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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 프리몬트, 촌동네 출장기

by 마그리뜨



독일 여행을 가게 해 줬던 그 프로젝트가 드디어 미시간의 소도시에서 시작되었다. 회사 사무실이 프리몬트라고 하는 중서부의 전형적인 시골에 있어서 프리몬트에 출장을 올 때면 늘 그랜드래피즈에서 편도 1시간을 운전해서 출퇴근을 하는 방법을 택해왔었다 (이런 곳을 우리는 Out of Nowhere이라고 부른다).


그랜드 래피즈를 택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 촌동네에 음식 옵션이 너무 슬펐고 (회사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출장의 즐거움 중 하나인데, 프리몬트에는 아시안 음식점 없음) + 도시가 작아서 호텔이 딱 하나가 있는데, 공장 옆에 있는 이 호텔은 힐튼 계열이 아니라 호텔 포인트도 쌓을 수 없었던 점이었다. 물론 일을 하러 가는 거지만 개인적인 이득도 없고 재미도 없는 출장이 되는 게 슬펐던 것 같다.


과거에 프리몬트로 왔던 출장은 생산라인 스타트업을 계획하는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보내는 워크샵에 가까웠다. 시애틀에서 친한 동료들이 번갈아가며 동행을 했기 때문에 교대로 운전을 하면 되니 장거리 운전도 덜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듯도 하다. 하지만 직항도 없는 비행기를 7시간쯤 타고 와서 시차가 3시간이나 되는 곳에서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출근을 하다 보니 눈을 뜬 건지 감은건지 비몽사몽 출퇴근을 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다가 일주일이 끝나곤 했다. 프리몬트 출장만 다녀오면 생명이 몇 달치씩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출장은 여태까지 계획만 해오던 생산 라인을 스타트업하는 것이 목적이라, 회사에 아침 일찍 나가야 해서 회사에서 1마일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프리몬트에 단 하나 있는 호텔에 머무르기로 했다. 다른 때와 다르게 시애틀 사무실에서 혼자 출장을 가는 출장이었지만 오하이오에서 업무 멘토를 해주시는 분과 미시간에서 접선을 했다. 그리고 이전 출장과는 다르게 결정적으로 미시간의 날씨가 좋았다.



그러다 보니 존과 하루 종일 붙어서 일을 같이 하고 이틀 내내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었는데 촌동네라 할 것이 없다 보니 이 동네에는 뭐가 맛있나, 뭘 할 게 있나, 찾아보는 것이 일이었다. 그리고 하필 지난주에 시애틀에서 굿바이를 한 나의 데스크 메이트가 이번 주 프리몬트 오피스로 전근을 오게 되면서 그녀의 새로운 팀에서 웰컴 해피아우어를 한다고 해서 조인했다. 탑골프 같은, 그렇지만 탑골프보다 나이스한 드라이빙 레인지에 공을 치는 그런 곳이었다. 미시간에는 호수가 그렇게 많다고 하더니 평화로운 호수 옆에 있는 골프 코스 옆에 붙어있는 드라이빙 레인지였다.


날씨 좋을 때면 미시간에서는 이렇게 살겠구나, 싶었다. (대도시는 또 다르겠지만) 딱히 뭘 할 건 없고, 호수가의 골프 코스에서 골프를 치는 삶. 모두가 공을 치고 나서 존과 나는 남아서 그곳에서 저녁까지 해결했는데, 그는 휴가를 갔다고 하면 하루를 이렇게 보낸다고 했다. 하루 종일 골프 치고, 밥 먹고 술 마시고. 심지어 아저씨는 오하이오에서 클럽을 들고 오기까지 했다.


골프에 부적절한 복장으로 아주 좋은 예


골프를 칠 줄도 모르지만, 하루는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신나게 공을 치고, 그다음 날엔 존과 3파, 9홀을 2시간 동안 돌았다. 재미가 첫 번째 이유고, 시간 투자를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도 같고, 회사 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 같으니 꼭 골프를 배워야겠다,라는 다짐이 들면서도 골프가 불륜의 성지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데다, 지극히 개인적이다.

맛있는 저녁들을 포기한 대신, 아침과 저녁이 훨씬 여유로운 일주일이었다. 의식주의 식과 주중의 우선순위를 다르게 두었을 때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확연하게 경험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때의 날씨의 영향은 절대적이라는 것도.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의 진리 안에서 무엇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하는지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하는 출장이었다. 근데 문제는 이 출장이 앞으로 한 달 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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