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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ug 30. 2019

습작

아흔한번째

 “대한민국이 올해를 기점으로 ‘초저출산국가’에 들어섭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금년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으로 떨어졌으며, 이는 전세계에서 유일한 0명대로서……”


 나는 뉴스를 보다말고 TV를 껐다. 출산율 얘기야 하루 이틀도 아니었다. 당장 문제는 대체휴일까지 껴서 낸 휴가 대부분을 처갓집에 내려가 보내야한다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선 하루 종일 집에 박혀 잠이나 자고 싶었다. 다만 아내는 벌써부터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장인내외는 서울 근교에서 꽤 큰 농장을 하고 있었다. 별 일 없는 주말에는 가끔 일손을 보태려 아내와 함께 내려가곤 했는데, 올해는 유독 추석이 빨라 벌써부터 비상이 난 모양이었다. 


 “바빠지시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체력에는 자신이 있으니까요”


 그건 새참이 맛있어서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 황금 같은 휴가에 다짜고짜 불러낼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고. 아내는 ‘그러게, 왜 마음에도 없는 약속을 왜 했대? 호호’하며 놀려댈 뿐이었다. 나는 별달리 핑계도 찾지 못하고 아침 댓바람부터 차를 몰았다.      


 한 시간 반쯤 달려 처가에 도착했다. 농장은 사방이 탁 트여 뙤약볕이 뜨거웠다. 나는 장인어른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옷을 갈아입었다. 밀려있는 일들을 보니 어지간히 바빴겠구나 싶었다. 


 주어진 일을 반쯤 끝냈을 무렵이었다. 그동안 해는 중천에 올랐다. 더위는 잦아들기는커녕 한층 더 무르익었다. 농작물은 이런 지옥 같은 날씨 가운데서도 쑥쑥 자라나있었다. 새삼스레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여기 와서 바람 좀 쐐”


 아름드리 나무그늘에 아내가 앉아 손짓했다. 나는 차갑게 젖은 수건으로 이마와 등줄기에 흐른 땀을 훑어 닦았다. 그렇게 그늘에 기대 앉아있으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 금방 시원해졌다. 


 “힘들지?” 아내는 드러누운 내 귀에다 대고 대뜸 말을 걸었다. “미안해. 우리 엄마아빠 때문에”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내가 말했다.


 “그냥, 이런 날씨에 고생하는 거 같아서. 미안해서 그러지”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하” 


 나직이 웃는 아내의 모습, 그 뒤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장인어른이 눈에 보였다. 나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 일은 이미 충분하게 했지만. 괜히 누워있다 농땡이 피운단 느낌은 주고 싶지 않았다. 한편 장인어른은 다른 용건이 있는 기색이었다. 


 “우리 사위는 양계장 본적 있나?”


 “아뇨. 실제로 본 적은 없습니다. 계란은 좋아하지만” 내가 대답했다.


 “그럼 같이 갈까? 구경도 하고, 계란도 한 판 해가고”


 “아, 여기도 양계장이 있었나요?”


 “그럼, 이리 따라오게”


 장인어른은 말하자마자 바로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막무가내인 걸 보니 분명 일손이 부족한 것이렷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게 아내와 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 걸으면서 뒤를 돌아다봤다. 아내가 날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난생 처음 가본 양계장에선 시크무레한 냄새가 났다. 농장에서의 흙냄새나 소똥냄새 같은 것과는 사뭇 달랐다. 양쪽으로 펼쳐진 예닐곱 개의 선반에 층층마다 닭들이 들어차있었다. 암탉들은 장인어른이나 내가 들어오는 걸 신경도 쓰지 않았다. 


 비슷한 크기의 닭들이 죽 늘어서 달걀을 떨어트렸다. 닭들이 갇힌 철창 앞에는 빗물받이 같은 받침대가 뻗어있었다. 금방 나온 달걀들은 모두 그곳에 고여 있었다. 내가 할 일은 고인 달걀들을 깨지지 않게 조심조심 모으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런 종류의 일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장인어른에게 사소한 질문을 몇 번 했다. 다만 그럴 때마다 장인어른의 답변은 너무 짧다 못해 냉정할 지경이었다.


 “이건 판에 넣기엔 크기가 너무 작은데 어떻게 할까요?” 내가 물었다.


 “버려” 장인어른이 대답했다. 


 “끝부분이 살짝 깨져있는 건요?” 머잖아 내가 다시 물었다. 


 “그것도 버려” 장인어른이 다시 한 번 대답했다. 나는 하는 수없이 불량 취급된 달걀을 양동이에 던져 넣었다. 달걀 깨지는 소리가 팍하고 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층층마다의 닭들을 올려다봤다. 방금 내가 던져 깨트린 달걀도 그 가운데 있는 어느 하나의 닭이 낳았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닭들은 아무 표정도 없이, 그 어떤 원망 섞인 눈빛도 없이 계속해서 알을 낳고 있었다. 마치 늘 있어온 일이라는 듯이. 어차피 누가 하든 별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이. 우리가 결코 그만두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는 듯이. 나는 더 이상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장인어른 역시 방금 나온 계란을 받아 모으고 버리길 말없이 반복할 뿐이었다.      


 “하하, 우리 사위도 참 마음이 여려가지고” 장모님은 내가 한 얘기를 듣자마자 대뜸 웃으며 말했다. “그래, 우린 그런 생각은 못했네. 앞으로 우리 사위한텐 양계장 일은 시키지 말라고 해야겠어”


 “아, 아뇨. 일을 못 하겠다기 보단, 그냥 마음이 그랬어요. 잔인하다고 생각이 들었던 건 아니고……” 난 어쩐지 변명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 사위는 내내 도시에서만 자랐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이렇게 안 하면 계란 값이 하나에 천오백 원은 할 걸?” 


 “그렇겠죠?”


 “닭이라고 다 똑같은 닭도 아니야. 고기로 쓰는 닭은 그거대로 따로 키우지, 오늘 본 건 알 낳는 닭으로 키워진 거고…… 뭣보다 우리 양계장에서 나오는 건 무정란이야. 사람보고 먹으라고 된 알이지. 저거 그대로 닭한테 줘서 품게 놔둬봐. 백날 해봐야 병아리가 나나. 요새는 유정란도 관리를 잘해야 병아리가 날까말까 한다는 판에”


 “맞는 말씀 이십니다” 나도 대강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다만 단순히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보고 느끼는바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 


 “티비 보니까 사람도 요즘 출산율이 위태위태하다더라고. 그래도 우리 사위는 걱정할 필요 없겠다 싶어. 일하는 걸로 보나 골격으로 보나……”


 “아하하……” 나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결혼한 지 꽤 되긴 했어도 이런 말에는 도리가 없다. 


 “아무렴, 우리 딸도 곧장 손주 하나만 낳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한사코 장모님이 너스레를 떨었다. 걸터앉은 대청마루에 바람이 한 줄기 불어 닿았다. 때마침 아내가 마당으로 걸어 들어왔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느지막이 시골을 떠났다. 온종일 후덥지근한 데서 일했던 탓인지 자동차 에어컨 바람이 반가웠다. 서울로 향하는 도로는 제법 막혔다. 


 “아까 엄마랑 둘이서 무슨 이야기 했어?” 조수석에 앉아 줄곧 휴대폰을 쳐다보던 아내였다. 


 “무슨 얘길 하긴? 그냥 서로 안부 같은 거나 주고받았지” 나는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하며 말했다. “갑자기 그건 왜?”


 “아니, 그냥 궁금해서” 아내가 빙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 우리 다음번 병원은 언제 가기로 했지?” 


 “다음 주 수요일” 


 “맞아, 수요일이었지”


 “……무서워” 내가 말했다.


 “뭐가?” 아내는 정말이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결과를 확인하는 게 무서워”


 “왜?”


 “또 안 되면 어떡해? 이번에도 수정이 안 됐으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뭐 어떡해. 또 다시 해봐야지” 아내는 너무 침착했다. “아무리 그래도 입양은 하기 싫어, 나는”


 “……그래” 내가 대답했다. 


 고속도로는 한동안 정체돼 있었다. 차는 아주 조금씩 움직였다. 우리는 밤 열시가 다 돼서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씻자마자 지쳐 잠들었다. 


 날씨는 추석이 지나기 무섭게 쌀쌀해졌다. 그 무렵 뉴스에서는 서울 근교 농가에 조류 인플루엔자가 유행한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때 방역대상이 된 처갓집은 양계장에 있던 닭들을 모두 마대자루에 넣고 산채로 땅에 묻었다.


 비단 처갓집만의 일은 아니었다. 주변 일대 농가에 있던 닭들은 한 마리도 남김없이 전부 살처분됐다. 장모님은 사흘 내내 슬피 울었다. 아내도 울었다. 


 이듬해들어 내가 처갓집을 다시 찾아갔을 즈음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양계장에는 그새 새로운 닭들이 들어차 바글바글했다. 양계장 한 쪽 구석에는 똑같은 양동이 하나가 놓여있었다.


 기준미달의 계란들이 으깨져 이곳저곳으로 튀었다. 나는 별안간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현기증이 났다. 이렇다 할 변화는 없습니다. 몇 번을 더 해도 어렵습니다. 비용이 한두 푼도 아닌데.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합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무정>, 2019. 8



<얕은 개울>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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