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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ug 20. 2019

습작

여든세번째

 역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였다. 그 오래된 공사장에는 빨간색 타워크레인 두 채가 우뚝 솟아 있었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 서있었는지 인근 주민들에겐 일종의 랜드마크처럼 돼있었다. 가령 먼 동네에서 찾아온 사람이 길을 헤매고 있으면, ‘아, 거기 빨간 타워크레인 보여? 그쪽 방향으로 쭉 걸으면 된다니까’ 하고 설명하곤 했던 것이다.


 그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나는 그 공사장이며 높이 솟은 타워크레인이 자연스런 생활권의 한 부분처럼 여기고 있었다. 비단 나 뿐 아니라 주위 이웃들 대부분 역시 그랬을 것이다. 공사라는 게 언젠가는 끝나야하는 작업이고, 그 부지의 그 십몇 층짜리 건물이 십 년이 넘도록 지어야할 만큼 대단한 건물도 아니라는 걸 딱히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이 년 만에 우리 동네를 다시 찾은 직장동료 한 명이 운을 떼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매일 지나다녔던 그 길목의 그 장소가 공사장이라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셈이다. 


 “이야, 여긴 뭘 짓길래 공사를 이 년 넘게 하고 있냐?”


 “뭐? 공사?” 나는 대꾸하는 순간 대뜸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아, 여기가 공사장이었구나. “아…… 여기 말이지. 꽤 됐어. 어렸을 때부터 계속 공사중이었는데. 최소한 십 년은 넘었을 걸?”


 “그래? 이 년 전이랑 다른 게 거의 없어서 얘기해본 건데. 공사를 계속 하고 있기는 한 건가?”


 “몰라” 내가 대답했다. “뭐 엄청 대단한 거라도 지을 건가보지. 왜, 백 년 넘게 짓는 건물도 있잖아. 사그리다 파밀리아, 세인트 존스……”


 “그럴듯한 개소리인데” 직장동료가 고개를 저었다.     


-     


 그 대화가 있은 뒤로 궁금증을 견디지 못한 나는, 근처 공인중개사무소에 가서 아는 동생을 만났다. 공인중개사였던 큰어머니 밑에서 일하며 로스쿨을 준비하는 동생이었는데, 나이만 한 살 어렸지 부지런하기로든 똑똑하기로든 나보다 나은 녀석이었다. 오랜만에 찾아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도 화는커녕 기꺼이 시간을 내줄 만큼 넉살좋은 인간이기도 했다. 


 한편 동생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서류 몇 장을 들고 왔다. 그러고 나서 문득 진지한 표정으로 그 땅에 얽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꽤 오랜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근처의 전철역이 생기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만년 공사장으로 전락한 그 부지에는 낡은 일본식 가옥 두 채와 자그마한 밭이 있었다. 원래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이 소유했던 땅을 광복 직후에 정부가 몰수, 어느 자산가에게 헐값으로 불하했다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IMF가 터졌고, 급전이 필요했던 자산가가 때마침 시골에서 상경해오던 가족들에게 분할매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게 뭐가 문젠데? 민간인들한테 갔다가 역이 생겼고, 그대로 재개발 들어가서 빌딩 올라가기로 한 거 아니야?”


 “원래는 그렇게 됐어야 하는데요” 중개 사무실 의자에 걸터앉은 동생이 말했다. “매각 단계에서 문제가 있었던 거죠. 매수하는 쪽에서 채권을 써버려가지고”


 “아니, 급전이 필요한데 왜 채권을 받은 거야? 그 자산가라는 놈은” 내가 물었다.


 “그땐 정말 여기 근처에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시국도 시국이었으니 부동산 사겠다는 사람도 찾기 힘들었을 거구요. 그렇게라도 돈을 마련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뭐 그렇게 봐야겠죠”


 동생이 재차 등기부등본을 휘적거리며 대답했다.


 결과적으로 그 채권이 처리되는 일은 없었는데, 애초에 채권 자체가 어떤 법적구속력을 보장할 만큼 거창한 형태도 아니었거니와 기껏해야 차용증 몇 장을 쓰고 지장을 찍어 보관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다보니 IMF이후의 물가상승률이나 인근에 도시철도 정차역이 생겨 땅값이 오르는 등의 변수는 당연히 고려되지 않았고, 실제로 역이 생긴 뒤로는 걷잡을 수도 없이 일이 꼬여버렸다. 자산가는 차용증에 적힌 만큼의 금액을 받는 대신 급히 처분했던 땅을 돌려받길 원하는 한편, 상경한 가족은 치솟은 만큼의 땅값을 더 받고 땅을 되팔거나 차용증에 써진 금액 그대로 처리하는 쪽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겨요. 그 대가족의 장남이 사업을 하겠답시고 뛰쳐나가서, 자기 아버지 명의로 된 그 부동산을 담보로 어마어마한 대출을 땡긴 거에요”


 “아니, 잠깐만. 그런 일이 가능해? 채권을 끼고 산 땅으로 대출을 받는 게?” 나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못할 게 뭐 있었겠어요? 대출 해주는 쪽이야 차용증을 언제 어떻게 썼는지도 모르는 입장이고. 이제 막 역도 생겼지, 서울에 사람은 계속해서 몰리고 있지, 이제 오를 일밖에 없는 땅이니까 얼마든지 빌려줘 버린 거죠”


 “국가행정의 실패네. 굳이 이유를 꼽자면”


 “뭐, 행정상 허점이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거죠. 나라가 모든 걸 알 순 없는 거니까. 근데 여기서 문제가 끝이 아니었어요” 


 “여기서 문제가 또 있다고?”


 “차남이 도박을 했거든요”


 “아……”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땅문서를 비싼 값에 처분하고자 했다. 차남의 도박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그 무렵 대가족이 살던 집에는 수시로 일수꾼이며 조폭 같은 인상의 남자들이 서성대고 있었으니, 골치 아픈 땅이야 팔아버리고 빚을 갚은 다음 남은 돈으로 경기도 등지 어디로든 빠져나가려는 심산이었다. 


 다만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그 땅은 이미 거래가 불가능해진 상태였다. 당시 법조인이었던 자산가의 아들의 주도로 소송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법적분쟁에 휘말린 땅으로 현금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일가친척이 아니었다면 정말이지 어려웠을 것이다.


 아버지는 첫째 딸의 장인이었던 사람에게, 소송이 걸린 땅을 담보로 수억 원의 돈을 빌렸다.


 “왜 장인‘이었던’ 인데? 과거형까지 써서” 내가 물었다.


 “얼마 안 가서 이혼했거든요. 첫째 딸이랑 그 남편이요” 동생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장인은 아니게 된 거죠”


 “이쯤 되면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거 같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도박빚은 처리가 됐지만 남은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장남이 사업실패로 떠안은 빚을 털어내느라 몽땅 써버렸다. 대가족은 담보가 몇 번이나 잡힌 집, 이제는 정말 그들의 집이 맞는지 분간조차 되지 않는 집에서 매일 밤 두려움에 휩싸여 잠에 들었다.


 그 땅을 둘러싼 법적공방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갈등의 주축이었던 노령의 자산가와 상경한 부부내외가 사망한 뒤로는, 자식세대가 그 갈등을 물려받았다.


 언젠가부터 아무도 살지 않게 된 집은 폐가가 돼 모두 철거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한 은행은 그 부지와 관련재산을 경매로 넘겨버렸고, 자세한 사정에 관심이 없던 중소 건설사 하나가 헐값에 나온 역세권 부지를 덜컥 사버렸다. 유명 로펌의 중역이 돼있던 자산가의 아들은 그 은행을 상대로도 소송을 걸었다.


 우연히 잡은 부지로 대박을 노리고 있던 중소건설사는 온갖 곳에서 최대한의 자금을 끌어 모았다. 그렇게 가능한 최대 높이로 설계한 건물을 막 올리기 시작할 즈음에, 뒤늦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내용증명 서류로 고통 받던 건설사 사장은 그 부지를 경매에 올린 은행을 찾아가 따졌으나, 은행은 ‘토지 처분 당시 모두 공개한 사실이다’라는 말 같잖은 해명만 수차례 반복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돈을 돌려받지 못한 (전)장인 역시 이때부터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어렵사리 마련한 건축자재로 바쁘게 올리려던 건물은 법원이 건축공사금지가처분을 받아들이면서 강제중단 됐다. 건설사는 부도를 면치 못했고, ‘어떻게든 완공이 돼서 비싼 값에 분양 할 수 있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공사를 떠맡았던 다른 건설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사는 십수 년에 걸쳐 도로 시작됐다 중단되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으며, 이 과정 속에서 터무니없는 안전설비로 인해 건설노동자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게 우리 아버지였어요” 별안간 동생이 말했다.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목소리였다. 


 “뭐?” 나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말했다. 돌연 머리가 복잡해 정리가 되질 않았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상황이 저 모양이다 보니, 매번 공사를 다시 시작할 때도 인력은 하청을 썼어요. 하필 요 근처에는 하청 받는 인력사무소가 많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그 인력사무소에서만 십 년을 넘게 일하셨죠. 몸은 건강한데 선천적으로 지능이 좀 안 좋으셔서, 거기 말곤 딱히 일할 만한 곳이 없었거든요” 동생은 내 심각한 표정 따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종이컵에 있던 물 한 모금을 머금어 삼킨 다음 말을 이었다. “……뒤의 상황을 들으셨으니 짐작하셨겠지만, 그쪽 공사장 상황은 정말 말이 아니었어요. 주요 건설사가 계속해서 바뀌고, 중간에 설계도 뒤죽박죽이 됐고. 그 마당에 현장에서 안전설비 같은 걸 찾는 사람이 바보였겠죠.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정말 바보였으니까요. 하하……”


 “……그런 말 하지마” 나는 겨우 말했다.


 “아뇨. 정말 괜찮아요. 사실인데요, 뭘. 장애가 있었던걸 뭐 어떡하겠어요. 아무튼 설계사에서 타워크레인 하나는 필요가 없게 됐다고, 유지비가 아까우니 철거하는 게 낫겠다고 하면서 사달이 났죠. 추락사였어요. 십삼 층 높이에서 떨어져서. 즉사했다고 했어요. 그게 제가 열 살 때 일이었고”


 “그런 건 전혀 몰랐네”


 “모를 수밖에요. 말을 안 했으니까. 형이랑 같이 다닌 학교라 봐야 고등학교뿐이고…… 그런 상황에 공사는 또 중단되고, 타워크레인은 철거도 안 된 채 그대로 서 있었더랬죠. 하기야 그런 환경에서 타워크레인씩이나 되는 걸 철거하겠다고 달려드는 바보는 더 없었을 테니까요. 하물며 거기서 사람까지 떨어져 죽었다는데” 동생은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학교 다니는 내내 그 공사장을 지나쳤어요. 셋방에서 가장 큰 창문을 열면 그 타워크레인이 훤히 보였고요. 비오는 날에도, 눈오는 날에도, 심지어 미세먼지가 엄청나게 껴대는 날에도 타워크레인만큼은 선명히 눈에 띄어요. 어머니랑 저는 거기 말고 이사 갈 곳도 딱히 없었는데”


 “……어머니도 돌아가신 거야? 그래서 졸업식 때도……” 느닷없이 눈치도 없는 질문을 던진 스스로에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아, 아니, 미안해. 이런 질문은 하는 게 아닌데……”


 “아, 괜찮다니까요. 저는…… 괜찮아요” 동생은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한 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어머니는 일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자궁경부암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식 때는…… 그 때도 아버지 일로 따지러 가셨었죠. 그땐 법원이었나, 인력사무소였나,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당시에는 멀쩡하셨어요. 걷는 건 물론 뛰어다니시기까지 했는데. 소장 앞에서 소리도 버럭버럭 지르고요”


 “제기랄”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이런 얘기까지 하는 이유가 대체 뭐야? 물론 시작은 내가 물어보긴 했지만……”


 “그야 예전에도 형이 물었잖아요?” 동생은 이제와 새삼스럽다는 투로 대꾸했다. “건축학씩이나 전공해놓고 왜 로스쿨 준비 같은 걸 하냐고”


 “……”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동생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무더웠던 날씨는 이번 주말에 접어들면서 꽤 잦아들었다. 그 때문인지 역주변에는 사람이 몰려 어수선했다. 나는 그길로 집을 향해 계속 걸었다. 머잖아 인적이 뜸한 골목에 들어섰지만 누군가에게 쫓기는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아무렴 그 붉은 타워크레인들은 커도 너무 컸고, 높아도 너무 높았다. 우리 동네에 그 타워크레인이 보이지 않는 골목이라곤 단 한 곳도 없었던 것이다.          


 

<끝나지 않는 공사>, 2019. 8




<타워크레인>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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