에 목숨을 거는 옆 나라와 비교해서 이 나라의 심플함, 투더 포인트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크나이팅어를 생각하면 분해서 부글부글하다. 그 전날 소세지도 먹었겠다, 리겐스버그에서 학센도 먹었겠다, 레겐스부르크 일정을 마무리하며 회식을 갔는데 학센을 추천하는 영업맨을 무시하고 줏대 있게 소 뽈살을 부드럽게 요리한 메뉴를 시켰다. 슈바인 학세가 다 거기서 거기지 싶어서. 그랬는데 웬걸 얼굴만 한 학세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비쥬얼의 쇼크였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지 쓸데없는 줏대는 있어가지고… 후회 없는 인생이 없듯 후회 없는 여행은 가능하지 않은 건가. 늘 맞은 결정만 할 수는 없는 걸까. 학세때문에. 소 뽈살이 맛이 없었다기보다 어느 독일의 음식처럼 평범했고 크나이팅어는 그냥 학세를 먹는 집이다. 크노들은 스피탈가든이 더 맛있었는데 크나이팅어 학세 비쥬얼이 압도적이다. 엄마가 레겐스부르크 가자고 하면 여기 찾아와서 학세를 먹고 말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