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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ug 25. 2019

습작

여든일곱번째

 하늘이 꿈틀거렸다. 잿빛 구름이 뒤틀리며 햇발을 가로막았다. 날씨는 무척 흐렸다. 해가 떴지만 저녁이 아니라는 것 정도만 겨우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교회로 향해 장례식을 치렀다. 나는 식이 진행되는 내내 어떤 얼굴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주검이 된 어머니의 표정은 어쩐지 편안해보였다.


 동생은 용케 울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지 어떨는지는 모르겠지만, 검은 옷차림으로 의젓하게 서있는 모습을 보자니 내심 형으로서 안심되는 구석이 있었다. 하기야 친아버지가 돌아가실 당시의 나 역시 다섯 살이었다. 슬픈 상황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울었던 기억은 없다. 어쩌면 다섯 살이란 죽음이나 영원한 이별로부터 오는 슬픔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일지도 모르겠다.


 당장에 내가 느낀 감정이라면 슬픔보다 두려움에 가까웠다. 교회 로비에는 나나 동생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저씨, 아줌마와 할머니들이 잔뜩 서있었다. 하나같이 비통해마지않는 표정이었다. 영구행렬을 둘러싼 사람들은 식이 이어지는 내내 울먹거렸고, 이따금 대성통곡하듯 슬피 흐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었지만 어찌나 애통해하는지 상주인 내가 위로를 건네야할 판이었다. 


 어느 정도 식이 마무리 됐을 무렵이었다. 가장 먼저 떠난 것은 상조회사 직원이었다. 대여했던 상주용 양복은 도로 벗어 반납했다. 덕분에 우리는 늘 입던 먼지투성이의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되돌아왔다. 그 다음으로 장례예배를 주도한 목사님이 뒤돌아 사라졌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앞이 캄캄한 듯 어두운 표정으로 따라 걷던 신도들이 하나 둘 흩어져나갔다. 사람들은 순서에 맞춰 자신들의 삶으로 되돌아갔다. 나와 동생만을 남겨둔 채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떠났다.


 나와 동생은 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무표정했다. 버스 내부는 제법 붐벼 빈 좌석이 하나뿐이었다. 나는 동생을 앉힌 자리 앞에 손잡이를 잡고 섰다.


 식이 치러진 교회는 중심가 부근,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그로부터 차로 삼십 분 쯤 떨어진 교외에 위치해 있었다. 버스는 교회 근처로 잔뜩 펼쳐진 고급 아파트 단지를 이리저리 지나쳐갔다. 그러다 잠시 멈춰 섰던 어떤 횡단보도 위로 말쑥한 차림의 아주머니 몇 명이 걸어 지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그 아주머니들이 조금 전 어머니의 장례식 한 가운데 서 있었던 이들임을 뒤늦게 알아 차렸다. 제각기 시시덕거리는 표정하며 손에 하나씩 쥐고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 때문에 잠시 혼동했을 뿐 분명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 무리는 고급 아파트 단지의 정문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갔다. 버스는 다시 출발해 정류장 몇 곳을 거쳐 지났다. 좀처럼 빈자리는 나지 않았다. 나는 하차할 때까지 줄곧 손잡이를 잡고 서있었다. 


 임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꿉꿉한 냄새가 났다. 전날 비가 왔었거나 흐리고 습한 날씨에는 으레 그런 냄새가 풍겼다. 우리는 일 년에 수십 번도 넘게 맡았던 그 냄새가 당최 어디서 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임대 아파트 자체가 오래된 건물이기도 했거니와 제때 쓰레기 수거가 되지 않을 때도 잦았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모두 없애고자 한다면 그 아파트 단지 전체를 갈아 엎어야할지도 몰랐다. 그 외딴 동네에서 재개발 이야기가 시도 때도 없이 오고간 것에는 이런 이유도 한 몫 했으리라 생각한다.


 한편 어머니는 그 임대 아파트 등지에서 풍기는 냄새를 유독 역겨워 했다. 꽤 잘 돼가는 듯 했던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추레한 트럭을 타고 이곳 아파트 단지로 이사 오던 당시에도 ‘못 사는 동네 특유의 냄새가 난다’며 넌더리를 쳤다. 어머니는 끝내 그 냄새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매 주말마다 차를 타고 전에 살던 고급아파트 근처의 교회까지 예배를 하러갔다. 임대 아파트 단지의 바로 맞은편에도 조그마한 예배당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한사코 다니던 교회로만 가서 예배를 드렸다.


 이상하게도 나나 동생은 그런 냄새가 견딜 수 없이 불쾌한 적은 없었다. 어머니가 말했던 그 냄새가 대체 무엇이었는지도 아직 모른다. 너무 어려서 발달하지 못한 감각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마 좀 더 자라 어른이 될 즈음엔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백사호의 우체통에는 며칠간 밀린 편지봉투가 가득했다. 나는 그 봉투들을 죄 뽑아 들었다. 엘리베이터는 두 대 모두 높은 층에 걸려 있었다. 버튼은 눌렀지만 한동안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는 수없이 비상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집안은 어두컴컴했다. 또 구석구석에 축축한 공기가 맺혀있는가 하면 불과 며칠 전 목을 매단 어머니의 냄새가 여전해 현기증이 났다. 잔뜩 지친 동생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불더미 위로 드러누웠다.


 나는 여덟 평짜리 아파트의 유일한 창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방 한 쪽 구석에 주저앉아 우편물들을 하나씩 뜯어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임대 아파트의 중앙관리소가 보낸 체납관리비 독촉장이, 임차보증금 차감 안내장이 와 있었으며, 지방법원으로부터 도착한 강제퇴거소장에는 이틀 전 날짜가 찍혀 있었다. 


 그 일련의 편지로부터 겁을 집어먹지 않았다고 하면 분명한 거짓말이다. 정확한 의미까지는 몰라도, 꼼짝없이 고아가 돼버린 우리 형제가 쫓겨나기 일보직전이라는 사실은 확실해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쫓겨나면 어디로 가야하지? 머리가 아팠다. 부모님은 돈 문제로 인해 양가 친척들과 척을 진지 오래였다. 연락처도 몰랐거니와 누구 하나 장례식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고아가 됐다한들 마땅히 의탁할 곳도 없었던 것이다.


 별안간 눈앞이 깜깜해진 나는 마지막 남은 편지를 뜯어보기로 했다. 그 우편물은 지역의 아동복지 담당부서에서 보내온 것이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안타깝게도 서면요청하신 관할지역에는 입소 가능한 보육원이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대신 해당지역과 밀접한 지방의 보육시설 목록을 연락처와 함께 보내드리오니 참고 부탁 드립니다’


 나는 다 읽은 편지들을 끌어 모아 쓰레기통에 구겨 넣었다. 더 읽어야할 편지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한결 편했다. 동생은 그새 잠들어 있었다. 방안 구석구석에 흩어진 이불을 들어 올렸다. 쌓여있던 먼지가 나풀거리며 이상한 냄새를 풍겼다.      


<귀천>, 2019. 8



<흐리지도 맑지도>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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