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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그리뜨 Feb 14. 2021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타인의 해석 - 말콤 글레드웰

말콤 글레드웰의 전작 아웃라이어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올라와있던 그의 최신작 "타인의 해석"(영문: Talking to strangers)을 읽어봤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타인을 해석함에 있어서 두 가지를 가정한다고 한다. 

1. 그들은 진실하다 (default to truth)

2. 그들은 겉과 속이 같다, 솔직하다, 혹은 투명하다 (transparency)


우리는 그들이 기본적으로 진실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아주 크고 확실한 의심점이 생기기 전 까지는 그들을 믿는다. 그들이 짓는 표정, 그들의 행동, 그들의 언어는 곧 그들의 감정과 일치할 것이라고 믿고, 별 다른 의심점이 찾아지지 않는 이상 우리는 별 이상 없이 그들이 말하는 것을 믿는다. 우리의 이런 점은 우리의 조상과 우리가 사회적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가 만나는 타인을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면 우리의 지금 이 사회는 존재하기가 어렵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의 영국의 수상이었던 네빌 챔벌레인은 어느 날 영국의 캐비닛을 모아놓고 선언을 한다. 본인이 직접 히틀러를 만나 나치 독일의 전쟁을 만류해보겠노라고. 그는 히틀러를 만나 대화를 시도했던 몇 안 되는 유럽의 리더로 회자된다. 실제로 히틀러를 몇 차례에 걸쳐 만나고 히틀러의 "눈을 보고" 이야기를 하고는 그는 확신에 찼다. 히틀러는 그의 목표가 목표는 체코 슬라비아라고 했고, 그래서 그는 히틀러와 협상을 하기에 이른다. 나치 독일에게 체코 슬라비아 침략까지는 허용하나, 그 이상은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쓴 협상문에 히틀러의 사인을 받아 영국으로 금의환향하며 전 세계(그 당시 체코 슬라비아는 빼고)는 이제 두 발 뻗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6개월 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략한다. 챔벌레인은 그가 히틀러의 눈을 보고 표정을 읽고 대화를 나누면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의 완벽한 착각이었다. 


히틀러와 악수하는 네빌 챔벌레인. 뮌헨 협정에서 히틀러에게 전쟁을 중단하겠다는 서명을 받아온 종이를 군중에게 자랑스럽게 흔들어 보이는 그.  


우리는 미국의 정보국은 매우 철두철미하고 그들의 정보력은 세계 최강일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더블 스파이는 생각보다 흔한 일이라고 한다. 정보국 요원들도 우리와 별 다를 것 없는 사람이라서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큰 의심의 건수가 찾아지지 않는 경우 타인을 믿는다. 그리고 미국 국방정보국(DIA)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래 사진의 주인공은 좌측의 안나 몬테즈. 그녀는 정보국이 알아주는 쿠바 전문가였다. 대학을 나오자마자 정보국에 들어간 그녀는 정보국에서 승진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한다. 



그녀가 활동하던 시절 플로리다에서는 쿠바의 공산주의에서 탈출하는 쿠바인들을 구출해주는 민간 프로그램(쿠바 이민자들이 이끄는)이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배를 띄워서 바다를 건너오는 쿠바인들을 구조하다가, 그들은 비행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띄워 바다에서 몇 천명이 넘는 쿠바인들을 구조하던 그 민간 비행기들은 어느 날 쿠바의 상공에 진입해 선전용 홍보물을 쿠바에 뿌렸고, 그중 두 대의 비행기가 쿠바에 의해 격추되기에 이른다. 이 일을 보고받았을 정보국을 생각해보자. 상식적으로 이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 "쿠바의 전문가"가 "배가 고프고 피곤하다며" 자리를 뜨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새벽 6시에 출근하여 밤 8시가 되자 "배가 고프고 피곤해서" 퇴근을 했다(물론 긴 근무시간이지만 일의 중대성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다음 날 전 정부 고위 관료가 CNN에 나와서 인터뷰를 한다. 그가 일주일(?) 전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고 왔는데 쿠바 영공에 그런 식으로 비행기가 뜰 경우에 자기네들이 공격을 해도 괜찮겠느냐고 그가 물었었다고. 공산주의 산하에 있던 쿠바의 공격을 정당화해줄 만큼 쿠바에게 훌륭한 인터뷰 타이밍이었다. 하필 비행기가 격추된 다음 날 이런 인터뷰가 스케줄 되어있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한 남자는 국방정보국의 카운터 인텔리전스(정보요원들을 캐는) 요원인 카마이클에게 본인의 의심스러움을 전달하고 카마이클은 사실 확인을 위해 그녀를 취조도 했지만 당시 아무런 의심점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미국의 모든 정보국 요원들이 모이던 어떤 자리에서 FBI의 한 요원이 DIA에 더블 스파이가 있으며 그 스파이는 쿠바 관타나모만에 있는 미 해군 기지에 방문 이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한 요원이 이 사실을 카마이클에게 전한다. FBI는 이 사실을 2년 전부터 계속 DIA에 전달하려 했지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카운터 인텔리전스 요원이었던 카마이클이 얼마나 열이 받았을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게 해서 카마이클은 관타나모만 출장 결재 승인 자료를 뒤졌고 거기서 안나 몬테즈의 이름을 발견한다. 직업이 카운터 인텔리전스라는 사람도 타인을 믿었다. 믿음을 뛰어넘을 만큼의 의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정보국 입사는 애초부터 쿠바 정부로부터 사주된 일이라 밝혀졌다. 그녀의 가방 안에서는 쿠바와의 송신을 위해 이용되던 무전기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럼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1. 타인은 진실하지 않다, 2. 타인은 겉과 속이 다르다,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살아갈 경우 우리는 공동체와 협력이라는 것이 가능하지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타인과 매일같이 상호교류를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지금 이 시대는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간 사람이 있었다. 해리 마르코폴로스라는 한 금융인이다. 그는 폰지 사기로 미국의 금융계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희대의 사기꾼 버니 매드오프가 잡혀 들어가기 10년 전부터 그를 의심했고, 미국 증권거래 위원회(SEC) 등 관련 기관에 열심히 투서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던 듯하다. 퀀트였던 그에게 어느 날 회사 지침이 내려왔다고 했다. 버니 매드오프라는 사람이 파생상품을 판매하여 막대한 수익을 거둬드리고 있는데 그의 방법을 알아내서 수익을 창출하라는 것이었다. 퀀트였던 그는 매드오프의 방법에 대하여 연구를 거듭했지만 알아낼 수 없다고 했다. 당시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은행이 몇 없었는데 은행들과 안면이 있었던 마이크폴로스는 그 은행들에서 버니오프의 파생상품이 거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버니오프 쫓기가 시작된다. 퀀트에게 성지로 알려진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도 매드오프가 운영하는 펀드에 투자를 했는데 나중에 SEC에 의해 발견된 바에 의하면 임원단이 매드오프 펀드의 수익 창출법에 대해서 "의심"은 가지고 있었으나 투자를 계속해서 진행했다고 한다. "의심"은 있었지만 "신뢰"를 무너뜨릴 만큼의 의심은 아니었던 것이다. 


마르코폴로스는 달랐다. 버니오프의 펀드가 2008년 금융위기로 사기가 폭로될 때까지 그는 10년 동안 그들을 쫓았다. 유럽으로 출장을 간 그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고 했다. 바로 유럽의 부유층 또한 매드오프의 펀드에 돈을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두려워졌다고 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자(실제로 매드오프는 나스닥의 체어맨까지 지냈던 사람이었음)가 자신이 그를 쫓고 있다는 것을 알면 자기 신변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그때부터 그는 자기 방어에 대해 과도하게 예민해졌고 그의 집에는 손을 뻗을 수 있는 곳마다 총을 두었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괴한이 쳐들어와서 자신을 죽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는 그리스 이민자의 아들로, 어렸을 때부터 아빠와 삼촌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도우며 자랐는데 손님들이 그릇, 식기구 등을 훔쳐가는 것을 목격했고, 그것으로 인해 가족과 손님과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자주 봤다고 했다. 근무하는 직원들이 뒤로 치킨 한 봉지, 새우 한 봉지 등 식재료를 빼돌려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결코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Default to Truth"가 아닌 "Default to Doubt"을 어려서부터 학습한 그는 희대의 사기꾼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챌 수 있었지만 평생을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피곤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바꿔 말하면 이런 이유로 우리는 타인을 믿는다. 의심이 증거가 아주 커지기 전까진. 아주 작은 거짓말을 하나 당한다고 해서 우리가 크게 잃는 것은 딱히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대화, 타인의 표정 등 밖으로 드러나는 것들을 보고 우리는 그들을 잘 안다고 착각을 하고 그들에 대해 판단을 한다. 하지만 히틀러가 웃으면서 뮌헨 협정에 서명을 했듯,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계 초강대국의 정보국에서 더블 스파이를 알아보지 못했듯, 매드오프가 사람들 주머니에서 65조 원이 넘는 돈을 빼가는 동안 우리는 타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는 걸까. 타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지 쉽게 읽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며, 우리는 타인을 보고 그들에 대하여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우리에게 우리의 세계가 있듯, 그들에겐 그들이 살아온 우주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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