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20살, 대학생활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면서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를 하기 전에는 드라마 속에서 봤던 자취방을 생각하며,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생각에 들떴다. 어떻게 내 공간을 꾸미고, 그 공간에서 어떻게 자유를 누릴지 상상하며 서울 삶의 시작을 기다렸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니 상상과 현실은 달랐다. 고대하던 자유에는 막대한 책임이 따랐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 생기면서 계획을 이행하지 않으면 방만해졌고, 하루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냈다. 주말은 쉬어야 한다는 생각, 나가면 돈만 쓴다는 생각, 비가 오니 집에 있자는 생각 등으로 집 밖의 외출을 안 하게 되었다.
20살 여름 방학, 장마가 시작되면서 나는 밖을 안 나가게 되었다. 처음은 학기가 끝났으니 쉬자는 가벼운 생각이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니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고립시키고 있었다. 잠자는 시간은 점차 미뤄졌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사육의 삶이 되었다. 누군가 먼저 만나자고 해도 내가 거절하였다. 집에만 있으니 살이 쪄서 자존감이 낮아졌고, 집을 안 나가니 친구를 만나러 지하철까지 가는 것도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이런 삶 중간에도 열심히 살자고 다짐을 하는 순간이 있었지만,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몰랐다기 보단 무언가를 하는 게 내 삶에 의미가 있을지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지금 이 공간에 나 밖에 없지만, 내가 날 못 믿으니 세상에 믿을 사람, 기댈 사람 하나 없었다.
우울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게 한 것은 책이었다. 책을 읽기 위해 학교 도서관으로 외출을 하였고, 책을 읽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나름 하루의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이 기간에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보며, 나 자신을 다잡게 되었다. 자신의 실존적인 자유와 이에 수반되는 고통스러운 책임감, 고통이 없는 무한의 자유는 결국 불안을 만든다는 그의 생각은 나를 거울로 비추는 것 같았다. 자기의 현재를 확신하지 못함에 따른 미래에 대한 불안은 과거의 결심이 더 효과를 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은 당시 나의 모습이었다. 이걸 딛고 일어서야 비로소 참된 인생이 시작된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좀 더 계획적으로 내 삶을 구상하였다. 시작은 힘들었지만, 이 순간을 딛고 일어서면서, 이후 자취방의 우울증이 재발할 때마다 나 자신을 잘 치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