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버핏투자자문 #4

<20년 겨울과 봄(2월~4월) 2 _ 위로>

by 이팔작가

돈과 의욕을 잃었을 때, 나는 온전히 나약한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지속된 손실에 따른 학습된 절망감은 나의 자존감을 깎아갔고, 멍하니 담배를 물고 있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 이 상황에 대해 경종을 울려주는 사람이 있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돈을 잃은 날이 참 많았음에도 그날마다 나를 불러 술을 사주던 형과 친구들이 있었다. 서로 힘들었던 순간을 이야기하며, 누구보다 나의 아픔을 알아주고 내 실력을 믿어주는 사람.


생각해보면 주식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누구에게 이 아픔을 설명 못하는 것에 있다.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빚을 내서 투자를 했다는 말은 그저 영화 속 이야기이다. 오히려 잃을 돈이라면 그 돈으로 자신에게 고기를 사달라는 지인도 있다. 주식투자의 경험이 없으면서 마치 그것이 자랑인 듯 훈수를 두는 사람도 있다. 전문가도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는 게 주식이라나.. 뭐라나…


주식을 하는 사람은 이 외로움을 이해한다. 시장 자체로도 여러 변수로 복잡하고 냉정하기에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음을. 주변에 주식을 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디서 힘들다는 말도 못 함을. 돈을 벌면 술을 사라는 사람은 많지만, 잃었을 때 나를 챙겨주는 사람은 없기에 주식을 하는 사람의 동질감은 투자에 있어서 중요하다. 큰 비중으로 한 투자를 ‘승부’라 표현하고, 그리고 이를 ‘청춘의 낭만’으로 포장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결혼하면 하지 못할 것이기에 지금 잃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해주는 사람은 소중하다.


그들에게 받는 술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패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일어나야 함을 보여주는 행동이다. 지금의 아픔은 이 술로 털어버리자는 말이며, 승리의 순간에는 ‘네가 고생한 순간을 다 안다’는 표현이다. 그래서 그때의 형과 친구에게 너무 고마웠다. 내일의 출근보다 지금의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임을 안다. 또한, 자신이 힘들거나 기분이 좋을 때 달려올 사람이 나라는 것을 인정받는 것 같았다. 그들은 실패로 집에서 나가기 싫은 나를 꺼내 준 사람이며, 성공의 순간을 순수하게 바라는 사람이다. 고맙고, 또 고마웠다.


‘안될 때는 잠시 쉬자.’


그 수많은 술자리에서 결론은 간결한 한마디였다. 그걸로 족했다. 결국 잠시의 휴식으로 이겨내고, 다시 맘을 잡고 같이 성공하자는 말에 나는 시장으로 복귀할 생각을 갖게 되었다. 전업투자자의 꿈은 아니었지만, 주식을 업으로 삼아 다시 실력을 갈고닦자는 생각을 하였다. 과거의 실패를 인정하고,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다시 회상해봤다. 나쁜 모습은 지우고, 그래도 그 시장에서 배운 것을 좀 더 체계화하려고 했다. 매크로보다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한 자체적인 기업분석 리포트 작성, 투자 관련 책을 읽고 정리, 영어능력 향상, 금융 자격증 취득 등. 투자가 아닌 취업을 위한 나 자신을 가꾸는 노력.

keyword
작가의 이전글버핏투자자문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