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투자자문 #5

<20년 8월 _ 버핏투자자문>

by 이팔작가

5월부터 취업준비를 하면서 자소서를 썼다. 초기에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자만하면 썼지만, 준비의 시간이 쌓이면서 취업에 대한 초조함이 몰려왔다. 코로나로 취업의 문턱은 높아졌다. 그 문턱을 넘기에 나의 능력은 크게 돋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연속된 실패의 맛을 또 느끼는 순간,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지는 자존감에 술자리는 피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직장 이야기가 달갑지 않았다. 과거의 추억만 이야기하는 나는 너무 초라했다. 어느 자리 나 주변인 같았다. 주변 사람은 나를 늘 응원했지만, 매번 좋지 않은 모습에 등을 돌릴까 무섭기도 했다. 내면에 숨겨둔 자격지심을 들킬까 겁났다. 단지 빨리 취업을 해야 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시간이 좀 더 지나니 이제 뭘 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낮은 학점은 이제 졸업을 했기 때문에 고칠 수 없다. 920점 토익을 950점 이상으로 올려야 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아니 확신보다 더 이상 나의 선택과 노력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실패를 했을 때 탓할 곳 하나 남겨두고 싶었다. 아니 사실 도망쳤다.


도망치다가 정신 차리고 지원, 도망치다가 조급함에 지원… 여러 이유로 지원을 했다. 회사에서 원하는 지원동기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돈 벌고 싶어요’


사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냥 이게 전부였다. 그렇게 여러 곳에 지원을 하다 보니 두 곳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한 곳은 여의도에 있는 메이자산운용, 공덕에 있는 버핏투자자문이었다. 메이자산운용은 국내에서 유명한 자산운용사에서 매니저를 하다가 나오신 분이 창업하신 곳이었다. 설립한 지 1년 정도 되었지만 AUM(총관리자산)이 1천억이 넘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버핏투자자문은 회사 홈페이지도 없이 블로그만 있는 회사였다.


오후 2시 여의도에 있는 메이자산운용에 방문하였다. 면접은 CEO, CIO 두 분이 진행했다. 나에게 간략하게 1분 자기소개를 시키고, 여러 질문을 하였다.


Q : 최근에 투자하고 싶은 기업이 있나요?

A : 저는 H기업을 좋게 보고 있습니다.

Q : H기업은 시가총액이 너무 작은데… 혹시 대형주로는 없어요? 해외 상장 기업도 괜찮아요

A : 저는 그러면 테슬라에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Q : 테슬라.. 이미 너무 많이 올랐는데 부담되지 않나요?

A : 전기차는 현재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전기차는 글로벌 모든 사람이 동의할 ‘친환경’이라는 어젠다를 이뤄줄 중요한 기술 및 제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전기차에서 현재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 테슬라이기 때문에……

Q : 너무 러프한 대답이네요. 운용사 인턴을 했다고 해서 좀 더 기대를 했는데


마지막 기대에 못 미친다는 말에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자소서라도 좋게 봐준 것이 감사할 뿐이다. 면접을 끝내고 나는 바로 공덕으로 향했다. 3시에 도착한 공덕에서 4시 면접을 준비했다. 러프한 대답이라는 말과 대형주를 원하는 상황에서 나는 빠르게 대형주 하나를 분석하였다. 디테일한 질문이 오면 대답이 힘들겠지만, 1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납득이 될 투자아이디어를 뽑았다. 4시, 면접시간이 되어 사무실로 올라갔다. 면접은 대표님이 진행을 하였다.


Q : 지금 사는 곳이 관악구?

A : 네 원래는 학교 주변에서 살다가 이쪽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Q : 회사까지는 올만해요?

A : 네, 한 번만 환승하면 됩니다.

Q : 지금 갖고 온 거는 기업분석 리포트인가? 다 본인이 작성한 거고?

A : 네 제가 작성한 보고서 중에서 괜찮다고 생각되는 몇 개를 가져왔습니다.

Q : 우리는 이렇게 보고서 작성 안 해도 돼


??


Q : 분기 실적 예측해도 맞지도 않고, 그냥 큰 방향으로 잘 가는지 잘 체크하면 돼요. 우리는 중소형 기업 중에서 알짜 기업을 찾고 투자를 해요. 본질적인 가치를 잘 분석해두고, 그 기업이 싼 가격이 되면 투자를 하는 거지!!


전혀 상반된 상황이었다. 내가 지금 면접을 잘 봤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이게 가치투자인가?


며칠 뒤 나는 버핏투자자문에 합격하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글 쓰러 가는 길 _ 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