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선 20대 #7

나이 값

by 이팔작가

나이 값


'나이를 먹는다는 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언제부터 '나이 값'을 하라는 말을 들었으며, 언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지 않게 되었는지 그 시점을 고민한 적이 있다. '나이 값'을 들은 것은 너무 오래전 이야기일 것 같다. "이젠 초등학생이니깐 친구랑 다투면 안 돼", "이젠 중학생이니깐 혼자서 해야지", "고3이 무슨 잠이야, 다른 애들은 4시간씩 자면서 공부한다" 등 어릴 때부터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수할 수도 있고, 좀 더 관심을 받았어야 할 나이었던 것 같은데, 다그침이 많았다. 아마 학교라는 단체 속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뒤쳐질까 봐 주변 어른의 노파심이 만들어 낸 말이 아닐까 싶다.

'나이 값'에서 해방된 시점은 대학교 25살이 된 시점이었다. 23살 군대를 전역하고, "이제 군대도 다녀왔는데.."라는 말의 효과가 떨어지는 예비군 2년 차쯤이었다. 이때, 정말 아이러니한 부분은 20년 가까이 '나이 값'을 하라는 말을 듣다가, 갑자기 '아직 어린이니깐,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늘 다그치며 경쟁에 뒤쳐지면 안 된다는 어른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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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자유


초등학교~대학교, 늘 순서에 맞게 진행되었던 커리큘럼은 이제 사라졌다. 늘 순서에 앞 서 다그치던 어른은 이젠 달라졌다. 20년 가까이 진행되었던 다그침은 없어졌고, 숙제와 같은 다음의 단계도 이젠 없어졌다. 그냥 어쩌다 보니 여러 가지 방향이 갑자기 펼쳐졌다. "너의 능력을 마음껏 펼쳐"라는 말이 자주 들렸지만, 나의 능력을 잘 몰랐다. 아마 조금 뒤처지면, 동년배와 또 비교가 될 것이다. 반대로 잘나고 싶어도, 딱히 잘하는 것도 없었다. 어른은 나에게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했지만, 그 속에 나의 자유는 없었다. 그저 적당히 좋은 직업을 갖고, 괜찮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는 그 단계를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었다. 다그침을 들을 나이가 아니라는 것도 결국 '나이 값'과 다르지 않았다.

알아서 하라는 말은 알아서 '잘'하라는 말이었다. 자유로 포장된 이 상황은 불안이었다. 나는 잠시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뒤쳐지는 것은 아닐까? 어떤 직업을 선택하면 큰 불만 없이 사회에 융화되어 살아갈 수 있을까? 막연한 고민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무언가를 해야 하지만, 무언가를 해야 할지 모르는 이 상황은 태평양 바다 위에 홀로 떠있는 기분이었다. 등대라도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누구도 등대는 없기에 불평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다 어른


어쩌다 어른이 되었다. 치열하게 도전한 것은 실패했지만, 우연히 직업을 갖게 되었다. 돈을 버니 부모님에게 지원받던 것은 자연스럽게 끊겼고, 지금 버는 돈으로도 전보다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비싼 옷을 살 수 있었다. 삶이 안정을 찾아가며, '나이 값'은 이제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안착된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어른이 되진 못했다. 회사와 집을 반복하는 삶 속에서 '나'를 찼는 노력이 필요했다. 삶에서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었지만, 누구도 말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외로운 순간이면 술을 마셨고, 공허한 마음이 들면 담배를 피웠다. 그저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쯤, 어른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른은 뭘까?'라는 질문을 잠들기 전에 곱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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