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일정에 껴있는 소중한 주말 이틀. 하루는 엄마가 꼭 가고 싶었던 인스브루크를 갔으니 일요일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기로 했다. 다음 날 일을 하러 가야 하니 체력 관리도 하고 쉴 겸, 바드 아이블링 숙소에서 가까운 킴제 구경하고 매드킹 루드비히 2세가 짓다가 미완으로 남겨놓은 헤렌 킴제에 갈까 했었는데 미시간 팀 사람들에게 주말에 뭐 할 거야, 하니 독일 방문 때마다 찾아가려고 했었는데 기회가 없었다는 Eagle’s Nest가 있는 비르히테스가덴 (영어로는 버체스가든에 가깝게 발음)을 간다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도시였다. 들어봤더니 Eagle's Nest, 독수리 요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에 있는 히틀러의 비서가 히틀러에게 선물한 여름 별장을 칭하는 말인데 막상 히틀러는 10번도 채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Khelsteinhaus 켈슈타인하우스라고 부른다. 전 날 인스브루크를 여행하며 오스트리아 아우토반 10일권도 사놨겠다, 꼭 사야 한다, 안 샀다가 걸리면 벌금 100배 우리는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은 채 구글맵에 Khelsteinhaus를 찍고 비르히테스가덴으로 향했다.
바드 아이블링에서 베르히테스가덴까지는 여러 도시를 지나가지만 병풍같이 아름다운 운테스버그 산과 빙하물이 녹아내려 만든 에메랄드 시냇물이 흐르는 작은 도시 고르딕은 그냥 지나치기가 너무 힘들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멈췄다 갔다. 달리는 차 안에서 포착한 엄마의 작품.
아우토반을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독수리 요새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를 세워두고 독수리 요새에 올라가는 티켓을 사면 빨간 버스에 올라타야 하는데 그 버스부터 켈슈타인하우스로 올라가는 풍경은 정말 장관이다. 버스에서 내리면 축축하고 어두운 동굴을 지나, 히틀러가 탔을 것만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그야말로 하늘 위에 떠서 사는 신선들이 보고 살 것 같은 그런 풍경이 펼쳐진다. 히틀러의 여름 별장은 입이 떡 벌어지는 대자연 그 자체로 겹겹이 쌓인 산 골짜기에 퀘닉제가 살포시 묻혀있는 경이로운 풍경에, 아래로는 귀여운 베르히테스가덴 마을이 보인다. 히틀러는 참 좋았겠다 싶었다. 역시 권력을 가져야 해 나 같으면 여름이면 이 별장에 올라와 겨울이 올 때까지 머물고 싶을 것 같은데 겨울에 그곳에 머무는 것이 안전하기만 하다면 하얗게 눈 덮인 풍경이 저세상 풍경이겠지 그는 휴가 말고도 할게 많았는지 이곳에 열 번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뒤쪽으로는 하이킹 코스도 연결되는데 다음에 알프스 여행을 온다면 그땐 꼭 등산 여행을 오고 싶다. 현재 별장은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침 일찍 올라간 덕에 경치를 볼 수 있었던 것이 운이 좋았다. 내려올 때가 되니 안개와 구름으로 산이 뒤덮여 와이트 아웃이 되어버렸다.
켈슈타인하우스에서 내려와서 비르히테스가덴에서 밥도 먹을 겸, 중심가 구경도 할 겸하고 마을로 내려왔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추천받은 식당을 갔는데 사람 머리만 한 학세는 이번 여행 중 먹은 학세 중에 제일 맛있었고 28유로로 제일 저렴했다. 엄마도 맛있다면서 둘이 학세 하나를 모조리 끝냈다 이로서 레겐스부르크에서 못 먹은 통짜 학세의 한이 풀렸음. 함께 나온 와사비 맛이 나는 양배추채도, 치킨 무 맛이 나는 양배추 채도 심심하니 한국인 입맛에 딱 맞아서 정말 맛있는 식사를 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비어가든 분위기도 너무 좋았던 데다가, 바바리아의 쿵짝쿵짝 전통 음악(?) 라이브 연주 (트럼본, 아코디언, 뭐 이런 거였는데)까지 하고 있어서 기억에 남도록 즐거운 식사였다. 누가 라들러를 먹어보랬던게 생각나서 여기서 먹었는데 (여기 라들러는 레모네이드가 아닌 스프라이트 라들러였다) 그냥 밀맥주를 마실 걸 하고 후회했다. 학세 같은 요리에는 그냥 맥주를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게 더욱 맛있는 듯.
베르히테스가덴 마을 플라자 구경.
핑크 궁전 옆 궁전에 세인트 피터와 요하네스의 교회. 여기도 내부가 하얀, 별 장식이나 군더더기가 없는 아주 심플한 형태의 성당들이 보인다.
핑크 외벽의 세인트 안드레아스 교회.
제단이 특이하게 생겼던 Franziskanerkloster. 많은 교회/수도원들을 다녀봤지만 처음 보는 스타일의 수도원이었다. 센터에 청중과 제일 가까운 거리에 십자가 예수님이 있고 양 옆 뒤로 두 재단이 더 있다. 다른 곳과 다르게 이 재단에는 올라갈 수가 있었는데 그 뒤로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어 들어가면 성모 마리아가 모셔져 있는 작은 채플이 있던 특이한 구조였다.
언덕 위에 있는 Kalvarienberg 채플이나 Kirchleitn 채플에 갔으면 더 멋진 베르히테스가덴의 전경을 구경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원래는 주말에 킴제를 갈 예정이었으니 대신 베르히테스가덴에 왔으니 근처에 있는 퀘닉제로 호수 구경을 대신하기로 했다. 겹겹이 산에 묻혀있는 퀘닉제는 광활했고 알프스 호수에서 수영하기가 버킷리스트였던 나는 퀘닉제에 몸을 던졌다. 등산의 매력도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빙하 호수에서의 수영은 진정 내가 자연과 하나임을 느끼게 해 준다. 산으로 둘러싸인 차가운 온도의 호수에서의 수영은 설명하기 힘든 해방감을 선물한다. 퀘닉제에서 수영하던 그날 동영상에 담겨있는 나는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날이 더워서 그랬는지 물도 물론 추웠지만 수영하기에 고통스러운 차가움은 아니었다.
오는 길에 기름이 간당간당해서 오던 길을 7킬로쯤 돌아가 다시 돌아가 주유를 해야 했던 것이 이 날의 유일한 헛짓이었는데 그렇게 약간의 시간 낭비를 하고 바드 아이블링으로 들어서는데 너무나 선명한 쌍 무지개가 떠있었다. 이렇게 두껍고 선명한 무지개는 처음 봤다. 완벽한 하루였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은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가득하게 좋았는데 특히 베르히테스가덴 하고 할슈타트가 쌍두마차로 좋았던 것 같다. 산을 사랑하고 호수를 사랑하는 사람임을, 로키가 흐르는 워싱턴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대자연이 주는 감동은,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뒤에 쌓아둔 등산 브런치가 한가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