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딥 사우스, 이렇게 비슷하고 이렇게 다르다.
일상에서 여행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며 사는 나로선 비록 일을 하러 가야 해서 타는 비행기지만 어쨌거나 비행기를 타는 일은 늘 즐겁다.
어쩌다 보니 미국 50개 주에서 아직 발을 들여보지 못한 테네시에 오게 되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주에 회사 돈으로 가고 싶다는 약간의 흑심과 일을 벌일 수 있는 기회가 기가 막히게 만났다. 테네시의 주도는 내쉬빌, 제2광역권 도시는 멤피스다. 멤피스는 다운타운 옆으로 미시시피 강이 흐르고 알칸사 주, 미시시피 주, 테네시가 만나는, 지정학적으로 교통의 요새이다. 그래서 이 곳은 페덱스의 본사가 위치한다. 멤피스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으로 락앤롤을 탄생케 하였고 이는 흑인들의 영혼의 음악인 재즈, 블루스와 함께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음악 장르가 되었다.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바라본 멤피스는 “깡촌”외에는 설명할 단어가 없을 것 같았다. 아주 작은 규모의 다운타운, 아름답지 못한 미시시피 강, 그리고 푸른 벌판에 띄엄띄엄 있는 가정집들. 촌이라고 놀림받는 텍사스에서 살고 있는 나도 이 동네 사람들만큼은 촌놈이라고 놀려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나는 이곳에 절대 살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 남부는 남북전쟁의 가장 큰 표면상의 이유였던 노예제의 탓으로 흑인 인구가 비율이 크고 그들이 즐기는 튀긴 음식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그 시절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이 먹고 남은 닭의 지방진 부위들(dark meat이라고 일컫는 다리, 허벅지 등)을 튀겨 먹기 시작한 것이 흑인들의 소울 푸드, 후라이드 치킨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오크라 같은 야채도 튀기고 민물고기인 메기도 튀기고 오레오도 튀긴다. 심지어 텍사스 스테이트 페어에서는 콜라도 튀기고 아이스크림도 튀긴다. 레이징 케인스와 같이 텐더(치킨 핑거 - 지방질이 적어 가슴과 함께 white meat으로 분류) 튀김을 주로 파는 치킨 가게는 주로 백인들이 고객으로 흑인을 별로 찾아볼 수 없는 것도 맥락을 같이한다. 특히 멤피스는 흑인이 인구 비율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식문화 위주(캐이준 스타일이라던가, 튀김이라던가) 상권이 이뤄져가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물론 의자나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는 말이 있듯 튀김은 맛이 좋지만 건강을 생각하면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라 멤피스의 음식은 다른 도시에 비해 다양성이 떨어지고 가짓 수가 좀 제한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 멤피스에서 뭘 해야 할까. 출장 전 물어본 모든 이는 Beale’s street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락앤롤, 블루스의 라이브 퍼포먼스가 펼쳐진다는 그 거리. 생각했다. 나는 락앤롤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 그렇다고 비행기로 두 시간 씩이나 날아와서 호텔에만 비비고 있을 수 없었다. 첫날 일정을 마친 후 같이 출장을 간 검은 아저씨와 나는 빌스 거리로 향했다. 어느 카페에서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왔고 발걸음은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Blues city cafe. 락앤롤, 컨트리 뮤직, 올드스쿨 708090에 지식이 전무한 나는 단 하나의 아는 노래만을 들을 수 있었다(pretty woman~ walking down the street~). 하지만 어떤 장르의 노래이던지간에 라이브로 듣는 퍼포먼스는 감동적이고 멋진 것이었다. 음악은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도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멋진 매개체이다. 컨트리면 컨트리대로 락앤롤이면 락앤롤대로 필 충만한 연주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기분 좋은 밤이었다.
다음 날은 비가 꽤 많이 쏟아졌다. 동행과는 같은 일정으로 같은 차로 움직였는데 아저씨가 우산을 들고 오지 않았다. 비가 많이 오는데 차마 나만 우산을 쓰겠다고 할 수가 없어서 차에서 실내로 이동하는 동안 같이 우산을 쓰자고 제안했다. 친한 아저씨였지만 같이 우산을 쓰고 가는 그 짧은 시간, 아저씨의 어깨동무로 마음이 불편했다. 우산만 같이 쓰면 되지 어깨동무를 할 필요는 없는데. 아무리 내가 친하고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도 이런 식의 스킨십은 불편하다. 그래서 마지막 날 밤은 나 혼자 나가서 놀기로 결심했다.
잊지 말았어야 했다. 멤피스에 가면 꼭 돼지고기 바베큐를 먹어야 한다는 직장 동료의 말을. 원래 돼지고기 바베큐를 좋아하지 않아 내 취향대로 소고기 양지 바베큐를 시켰지만 음식은 처참했다. 사이드로 시킨 그린빈도 너무 오래 끓였는지 흐물흐물했고 콜슬로도 도무지 간이 된 건지 알 수 없는 맛이었다. 제일 맛있던 건 스윗티였다. 역시 남부다.
기분도 꿀꿀하고 비도 오고 과연 20분이나 운전해서 빌 스트릿을 갈까 고민이 약간 되었지만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멤피스를 올까 싶어서 다운타운으로 향한다.
B.B. King’s blues club. 멤피스의 라이브 카페를 딱 한 군데 갈 수 있으면 들러보기를 추천하는 곳이다. 전날 갔던 바 보다 규모도 훨씬 큰 대신 입장료가 있었다. 전날 갔던 곳의 공연이 좀 더 락앤롤, 컨트리에 가까웠다면 이 곳에서의 그날 공연은 블루스에 좀 더 가까웠고 메인 보컬이 노래를 끝내주게 잘했다. 무대 밑에는 댄스 플로어가 있었고 썸 타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데이트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밴드가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을 연주할 땐 그야말로 광란의 댄스 플로어였다.
미국의 남부로 결을 같이하지만 텍사스와 테네시는 비교 자체가 불가하게 여러 면에서 텍사스가 월등하다. 텍사스는 일단 미국 본토(lower 48) 주 중에서 크기가 가장 크고 아름다우며 석유와 천연가스가 펑펑 나서 돈도 많다. 이 때문에 석유 기반 산업이 탄탄하고 이로 인해 다양한 산업들이 굴러간다. 도시도 훨씬 도시답고 인구 구성도 다양해서 그 결과 다채로운 음식을 접할 수 있다(물론 텍사스의 깡촌 또한... 할많하않).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 바베큐도 훨씬 잘한다. 가난한 대학생 시절이라 자주 다니지는 못했지만 오스틴은 live music capital of the world으로 일컫어지는 것으로 훌륭한 라이브 공연이 사시사철 연주되고 있는 곳이다.
미국의 남부에는 “southern hospitality”라는 말이 있다. 남부 사람들은 친절하다는 소리다. 테네시가 정말 그랬다. 텍사스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줄 알았지만 테네시는 더 촌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정말 상냥했다. 그 와중에도 유명하다는 도넛을 사러 들어가는 가게에서 나를 동물원의 동물 보듯 쳐다봤던 백인들도 있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겠는 멤피스는 친절했다. 멤피스 다운타운 B.B. King’s Blues Club에서 블루문 생맥주를 걸치던 그날 밤이 가끔씩은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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