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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Sep 02. 2019

습작

아흔두번째

 요 몇 달 들어 가장 핫 하다고 할 수 있는 중식 프렌차이즈였다. 금요일 밤 강남역 인근에는 사람이 잔뜩 들어차 발 디딜 틈 없었다. 중화식 고추기름을 왕창 넣는 것으로 유명한 마라탕이며 샹궈를 찾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았다. 


 강남점은 전국 수십 개 매장 중에서도 세 손가락에 드는 규모였다. 술집과 각종 포차가 둘러싼 거리 한 가운데의 건물을 통째로 썼다. 그럼에도 테이블은 연일 만석이었다. 붐비는 주말이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웨이팅이 있었다. 얼마나 손님이 많은지 트럭 째 실어 나른 재료가 매번 동나 곤란을 겪었다. 


 논란이 된 사건은 강남점 오픈으로부터 정확히 반년이 지난 어느 날 발생했다. 그 대학생 무리는 이제 막 새내기를 벗어난 두 명의 남학생, 세 명의 여학생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은 모두 같은 대학 동아리 소속이었는데, 금요일 밤 시간이 되는 친구들끼리 모여 화제의 강남점을 찾았던 것이다. 


 젊은 남녀가 모인 자리이니만큼 술이 빠지지 않았다. 얼마 전 개강으로 오랜만에 마주한 얼굴들이었거니와 선선한 바람이 부는 금요일 저녁의 분위기가 흥을 돋웠다. 이들은 기름간이 밴 샹궈와 함께 도수 높은 중국산 고량주며 소주 그리고 맥주를 계속해서 먹고 마셨다.


 술자리는 자정이 넘도록 계속됐다. 매장 내 고객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밤이 무르익자 외부에 웨이팅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해 떠야 문을 닫는 가게였으니 그제야 겨우 영업을 개시한 셈이었다. 꽉꽉 들어찬 고객이 잇따라 술이며 요리를 주문했고, 야간 종업원들은 출근하기 무섭게 일을 시작했다.


 그 무렵 이 층 가장 구석진 테이블에 있었던 그 대학생들은 모두 취해 있었다. 빈 술병은 더 이상 놓을 자리가 없어 의자 뒤꼍에 둬야할 지경이었다. 이쯤 되자 서서히 집에 돌아가자는 분위기가 됐다.


 그러던 와중에 창가 한 가운데 앉은 남학생 한 명이 “오늘 먹은 술은 오늘 해장해야지” 하며 마라탕 재료를 고르러 나섰다. 온전히 집에 도착하기 위해서라도 따뜻한 국물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일행은 여차저차해서 의견에 동의하는 식으로 돼버렸다.


 삼십분쯤 뒤에 나온 마라탕에는 야채와 당면 그리고 기름진 양고기가 푸짐하게 들어있었다. 시뻘건 마라기름이 넓적한 그릇 표면으로 떠있었다.


 때마침 가장 안쪽에 앉아있던 긴 생머리 여학생이 “이건 아무래도 앞치마를 갖고 와야겠다”고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정말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바깥쪽에 있던 학생들이 “아니, 내가 가져올게”라고 말할 틈조차 없었다.


 여학생은 테이블 사이로 난 아주 작은 통로로 지나가려 했다. 그러다 바닥에 있는 빈 병을 피하려다 크게 휘청거렸고, 넓적다리 옆부분이 테이블과 부딪혔다. 그렇게 마라탕이 여학생의 하반신으로 와락 쏟아져 내렸다.


 “아아아아아악!”


 긴 생머리 여학생은 별안간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하늘거리는 아이보리색 원피스가 뻘건 고추기름으로 물들여졌다.


 금방 나와 펄펄 끓듯이 하던 마라탕이었다. 뜨거운 국물이며 기름이 옷과 맨살에 들러붙으며 고통을 배가시켰다. 황급히 손으로 털어내 보려 했지만 손은 물론 털어내려던 방향으로까지 기름이 옮겨 붙었다. 


 함께 있던 일행은 기실 심신미약 상태였다. 그나마도 남학생 한 명은 엎드려 자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상황파악이 덜 돼 허둥지둥했다.


 “아악! 아아아악……”


 긴 생머리 여학생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발버둥이 워낙 심해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도와줄만한 종업원들은 대부분 일층에 내려가 있었다. 이층에 있는 점원들도 주방이나 꽤 떨어진 곳에서 뭔가를 나르는데 여념이 없었다.


 바로 옆에서 상황을 지켜본 다른 여학생이 재빨리 다가가 환부에 물을 들이부었다. 그러나 물 자체도 충분하지 않았고, 옷이며 살에 달라붙은 기름은 씻기지 않아 그대로 있었다.


 긴 생머리 여학생은 넋이 나간 듯 계속해서 울부짖었다. 원피스 너머로 하얀 허벅지 안쪽이며 사타구니 깊은 곳까지 마라기름이 엉겨 붙어 빨갛게 부어오르는 모습이 고스란히 비쳐보였다. 


 주위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몰려들어 웅성거렸다. 그러나 환부의 위치 때문에 별달리 손쓸 방법은 없어보였다. 여학생을 들어 옮길 만큼 힘 있는 남자들은, 혈중의 알코올농도나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게 두려워 잠자코 있었다.


 지켜보다 못한 몇 명이 119에 신고전화를 했다. 그리고 “괜찮아요?” “아이고, 젊은 아가씨가. 어쩌면 좋아?” “조금만 기다려요, 119에 전화했으니까” 같은 말을 몇 번씩이나 반복했다. 긴 생머리 여학생은 대답도 없이 팔다리를 뒤틀면서, 다 쉬어가는 목소리로 도와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애타게 부르짖을 뿐이었다. 와중에 그녀의 몸에서 알싸한 마라냄새가 풍겨 나와 일동을 섬뜩케 했다.


 한편 관할지역 소방서 대원들은 어느 지하 클럽의 화재현장에 가있는 통에 대부분 부재중이었다. 신고는 접수했지만 워낙 별의 별일이 많은 금요일 밤이었다. 곧장 앰뷸런스 한 대가 출동했으나 골목골목에 불법주차 된 차량이며 만취된 상태로 서성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신고한지 십 분이 넘어서야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응급대원들은 테이블이 날 때까지 대기 중이던 수십 명의 손님을 뚫고 강남점 매장 내부로 들어갔다. 때마침 바쁘게 오르내리던 점원들을 피해 계단을 오르고, 과음 또는 과식으로 화장실 문짝 앞에 죽 늘어선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머잖아 화상환자 한 명이 들것에 실린 채 중식당 입구를 빠져나왔다. 발과 발목을 제외한 하반신의 대부분을 붕대로 감고 있었다. 응급후송차량은 기절한 상태의 긴 생머리 여학생을 싣고 근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대기하던 손님들은 무슨 일이야 글쎄, 하며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 뿐이었다. 오 분쯤 지나 점원이 “다음 손님! 번호표 보여주시겠어요?” 하고 크게 소리쳤다. 네 명의 가족이 점원을 따라 이 층 맨 구석 쪽 테이블로 안내됐다.  


 강남대로 주변으로 응급사이렌 소리가 뒤따라 울렸다. 하지만 길 중앙으로 지나다니는 사람과 깜빡이 없이 끼어드는 야간 택시들, 대로변 주차장에서 느릿느릿 들어가고 빠져나오는 외제차까지 누구 하나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 붓기는 얼음찜질에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긴 생머리 여학생은 음부 주위를 비롯한 하반신 전체에 2도 화상을 입었다. 


 “흉터가 남을 겁니다” 의사가 짧게 말했다. 


 이튿날 사고현장에 있었던 대학동기들이 문안차 찾아왔다. 여학생은 끝내 면회를 거절했다. 며칠이 더 지난 뒤엔 학교에 자퇴서를 부쳐서, 더 이상 여학생이라 부를 수조차 없게 됐다. 


 여자는 병동에서 눈을 떴다. 링거액을 질질 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문득 아래를 내려다봤다. 터무니없이 망가진 청춘이 거기 있었다. 스물한 살이었다.          


<화상들>, 2019. 9






<흉>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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