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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그리뜨 Nov 13. 2020

배틀넷 2700승 1900패의 스타크래프트 하는 여자

래더 게임 아님 주의, U.S West 채널 기준 주의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시작한 건 초등학생 때였다. 그때도 여자애가 스타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기는 했다. 아빠가 사무실을 가지게 된 건 2001년쯤이었는데 가끔 주말이면 아빠는 나와 동생을 사무실에 데리고 가서 셋이 1:1:1을 했다(이것은 엄마의 복장을 터지게 하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엄마의 휴식시간이었을까). 나에게 게임이라는 것은 일상의 한 부분이었지만 "여자애들"사이에서 하는 흔한 오락 활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걸스카우트 배 스타크래프트 대회였다.


그렇다, 나는 초등학교 때 걸스카우트였다. 그리고 종종 체크해보던 한국 걸스카우트인지 서울 걸스카우트였는지 지부에 공지가 떴다. 안국역 근처에서 걸스카우트 배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있을 예정. 보자마자 신청을 했다. 그리고 대회 당일, 신청을 해서 온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에는 여자애들이 아주 많았는데 동네 초등학교에서 인원수를 채우고자 무작위로 데리고 왔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우승을 했다. 미네랄이 뭔지도 모르고 가스 위에 뭘 지어야 될지도 모르는 애들이 아빠와 동생과의 게임으로 다져진 나를 이길 수 없었다.


우승 상품은 다리미였다. 다리미는 무슨 의미인가. 생각해보면 왠지 모를 성의 없고 성차별적인 선물에 기분이 영 좋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다리미는 다리미가 필요했던 이모집으로 갔다. 아직도 이모집에 그 다리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아빠랑 스타크래프트 때문에 이혼을 할 뻔했었다고도 했었다. 안방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가 자는 동안 아빠는 많은 밤을 안방에 있는 뚱뚱한 모니터를 켜서 스타크래프트를 했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가 싸웠던 날이었나, 엄마가 약속이 있었던 날이었던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빠가 집을 나가서는 한참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닌가 엄마와 나는 몹시 걱정을 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연락이 된 아빠는 PC방에서 신나게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날 엄마는 완전 열이 받았다. 




대학 때 본격적으로 다시 스타를 시작했다. 그 당시 남자 친구는 스타를 좀 한다고 자부심이 있는 한국 남자였다. 실제로도 그러해서 나에게 심시티를 가르치며 나의 실력을 한 레벨을 올려놓았다. 파일런은 어디다 지어야 되고 성큰은 이렇게 지어야 쳐들어왔을 때 막기가 좋고... 공부를 하기 위해 내 집 테이블에 앉아서는 우리는 랩탑을 두대 꺼내놓고 와이파이로 스타를 했다. 그렇게 스타로 지새운 밤이 한 두 밤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학교에 내가 스타를 좀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스타에 이상한 자존심이 있는 한국 남자애들이 나에게 대결?을 신청하기 시작했다. 항상 이겼겠었냐마는, 나는 이긴 기억밖에 남아있지가 않다. 이런 걸 정신 승리라고 하는 거겠지? ㅋㅋㅋ


자본주의의 맵, 빅헌터 3v3, 내 본진을 보니... 러커 운영을 하고 있었나?


그러다 황당한 일이 하나 있었다. 우리 학교로 편입하기 전, 지나가는 나를 보고 아는 오빠에게 나랑 소개팅을 시켜 달라던 8살이 많은 오빠야가 있었다.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미친놈 인척 하는 스타일(진짜 또라이였을라나)이었는데 파티에서 만나 자연스레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그 오빠 친구 집에 모여서 놀게 되었는데 이야기가 스타로 흘러갔고 게임판이 벌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그 사람은 초보였는데 8살 많은 형에게 면전에다 대고 님 못해요 할 수 없으니 그냥 조용히 몇 판을 이겼다. 그땐 그분도 별 말이 없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페이스북을 찾아보니 친구가 끊겨있었다. 나한테 게임을 진 게 그렇게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할 일이었을까? 게임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으면서. ㅋㅋㅋㅋ 그때는 속이 좁은 못난 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났고 장가가서 잘 살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됐다.


텍사스로 이사를 와서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버전이 나와 구매를 했다. 회사 일은 많지도 않고 친구도 없고 남는 건 시간이다 보니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가지고 있던 랩탑에서 게임이 돌아가지가 않아서 순전히 스타를 하기 위해 랩탑을 새로 샀다.


세컨드 모니터 없이 재택근무가 너무 힘들길래 회사에 결재를 올려 세컨드 모니터를 집에 들고 왔는데 이 모니터는 결국 나의 스타 사랑에 불을 활활 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큰 화면으로 하는 게임이 이렇게 쾌적한 거였다니... 왜 게이머들이 번쩍번쩍 불 들어오는 게임용 키보드니 마우스니에 열광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2년을 게임을 열심히 했더니 메인 아이디가 2700승 1900패의 전적을 갖게 되었고 그 전적을 갖기까지 나는 1000시간 넘게 게임을 했다고 한다. 굉장한 시간 낭비다. 그리고 1000시간을 게임을 하니 현실보다 스타판에 친구가 더 많은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카톡 친구 리스트에 192명, 스타 친구 리스트에 98명. 정기적으로 채팅을 하는 친구는 스타에 훨씬 더 많다. 


현실은 친구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사회 어디를 가도 사람이 모이면 내 편이 생기기 마련이고 적이 생기기 마련이다. 동시 접속을 하면 항상 같이 게임을 하는 평화로운 친구들이 있냐 하면 니는 허접이네, 내 전적이 무서워서 도망가냐, 너네 엄마를 내가 어찌하겠네, 이런 욕설도 오고 간다. 그리고 많은 확률의 그 욕의 끝은 엄마에 대한 공격이다. 도대체 엄마가 뭔 죄? 이 큰 미국 땅에서 현피를 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헤이, 브로"가 기본 인사인 곳에서 매번 아니, 나는 브로 아니야, 나는 걸이야, 할 수도 없어서 답답할 때가 있다. 그러다 몇몇 친구들에게 성별 커밍아웃을 하면 믿어주는 친구들이 반, 쟤는 미친놈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게 반 정도 되는 것 같다. 드래그 퀸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는데 그 어떤 누군가는 나보고 드래그 퀸이냐고 물었다. 도대체 왜...? 게임이란 한 성별에 굉장히 치우친 오락 장르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도 간간히 봤지만 더 이상 실력이 느는 것 같지 않은 슬럼프기가 와서 예전 스타리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확장과 멀티태스크들의 천재들이다. 한 게임 한 게임마다 감동이 있고 스토리가 있다. 정말이지 스타는 구성에 있어서 완벽함에 가까운 게임이며 그중 최고, 코리안 게이머들에 대한 찬양을 아끼지 않겠다. 승부조작에 휘말리기 전 마본좌, 리콜 오는 아비터를 락다운으로 막는 임요환의 고스트, 누구와 게임을 하든 간에 이상하게 응원하게 되는 저그 유저들, 특히 폭군 이제동, 프로토스의 유저라면 빼놓을 수 없는 택신, 송병구, 가을의 전설 오영종까지. 무언가가 불안해 보이는 천재 이윤열과 이영호는 너무 사기캐라 그렇다 치고... 그들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나는 장기 운영 게임에 너무 약한 것 같다. 특히 저그... 이상하게 "약한" 종족이라고 인식이 되어서 그런지 저그는 늘 응원 중이다. 


※ 제 배틀넷 U.S. West 서버 메인 아이디는 AMZN (2693승 1945패), 세컨드는 Magritte(426승 212패)입니다. 저는 주로 빅헌터나 헌터 3v3을 합니다. 혹시 브런치에서 보고 서버에서 마주치면 아는 척해주세요! 이 글은 구글코리아에 계신 피츠버그 출신 cetl716님, Washington D.C. 에서 호텔 매니지먼트를 하고 계신 Faith님, 대학 시절 밤을 새우며 심시티를 가르쳐주셨던 전 남친님에게 바칩니다. 아, 이 글에 영감을 준 장범준 님의 실버 판테온에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스타크래프트하는여자 #스타크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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